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 화엉 Jan 11. 2024

#6 로그 포스 [담엔 뭐 읽지?]

담엔 뭐 읽지? - 다섯 번째

‘위대한 항로’에 흩어져 있는 섬들은 어떤 법칙에 따라 자기를 띠고 있지

그래서 섬과 섬이 서로 끌어당기는 자기를 이 ‘기록 지침’에 기록시켜 다음 섬으로의 진로를 잡는 거다.


- <원피스> 24권, ‘로그 포스’에 대한 설명 중





2012년 결혼과 함께 우리 부부는 작은 방 하나를 서재로 꾸몄고 리바트 5단 책장을 하나 사서 서재에 두었다.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결혼 전에도 나는 책을 사지 않고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편이었기 때문에, 신혼집에 가져올 책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내도 비슷한 형편인 것 같아서 결혼 초기의 서재는 적당히 비어 있었고 책에 압도당할 같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성경 속 구절처럼 시작은 미약했지만 우리의 서재는 계속해서 증식했고 번창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마치 다른 종(種)이 각기 다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아내와 내가 서재로 가져오는 책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나는 자신의 뿌리를 잊고 돈에 무지했다. 온통 철학, 예술, 문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의 책을 읽었다. 서른이 될 무렵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 작가에게 푹 빠져서 그가 저술한 모든 책을 사 모으기도 하고, 누나와 한 달에 한 번씩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회사에서 멀지 않은 혜화동 ‘위트앤시니컬’ 서점에 가서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을 사오기도 했다. 반면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한 아내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화학의 시대>, <원자폭탄 만들기>와 같은 자연과학 도서를 주로 읽었고 법과 정치를 다룬 사회과학 도서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각자의 다른 취향이 서로 섞이지 않고 제각기 공존했고, 그러한 점은 책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나타났다. 


책장 왼쪽은 온통 내가 읽고 모으는 인문학 책이 가득했고, 그 반대편은 아내가 관심을 보이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도서로 채워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중심으로 두 진영은 각자의 영역을 지킬 뿐이었다. 십여 년 넘게 아내의 책들을 보아왔음에도 나는 단 한 번도 아내의 자연과학 도서를 읽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소헬륨 리베붕탄 질산플네 나만알지 펩시콜라 …… 고등학교 때 엉터리 방식으로 주기율표를 외운 것이 내가 아는 화학과 과학의 전부였고 그 지식은 고등학교 3학년을 기점으로 내게 흡수되기를 멈추었던 거다. 물론 고등학교 3년 내내 천문 관측 동아리를 하면서 하늘을 관측하고 우주를 탐구하는 것은 무척 좋아했지만, 그때의 우주는 지구과학으로서의 우주가 아니라 공간, 시간, 존재, 탄생과 죽음 따위의 인문학의 키워드로 이해된 우주에 가까웠다. 


아내의 책이 창조한 과학의 영역에 나는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서경식, 백석, 르네상스, 김환기, 허수경, 이런 이름에 열광할 때 큰 관심을 두는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책을 읽었다. 아내는 아내의 책을 읽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1년 동안 나는 770권의 책을 읽었는데 압도적으로 인문학과 문학 작품을 많이 읽었고 과학으로 분류된 책은 24권에 불과했다. 770권 중에 24권이니, 내가 지난 11년 동안 다가온 모든 책의 단 3%만이 과학에 그친 셈이다. 잘 사용하고 연마하지 않으면 근육이 커지지 못하고 점차 퇴화하는 것처럼 내 짧은 독서 인생에서 과학은 너무나 먼 대척점에 있었다. 가끔 과학 책을 읽어볼까 싶은 마음에 과학 책을 읽기 시작한 경우도 있었지만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2021년 겨울 룰루 밀러 작가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이 출간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선택하는 나만의 기준 중 하나는 미디어의 반응 여부다. 거의 모든 미디어가 편향 없이 어떤 책을 공통적으로 추천할 때면 조금은 관심을 갖고 책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같은 보수 언론뿐 아니라 한겨레, 경향신문과 같은 반대진영의 언론에서도 추천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감을 갖고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아차, 50페이지 정도 읽고 그만두었다. 어떤 책을 읽을 때면, 최소한 현재 내가 관심을 두거나 알고 싶은 궁금함을 충족시켜주거나 혹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지평을 넓힐 수 있겠다며 어느 정도 미래를 예상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50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그 책은 나의 어떤 것도 밝게 비추어주지 못했다. 나는 곧 흥미를 잃었고, 나는 과학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기존의 내 가설이 유효함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시간이 2년 정도 흘러 미국 동부에서 2년 정도 공부를 하게 되었다. 회사의 지원으로 집에 있는 대다수의 짐을 선박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서울에 살던 집보다 미국에 머물 집이 아무래도 좀 더 작을 것 같아서 짐을 줄이긴 해야 했다. 줄여야 하는 짐 중에는 지난 10년 넘게 제멋대로 증식한 수 백 권의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삿짐 무게를 줄여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아마 700권 내지 800권 정도의 책이 서가에 쌓여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줄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미국에 오기 직전의 나는, 거의 1년 가까운 유학 준비와 공부로 인해 글자라면 진절머리가 나던 상태였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마트에 장을 보러가는 심정과 비슷하게 나는 크게 아까운 마음없이 책을 마음껏 정리할 수 있었다. 중고서적으로 팔기도 하고 주변에 기증도 하는 방식을 통해서 700~800권의 책은 200~300권으로 압축되었고 살아남은 책만이 배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당도했다. 책이 줄어든 만큼 남아있는 책이 무엇인지가 한 눈에 더 잘 들어왔는데, 과학도서에는 좀처럼 손길이 가지 않았다. 한국에서처럼 읽고 싶은 책을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종이책을 구하기 어려우면 전자책으로 인문학 책을 구해서 읽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의 집에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만화 <20세기 소년>에서 우민당을 이끄는 빌런 ‘친구’가 떠오르기도 하고, 네 살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계속 친구라고 해보자. 친구는 나와 달리 한국에서의 짐을 많이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이라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을 가져왔고 책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다. 거실 한 편에 놓인 작은 책장, 작은 책장에 놓인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물론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에 텍스트를 다루는 것을 직업으로 했기 때문에 말과 글에 얼마나 익숙했던 삶이었을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고, 미국까지 당도한 책의 개수로 친구의 책에 대한 애정 여부를 판단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우리는 친구 집에 모여 오랜만에 한국식 치킨을 먹자고 모였는데, 닭다리를 뜯기 전 내 옆자리 작은 책장에 놓인 몇 권의 책 중 유난히 책등이 깨끗하고 두꺼운 책이 있어 꺼내 보았다. <아더랜드>. 진화에 대한 책이었다. 과학책이었다. 나는 “우와, 좋은 책 같네요” 라고 살짝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책을 꺼내 목차를 살펴보았다. 인간의 출현부터 생명의 기원까지 번영과 멸종의 거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했다. 나는 1분 정도 책을 들여다보고 다시 친구의 책장에 꽂아 두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책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인데, 마치 새 책처럼 유난히 깨끗한 책등 때문이었는지, 미국에서 쉽게 보기 힘든 한글로 쓰인 종이책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저녁을 먹으며 살짝 맛보았던 데낄라 돈 훌리오의 향 때문인지 이유는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제서야 비로소 지난 십여 년간 외면했던 아내의 자연과학 책장 앞에 마주 섰다. 아내와 아이가 모두 잠든 밤 열두시 무렵이었다. 나는 한 권씩 아내의 책을 살펴보다가 적색과 백색이 교차된 어떤 책 한 권 앞에서 수 초 간 멈칫했고 이내 그 책을 꺼내들었다. 15년도 더 전에 출시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가 그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라는 것은 알았고 20년도 훨씬 전에 그 책을 읽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지루해서 그만두었던 기억이 났는데, 이번에는 신(神)? 그렇다면 자연과학 책이 아니라 과학인이 바라본 종교에 대한 이야기일까, 혹시 그러면 인문학 책일까……? 이런 마음에 드디어 리처드 도킨스. 이제는 진부한 클리셰가 된 것 같은 그의 세계로 처음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글은 번역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날카롭고 유쾌했다. 책을 읽으며 실제 소리를 내서 웃기가 쉽지 않은데 그의 글을 읽다가 몇 번이나 웃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인문학 책이 아니라 종교에 진화라는 이름의 철퇴를 내리는 과학자의 자연과학 도서였다. 6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3일만에 다 읽어 나갈 무렵 여러 가지 궁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가 이야기하는 진화란 과연 무엇인지?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쓰는 리처드 도킨스의 다른 책은 무엇일지? 아니, 리처드 도킨스처럼 좋은 글을 쓰는 좋은 과학자는 또 누가 있을지? 끝없는 질문이 피어났다. 


<만들어진 신>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바를 내가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그 동안 외면했던 세계, 눈 감았던 세계에 조금은 밝은 빛이 스며들어 어렴풋이 그곳에 존재했던 형체들이 보이기 시작한 기분이었다. 좋고 나쁜 것은 그 다음에 판명할 일이었다. 우선은 식별하기 시작한 것이 중요했다. 나는 다시 아내의 책장 앞에 섰다. 그제서야 이 책장에 놓인 책들이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과학 분야의 책이 있는지, 어떤 작가가 있는지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좀 더 해답을 얻고 싶은 것은 리처드 도킨스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이기적 유전자> 이외에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 더 알고 싶어진 거다. 그의 다른 책도 그렇게 재미있을까? 그렇게 나는 그의 또 다른 책인 <지상 최대의 쇼>를 꺼내 들었고, 그가 이야기하는 진화론의 세계에 점점 깊숙하게 다가섰다. 정말 홀린 듯이 읽었던 듯 싶다. 625페이지의 책을 이틀 반 만에 다 읽었으니.


한 권의 책이 끝날 무렵 다른 질문이 계속 피어났다. 진화란 무엇인가? 진화론이 말하는 기본 가설에 역행하는 인간의 오만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진화론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어울린다는 다양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생물학적인 다양성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다양성은 무엇인가? 다양성을 늘리지 않을 때 차별과 억압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 …… 그렇다면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피어난다. 증식한다.


이 질문들은 처음부터 함께 존재하지 않았다. 첫 번째 질문이 시작될 때 두 번째 질문은 존재하지 않았고 사실 무엇이 두 번째 질문이 될지 역시 정해지지 않았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고 그 여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무엇이 두 번째 질문이 될지가 정해졌다. 그 책을 읽을 때의 나의 환경, 책 속의 다양한 정보 중에서 나에게 보다 친밀하게 와닿은 것들, 책을 읽는 가운데 조금씩 딴 생각을 하며 피어난 여집합의 궁금함들. 그런 것들이 모여 두 번째 질문을 가까스로 만들어낸다. 질문은 질문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징검다리를 건넌다. 작가 김연수의 말처럼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나도 그 방향과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질문의 가지들. 그 가지 속에서 나는 2년 만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다시 만났다. 진화론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난 이후에, 그렇다면 진화론에 역행하는 인류의 오만스러운 태도는 무엇이었는지, 생물 사이에 우열이 존재하고 모든 것은 인류가 정하는대로 명명(命名)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류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던 때에 이 책이 다시, 제일 먼저 다가왔다. 


나는 두 가지 의미로 전율하며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책 자체였다. 왜 이 책이 모든 언론에서 조명하며 추천을 아끼지 않았는지, 모 온라인 서점에서 2022년 올 해의 책으로 선정 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책이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아내에게 이야기하자, 아내는 “그래, 그 책을 인생 책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그런데 정말 그런 책이야?” 라고 말한다. 인생책…… 까지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2023년의 내게 충격을 주는 책이었다. 떨림과 울림을 간직한 책이었다.


그러나 더 큰 전율은 책을 읽는 나에 대한 것이었다. 2021년 처음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 때, 첫 50페이지를 읽는 동안 내 마음 속에서 빛이 환하게 밝혀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의아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되지 않자 활자가 내 마음 속에서 흡수되지 않고 반사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가치가 없는 책이라며 무시하진 않았지만,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읽을 때 이 책은 한 권의 점이 아니라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진화론부터 다양성, 억압과 차별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연결된 하나의 선에 가까웠다. 


미국에서는 주로 전자책으로 책을 빌려서 읽는다. 익숙해지니 나름 괜찮다.


나는 뇌과학에서 말하는 뉴런과 시냅스를 떠올렸다. 하나의 뉴런이 가진 정보가 다른 뉴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쪽 뉴런의 축삭말단과 다른 쪽 뉴런의 가지돌기 사이의 접합 부분인 시냅스가 활성화되어야 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시냅스가 밝게 빛나며 활성화되고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선이 이어지며 흐름이 형성되는 것은, 마치 한 권의 책과 다른 한 권의 책이 질문과 질문으로 연결되며 서로 단단하게 이어지는 경험과 유사했다. 그래서 더 큰 전율을 느꼈던 것이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책이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없다는 생각, 시냅스가 활성화되면 결이 맞지 않던 것도 나와 합치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시냅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한 권의 책에서 다른 한 권의 책으로 계속 질문의 기록 지침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담엔 뭐 읽지? 네 번째 법칙은, 책이 알려주는 다음 지침을 따라 가라는 것이었다.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로그 포스 (Log Pose)는 바다 위 여러 섬에서 발현되는 자기를 기록하는 특별한 나침반이다. 이 만화 세계관에 등장하는 여러 섬은 각자 고유한 자기를 발산하고 있는데, 한 섬에 도착한 이후에 며칠을 기다리면 이 로그 포스의 기록이 채워지고 그제서야 이 다음 섬이 결정된다. 즉 자신이 최후의 목적지가 어디가 될 것인지 처음부터 그 위대한 항로를 모두 알 수는 없고, 이 다음 섬, 그 다음 섬, 또 그 다음 섬을 하나씩 가까스로 알아갈 수 있을 뿐이다. 


며칠에 걸쳐 한 섬에서 로그 포스의 기록이 찰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며칠에 걸쳐 책을 읽고 그 독서가 끝나갈 무렵이면 비로소 다음 책이 무엇이 될 것인지 보일 때가 온다. 다만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독서 여정 역시 하나의 단편적인 항로로만 정해지진 않는다. 한 권의 책을 읽고 피어나는 질문은 하나가 아닐 것이고, 질문에 질문을 더하다 보면, 몇 세대만 지나 돌아봤을 때 비정형적으로 뻗어 나간 나뭇가지와 비슷한 모양으로 우리의 질문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처음에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이 연결고리를 되돌아봤을 때 우리 모두 전율할 것이다. 나의 사유라는 것이 어떻게 다양하게 진화하였는지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2023년 11월. <리처드 도킨스>로부터 시작된 여행은 <진화론>, <다양성>을 지나 <차별>이라는 키워드에 이르렀고 이 즐거운 연결고리를 매개로 한 달 동안 15권의 책을 읽었다. 마침 학교 시험이 없던 무렵이라 쫓기는 감정 없이 책을 쫓았다. 그 한 달은 무척 행복했는데 담엔 무엇을 읽어야 할지 저절로 로그 포스가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를 다룬 <와일드후드> 를 마지막으로 읽고 나니 더 이상 이것과 관련한 질문이 새롭게 떠오르지 않았고, 로그 포스의 기록은 멈추었다. 나는 다시 다음에 무엇을 읽어야 할지 새롭게 고민하고 탐색해야만 했다.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지난 한 달 간의 독서 여정을 펜으로 정리한 마인드 맵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왼쪽 상단에 “생각했으나 읽지 않은 책”이라고 쓰고는 그 밑에 <침묵의 봄>과 <랩 걸>을 적어두었다. 진화론과 다양성을 주제로 책을 고를 때 후보에 올려두었지만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선택하지 않은 책이다. 언론에서 조망하고 독자들이 추천하는 것을 보면, 이 책들은 둘 다 아주 훌륭한, 읽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와닿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조금은 알겠다. 이 책을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아직은 나를 찾아올 시간과 형태를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미래의 새로운 질문의 선(線) 위에서 이 책의 시냅스가 밝혀져 결국 읽게 되리라는 것을. 


아직은 그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저 두 권을 읽을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다. 

이전 05화 #5 모르는 사람의 책장 [담엔 뭐 읽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