로알드 달의 단편소설집 <맛>을 읽고
흉측하고 으스스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써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로알드 달의 진면목이다.
/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로알드 달 소설 <맛>은 그의 단편 소설집 중 하나로, ‘목사의 기쁨’부터 ‘피부’까지 총 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사실 그를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등의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청소년 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맛>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대중들이 왜 그를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일컫는지 느낄 수 있었다. 비단 청소년 소설 작가로만 국한하기에는 굉장히 대범한 상상력과 예리한 관찰력을 <맛>이라는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맛>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선하기보다는 악한 축에 더 가까운 이들이다. 사기와 도박 그리고 내기에 집착하는 인물들이 주로 등장하고, 이들은 모두 인간의 욕망과 쾌락을 버젓이 드러내는 캐릭터들이다.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거짓말도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노래하고,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 등 각자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한 거침 없는 질주를 선보인다. 이들의 욕망은 어느 모로 보아도 선의보다는 악의에 가깝고 비도덕적이다. 편의상 이들을 ‘주인공’이라 칭해 보겠다.
그렇다면 이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악의는 없으나 상대방이 원치 않는 길로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이들이다(<목사의 기쁨>, <항해거리>). 어떠한 악의나 반발심이 있는 것은 아니나, 절대로 주인공들이 원하는 바를 순순히 얻게 두질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판 함정에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여기서 재는 점은 그 이후에 주인공들이 겪는 상실감이나 비극적인 결말이 크게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자의 상상에 맡겨 둠으로써 독자들이 작품의 결말을 완성하게 하거나 주인공들이 겪어야 할 충격을 대신 느끼도록 한다.
두 번째, 더 큰 악의로 상대하는 이들이다. 주인공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예측하며 일명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이들이다(<손님>, <박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완벽하게 본인들의 목표를 수행했다고 믿는 주인공들의 발등에 도끼를 사뿐히 찍는다. 원하던 목표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더 큰 고통을 안게 되는 주인공들을 ‘인과응보다’라는 반응보다 ‘불쌍하다’,‘안타깝다’는 생각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말 그대로 속고 속이는 관계이다.
반면, 의뭉스럽고 으스스한 주인공들만 등장하진 않는다. 비록 욕망에 눈이 멀었더라도,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기이한 캐릭터라도 정감이 가는 인물들이 있다(<남쪽 남자>, <정복자 에드워드>, <피부>). 앞선 인물들에 비하면 저 정도까지의 고통을 받았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순수함에 더 가까운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집 <맛>에는 권선징악이나 따뜻한 희망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모두 저마다의 파멸 혹은 세드엔딩으로 향해 뚜벅뚜벅 걷는다. 하지만 이를 비단 ‘욕망의 끝은 이런 거다’라고 보여주고 싶은 교훈적인 메시지로만 국한하기엔 솔직히 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욕망을 향해 어떠한 사기나 연기 그리고 내기 등을 서슴지 않는 이들을 보면 양가적인 감정을 만날 것이라 생각한다. ‘안타까우면서도 꼴 좋다’는 그런 매우 낯선 감정. 내가 이런 걸 느끼다니 싶을 정도 생소한 감정.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모순적인 감정이야말로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악하고 어두운 욕망을 비단 무겁게 그려낼 필요가 없듯, 때론 가볍게 전달함으로써 오히려 쾌락을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다소 쌉쌀한 맛이긴 했지만,
이 책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