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으로 간 발리에서
한국어를 잘하는 현지인 가이드랑 동행을 했었다.
그는 한국인들은 항상 여유가 부족하다며
이곳에 있는 동안은 그게 무엇이든,
여유 있게 즐기라고 말했다.
밥을 먹을 때도, 관광지를 구경할 때도,
호텔에서 쉴 때도 그는 늘 말했다.
“여~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비로소 선물처럼 가을이 찾아왔다.
인생도 계절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이드의 그 짧은 한마디가 문득 떠올랐다.
10년이 넘었던 내 회사 생활은 꼭 여름 같았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은 마냥 뜨겁기만 했고,
푹푹 찌는 공기는 마치 사우나에 갇힌 것 같았다.
난 그 갑갑함 속에서 무엇인가에 쫓기듯
땀 흘리며 일하기 바빴다.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
때로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듯,
때로는 계곡으로 가 시원한 수박을 먹듯,
그곳에서 나만의 ‘여유’를 찾았었다면
그때, 나는 더위에 지쳐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뜨거웠던 계절 내내
여름을 즐길 줄도 모르고 그저 괴로워하기만 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도 가을이 왔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 속을 거닐고,
화려하게 수놓은 저녁놀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며
이 가을을 오롯이 즐기고 있다.
다가올 겨울이 많이 춥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모든 계절은 지나간다.
이제야 계절을 즐기는 법을 알았는데,
단풍구경도 못 다하기 전에
이내 겨울이 올까 또 조바심이 난다.
이 가을이 좀 더 느긋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