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봐 이래서 통증이 없었던 거야" 옆에 있는 샘한테 희귀 케이스라는 듯 설명하는 교수님 얼마나 얄미워 보였 던 지 아시나요. 제가 실험대상은 아니잖아요..
"환자분 여기 와서 서서 사진 좀 보세요."
나 환자인데 왜 자꾸 왔다 갔다 하라 그래요... 팀장님인 줄.
"그럼 치료하면 잘 보이나요?"
"아 글쎄 잘 보이는 게 꼭 좋은 건가?(옆 샘에게 질문..)"
샘... 그 흔들린 눈동자가 날 얼마나 힘들게 하셨는지 아시나요? 그냥 교수님의 질문에 당황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어요.
계속된 '일반적인 케이스가 아니어서..' 병원 투어 끝 마지막 교수님을 만나 확정받은 속 시원함을 뒤로하고 너무 무서워서 매일 울게 만든. 생전 처음들어봤으며 내가 수술을 하는 건지 주사를 맞는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냥 슬리퍼 끌고 진료 왔는데 입원하게 만든 이 병.
뭐든지 최악의 케이스 그리고 애매하게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좋게 얘기해 주면 안 되나요. 결국은 계속 병원 잘 다니고 검사 잘 받으면 되는 건데 왜 꼭 그렇게 무섭게 얘기하시냐고요. (그래도 전 지금 교수님을 하나님 담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ㅜㅜ살려주세요)
12/31. 이 보다 눈이 싫었던 겨울은 없었다.
새해를 병원에서 맞이하는 기분? 창문 밖으론 눈이 펑펑 내리는데 나는 주사를 꽂고 있는 이 기분.
놀란 가슴으로 찾아와 준 친구들은 다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나의 모습에 다들 안심하고. 강력한 스테로이드 덕에 피부는 점점 팽창되어 간다... 이 김에 피부라도 챙겨볼까 싶다.
1/1. 퇴원.
마지막 주사쯤 되니 주사 때문에 팔을 제대로 필 수 없었고 위는 쓰렸고 그래도 마지막이니 힘내자. 좀만 버티자 좀만 버티자 이 맘으로 기다린 오늘.옆에 더 아픈 친구들도 잘 버티는데 이런 고급병 즘이야.
1/8.
스테로이드란 약은.
통증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느낌이다. 퇴원이 다가오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집에 돌아와서는 허리가 아파서 잠을 자지 못했고, 바닥에서 무릎을 세우고 며칠 잔 이후 허리가 낫자 이번엔 골반이 아프더니 일을 며칠 했더니 다시 귀 뒤를 쪼이는 두통이 시작되었고 좀 걷는 게 나을까 싶어서 걸었더니 허벅지 통증이 시작되었고 핸드폰을 몇 번 했더니 심장이 쪼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나을까 싶어서 책을 보고 유튜브를 봤더니 이젠 이명이 시작되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란 생각이 너무 힘들었다. 눈이 살짝이라도 다르게 보이면 다시 그 병이 아닐까? 머리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다른데 전이된 건 아닐까? 이런 불안을 교수님을 만날 때까지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정신병이 더 먼저 올 것 같았던 날들.
'나아지고 있음'의 힘
생각해 보니 입원했을 때 몸은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건 확연히 나아지고 있어서였다. 주사를 맞자마자 다음날부터 너무 상태가 좋아진 거다. 약이 듣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고 챙겨주시는 의료진들의 힘의 위대함을..ㅋㅋ.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나아지는 건지 나빠지는 건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이 것이 차이다.
퇴원의 자유를 얻었지만 불안감을 얻었다. 인간의 유한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사람이 얼마나 약해빠진 존재인가.
말 한마디 '괜찮아요'란 말이 너무 그리운 날 들이다.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였기 때문에 이번 병도 정말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몸이 날 배신해 버렸다. 이 놀라운 사건은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겉으론 약해빠져 보여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나는 생각보단 회복력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믿어왔는데. 요즘 회복보다 '회생'이란 단어가 자꾸 내 머리에 맴맴 돈다. 나 회생 가능?
처음에 듣고 수 없이 인터넷을 검색했을 때 블로그에 일일이 기록해 놓으신 분들을 보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저 와중에 저렇게 상세히 기록할 생각을 하셨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이 병은 다른 데가 아프지 않아서 가능할 수 있다 싶었다 정신만 챙기면... 동생이 혹시 모르니 언니도 사진 좀 찍어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게 오히려 기록을 남기고 뱉어내야 조금 더 나아지는 거였어. 나 혼자 생각하고 혼자만의 동굴에 빠져있으면 더 괴롭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