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종종 아빠의 일터로,
혹은 지하철역으로
아빠를 데리러 가야 했다.
당뇨가 심했던 아빠는 길에서,
아니 어디서든 자주 쓰러지곤 했다.
연락이 안 되면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했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마다
혹시 또 병원에서 온 전화가 아닐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다.
우리는 그 몸으로 무슨 일을 하냐며
그냥 집에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본인 몸이나 제발 잘 챙기라며
아빠의 남은 자존심을 긁기도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아빠는 집을 나섰다.
엄마는 아빠가 무사히 집에 돌아올 때까지
늘 조마조마했고,
그럴 때마다 내가 나서야 했다.
왜 매번 내가 희생해야 하는지,
매일매일 불만이 쌓여갔다.
다른 친구는 아빠가 데리러 오기도 한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그날도 아빠를 기다렸다.
열차가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하나둘 역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왜 이렇게 늦게 나오는 거야.
나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
그렇게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고 있을 때
멀리서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한 껏 지친 몸으로
자기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천천히 걸어오는 아빠의 모습은
부쩍 작고 초라해 보였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짜증 나게... 또 왜 저렇게 불쌍한 거야. “
저 불편한 다리로 하루 종일 공사장에서 일하고
몸에는 땀냄새 먼지냄새를 묻힌 채
만원 열차에 꼬박 두 시간을 서서 왔을
아빠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고맙다.”
아빠의 한마디에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빠, 그냥 일 안하면 안 돼?”
아빠는 아무 대답 없이 다음날도 또 나섰고,
우리는 아빠가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될 때까지
매번 아빠를 데리러 다녔다.
뒤늦은 이제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마... 아빠도 많이 힘들었겠지.
아빠를 보내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 머릿속엔
아빠가 우리를 힘들게 했던 수많은 일들보다
미안한 기억들만 가득 떠오른다.
아빠가 떠나면서
자신의 안 좋은 기억까지
모두 챙겨서 가져간 걸까.
미움과 원망의 마음이
이렇게도 쉽게 사라지는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사랑할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