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알콜릭이었다.

아빠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by 톰이

아빠는 알콜릭이었다.

집에 쌀이 없어 처자식이 단칸방에 모여 앉아 밀가루만 먹을 때도

시골에서 농사지어 보내준 쌀을 팔아 술을 마셨고,

엄마가 하루 종일 치열하게 벌어온 돈을 빼앗아 또 퍼부었다.

중학생이 된 내 생일날, 엄마는 시장에서 3천 원어치 불고기를 사 와 케이크 하나 없는 생일 상을 차려주며

“미안하다.”말하며 울었고, 내가 한껏 가난한 생일을 보내고 있을 때도 아빠는 밖에서 마음껏 취하고 즐겼다.


난 그런 아빠를 미워하다 못해 증오하며 살았다.

때로는 저주했고, 때로는 세상에서 사라지길 기도했다.

그게 안되면 차라리 나라도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평생 후회가 없을 거라 자신했다.


아빠는 나이가 들었고,

젊은 시절 퍼부었던 술이 독이 되어 병이 들었다.

몸이 완전히 망가지고 나서야 아빠는 술을 버리고 가족을 찾았다.


평생 자신밖에 모르던 아빠의 병든 모습은

어쩌면 받을 벌을 받는 거라는 이상한 희열도 들게 했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초라함과 나약함은 인간적인 연민이 들게도 했다.

그토록 미워하던 아빠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는,

오랫동안 힘주어 쥐고 있던 원망의 마음이 맥없이 무너졌다.

그렇게나 단단했던 증오와 미움이 알 수 없는 연민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빠는 가족끼리 여행은커녕,

카페에 가는 것도, 영화 보는 것도, 심지어 외식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가 같이 나가자고 하면 늘 “너희들끼리 갔다 와.” 말했다.

언니의 결혼을 앞둔 날이었다.

예식에서 입을 아빠의 정장을 사러 처음으로 다 같이 밖을 나섰다.

집에서 입는 티셔츠 하나도 엄마가 사다준 옷만 입었던 아빠는,

옷 하나 고르는 것도, 고른 옷을 입어보는 것도 모두 어색해했다.

구두를 고를 때에는 괜히 집어 들었다 민폐가 될까, 멀찌감치 서서 구경했고,

맘에 드는 구두를 찾았는지 잠시 들었다 가격표를 보고는 얼른 내려놓았다.

그날은 웬일인지 사람 많은 걸 싫어하던 아빠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빵도 먹었다.

아빠는 꽤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커피를 마시며 옛날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건넸다.

우리는 그날, 여느 행복한 가족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집에 오자마자 아빠는 정장을 곱게 펴서 걸어두고 한참을 바라봤다.

구두도 꺼내어 먼지가 안 묻는 자리에 조심스레 두었다.


그날 나는, 아빠를 정말로 이해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아빠는 이런 평범하지만 벅찬 행복을 정말로 몰랐던 게 아닐까.

아빠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건 아닐까.

아빠가 꿈꾸고 그리던 ‘아빠로서의 삶’도 사실은 이런 모습이 아니지 않았을까.

잠깐 잘 못 든 길로 너무 많이 와버려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게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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