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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화엉 Dec 27. 2023

#4 12억 짜리 메모 한 장 [담엔 뭐 읽지?]

담엔 뭐 읽지? - 세 번째

가끔 너를 찾아 땅 속으로 내려가기도 했단다

저 침침하고도 축축한 땅속에서 시간의 가장자리에만 머물러 있던 너를 찾으려 했지


- <밤 속에 누운 너에게> 中, 故 허수경





각자 자신만의 책을 읽고 정리하는 습관이 있을 텐데,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Google Spreadsheet로 읽은 책의 목록을 기록해 둔다. YES24나 알라딘에서 활동하는 수 많은 전문가들처럼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서평을 쓰기란 쉽지 않았고, 그냥 내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간단히 기록하자는 마음에 시작하게 된 작은 습관이다. 단출한 습관이다. 책 제목, 출판사, 저자, 읽기 시작한 날짜, 다 읽은 날짜, 페이지 수, 그리고 문학인지 사회인지 과학인지 예술인지 인문인지 대략적인 책의 종류만 분류해서 적어둔다.


한 권에 한 줄씩. 그렇게 1년에 읽은 책을 하나의 Sheet에 정리하는데 1년이 지나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새로운 Sheet을 추가해서 첫 칸부터 또 읽은 책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한다. 2012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책 읽기 기록이 벌써 10년을 지나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무수히 많은 활자를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였지만 남은 것은 이 Google Spreadsheet 하나뿐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난 10년 동안 Google이 망하지 않고 감사하게도 이 문서 서비스를 제공해줬구나, 이런 생각도 든다.


처음에는 읽은 책의 목록만 적어두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두 해 정도 1년에 100권의 책 읽기를 하고 나자 책을 읽고 나서 뭐라도 조금은 적어 두자는 마음이 생겼다. 전문적인 서평을 쓰기란 어려웠지만, 그 즈음 퍽 동경하게 된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영향을 받은 터라 한 줄 멋진 Comments로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정리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던 듯싶다. 그래서 2014년부터는 칸을 하나 더 만들어서 책을 읽은 후 한 줄 Review를 적기 시작했다. 글자 수는 30자가 넘지 않도록 했다. 2014년의 첫 책인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나서는 “우리의 행동은 직관이 선택한 무의식적인 결과들이다” 라는 글귀를, <간송 전형필>을 읽고 나서는 “문화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거룩한” 이라고, <백석 평전>을 읽고 나서는 “올 해의 마지막 책, 눈물이 났다, 힌 바람벽에 내 앞에도 지금……” 이라는 글귀를 적어 두었다.


애초에 의도는 이동진 평론가처럼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문장으로 내가 읽은 책을 기록해두자는 것이었겠지만, 처음 취지와 달리 Review라고 적힌 내용은 날것에 가깝다. 단순히 정말 좋았다, 또는 꽤나 실망스러웠다고 적혀진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1년의 마지막 날에 Spreadsheet를 열어 놓고 올 해 내가 어떤 책을 읽었고 그때 어떤 평을 남겼는지 돌아보는 건 무척 즐거웠다. 단순히 읽은 책 목록만 봤을 때는 기억나지 않던, 책을 읽을 때의 물리적인 나의 모습과 심리적인 마음 모두가 조금씩 기억나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30자 Review는 책의 내용을 정확히 담아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책을 읽었던 시간과 감정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 싶어서 몇 자 적어둔 것에 가까웠다.


몇 년이 지나 2017년부터는 한 줄 Review에 더해 ‘책이 남긴 꼬리’ 라는 탭을 하나 더 만들어서 몇 가지를 더 적어보기 시작했다. 한 줄 Review가 책을 읽고 난 심경을 적어둔 것이라면, 책이 남긴 꼬리는 책을 읽고 난 뒤에 이 책 이후에 어떤 내용의 책을 읽으면 좋을지 몇 개 키워드를 적어두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파란 표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를 읽었는데 그 책처럼 지금의 책과 이 다음의 책의 꼬리를 이어줄 연결고리를 적어두고 싶었다.

이런 식이다. 2017년 5월 <루쉰, 길 없는 대지> 라는 책을 읽고 나서 1줄 Review에는 크게 감흥이 없다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루쉰의 평전을 기대했는데…… 이미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은 100의 10도 와닿지 못한다.” 라고 말이다. 그런 무정한 감정 속에서도 이 책에 이어 뭔가를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었는지 그 옆에는 루쉰, 광인일기, 중국근대사 라는 단어를 적어두었다.


루쉰이라는 작가의 삶을 더 이해해보고 싶었고, 그가 남긴 대표작인 광인일기를 다시 한 번 제대로 읽고 싶었고, 또 루쉰이 살다간 중국의 근대 역사는 어땠는지를 총체적으로 알아보자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뭔가를 더 알아보고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 있었겠지만 그 책 이후에 루쉰, 광인일기, 중국근대사와 관련한 책을 찾아 읽어보진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에 기대어 다른 무언가를 더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그 마음을 기억하려 기록해 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읽은 책 목록의 기록. 이동진 평론가를 동경하며 시작한 한 줄 Review.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의 키워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이다. 책을 읽고 났을 때 그 내용을 더 의미 있게 기억하고 연관된 실을 따라 다음의 읽을 거리를 찾으려는 노력의 흔적들이었다.


긴 시간이 지나 2022년에는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주변에 보이는 아무 노트 한 장을 찢어 책에 끼워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뭔가 메모를 하고 싶으면 찢어진 종이를 꺼내 그때 그때의 생각을 적어둔다. 책에 기록된 아름다운 구절, 정신이 번쩍 드는 문장을 적어 두기도 한다. 박웅현, 유병욱, 이유미 작가와 같이 광고계에 종사하는 카피라이터의 습관도 대개 그렇다. 마음을 울린 문장을 수집하기. 그리고 어딘가에 붙여두고 오며 가며 마음에 각인하기. 미국에 와서 전자책으로 책을 읽어야 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찢어진 메모에 적힌 것은 유병욱 작가의 취미와 같은 문장 수집도 물론 있겠으나 보통 세 가지 유형의 생각을 옮겨 둔다.


황정은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 있다


하나는 책 속에서 작가가 언급하는 책이나 읽을거리를 적어두는 거다. 황정은 작가의 신작 에세이 <일기>를 읽던 중 등장한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따위의 책을 따로 적어두는 식이다. 황정은 작가가 자신의 책에서 앞서의 두 책을 꼭 읽으라고 강조하거나 추천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은 원래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다며, 그래서 요새 이런 책을 읽고 있을 따름이라고 담담하게 밝힐 뿐이다. 작가가 쓴 책과 작가가 언급한 책이 꼭 관련이 있는 관계도 아니다. 책에 언급된 그 책을 읽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그 책을 읽고 싶은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좀 더 황정은 작가의 일상과 사상에 가까워질 것만 같은 기대감이 내 안에서 피어난다. 맞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가 꼭 무엇을 추천하지 않더라도 책 속에 스치듯 등장한 여러 책을 나는 잊지 않고 기록해 둔다. 언젠가는 그 책을 읽으며 작가에 좀 더 가까워질 것만 같은 내 자신을 꿈꾸며. 이런 경우는 보통 산문집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 가능한 방식이다.


두 번째 유형의 생각은 꼬리 물기다. 작가가 말하는 것을 좀 더 입체적으로, 포괄적으로 알기 위해 이런 것을 알아야하겠다며 연상되는 것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적는 거다. 예전에 집 근처 도서관에서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인 전영애 작가가 쓴 <시인의 집>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반가워한 적이 있다. 독문학을 본격적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민음사에서 출간한 헤르만 헤세 작품을 읽고 퍽 감명 깊었던 시절이 있는데, 그 판본의 번역을 전영애 작가가 한 것은 어렴풋이 기억해두고 있었다. 인상깊은 번역가가 낸 책을 읽어 보니 평생에 걸쳐 작가가 연구한 독일 문화권의 시인 여럿의 매력을 새로 알게 되었다. 파울 첼란,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쿤체, 볼프강 괴테,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이 책에서 제한적으로 다루는 작가들의 문학 자체도 매력적이었지만 이들을 좀 더 알기 위해서는, 정확히는 전영애 작가가 이들 시인의 매력에 푹 빠진 감정에 동조되기 위해서는 나 역시 작가들의 작품 원전을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메모를 꺼내 고민하다가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이렇게 두 단어를 적어 놓았다. 파우스트라는 단어를 보니 중세 이후부터의 선과 악, 신과 악마의 대립이라는 키워드가 생각났고 그런 키워드도 적어놓았다. 선과 악, 신과 악마라고 적자 단테의 <신곡>도 떠올랐고 단테가 떠오르자 피렌체, 르네상스 이런 단어들도 떠올랐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적어 놓았다. 시인의 집, 볼프강 괴테, 파우스트, 선과 악, 신곡, 단테, 피렌체, 르네상스…… 이 단어들은 모두 하나의 물결처럼 서로 연결되어 내 머리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런 물결을 헤아리고 나면 전영애 작가가 말한 독일 문학의 정수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걸까? 그런 기대감에 미래에 읽을 책의 파편들을 현재 시점에 가쁜 숨을 쉬며 기록할 뿐이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8월 5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두이노의 비가>를 인생의 책 중 하나라고 밝힌 신형철 평론가도 떠올랐고, 신형철 평론가가 해당 칼럼에서 언급한 다른 책과 시집도 기억났다. <느낌의 공동체>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담긴 작가의 깊은 사유도 다시 그리워졌다. 두이노라는 글자 자체도 인상적이었다. 두이노가 위치한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 해안가의 풍경은 어떤지, 그곳이 위치한 북 이탈리아 인근의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만의 독특한 역사도 궁금해졌다. 알고 싶은 것, 궁금한 것은 계속 확장된다. 넓어지는 관심만큼, 찢어진 종이에 두서없이 적는 메모가 계속 길어진다. 그 모두를 다 읽을 것이란 확신은 없지만.


찢어진 종이에 메모되는 마지막 유형의 생각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책을 읽을 때면, 눈으로는 활자를 쫓고 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나의 머리로 책의 내용을 흡수하고 이해하고 동시에 새로운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반복한다. 이 책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말과,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이 두 말은 같은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책을 읽으며 머리 속에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 그것은 꼭 책에서 언급된 무언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 어떤 활자가 내 머리에 Input되어 연료로 작용했는데, 그것과는 전혀 엉뚱한 Output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위대한 사람의 삶을 알고 싶어서 한때 자서전을 여럿 읽던 시절이 있었다. 2018년, 스티브 잡스 전기 작가로 유명한 윌터 아이작슨의 신작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읽던 중이었는데 그 당시의 나는 회사에서 한창 어떤 전략 수립 보고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회사에서 무슨 전략이라는 것을 수립해서 경영층에 보고하는 것은 두 가지를 요구한다. 고통스럽지만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야 하고 꺼내어진 발상을 최대한 구조적으로 체계화하는 것. 창의와 구조. 그런 일과 중에 르네상스의 빛나는 시대를 연 다빈치의 전기를 읽으니 적잖이 느껴지는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메모에 “기하학을 다루면 생각의 구조화에도 도움이 될까?”, “수학적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예술적 언어로 표현하는 삶” 따위의 생각을 적어두었다. 어떻게 하면 더 보고서를 구조적으로 잘 구성할 수 있을지, 그리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어떻게 하면 미학적으로도 아름답게 보이도록 할 수 있을지 그런 것을 고민하던 나의 무의식이 남긴 실마리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평전을 읽고 나서 기록한 것들


눈으로는 활자를 읽고 있지만 어떤 영역에서는 활자를 멍하니 쳐다보며 나에 대해 곱씹어보는 내가 동시에 존재한다. 책을 읽는 나. 책을 읽는 나 옆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나. 두 번째 나는 무의식 중에 나에게 좀 더 절실한 언어를 메모에 옮겨 놓게 된다. 본래 자신의 맨 얼굴을 찾고 싶다(강신주의 철학 책을 읽으며), 문자의 손님이 아니라 문자의 주인이 되어라(고미숙의 열하일기에 대한 책을 읽으며), 21세기에도 종교인의 길을 걷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황정은의 산문집을 읽으며) 이런 선문답과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말이다.



담엔 뭐 읽지? 세 번째 방법은 책을 읽으며 메모를 남기는 거다. 노트 한 권을 사서 정갈하게 기록하는 것도 좋지만 찢어진 종이, 작은 포스트잇, 아무 종이나 좋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되고 생각나는 지금 무의식의 흐름을 거칠게 옮겨 적는다. 책에서 말하는 또 다른 읽을 거리. 책에서 말하는 것을 더 입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마음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키워드들, 그리고 책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과 선문답들 …… 정해진 주제는 없다. 정해진 방식도 없다. 책을 읽으며 지금 나를 사로잡는 단어들이 휘발되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기록하자. 생각보다 기억은 금방 소멸된다.


책을 읽으며 메모를 남기는 것과 책을 다 읽고 나서 Review를 쓰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행위다. Review라는 것은 독자로서의 내가 주체가 되어, 객체인 책의 내용을 샅샅이 파고 들어 그 내용을 더 잘 이해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다. 반면에 책을 읽으며 메모를 남기는 과정에서는 책을 쓴 작가의 입장에서, 작가 옆에 나란히 서서 어떤 삶을 존중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가깝다. 작가는 지금 무엇에 감응하고 있을까, 작가는 어느 지점에서 삶의 떨림을 느꼈고 그 떨림이 있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것을 경험했을까,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하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의 작가는 어떤 행위와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책을 읽으며 여러 메모를 황급히 남기게 한다. 결국 지금 내가 읽는 책을 쓴 그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으면 사실 기록할 것도, 잊기 전에 남겨둘 기억도 없는 셈이다.


그렇게 간신히 몇 자의 단어로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우고 나면 그것들은 온전히 이 다음에 읽어볼 책의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우주 생명 탐사로 비유해보면 어느 은하단 어느 별에 생명이 있을 수도 있다는 신호가 간신히 감지된 것이다. 나중에 이 메모에 적혀진 키워드와 관련한 어떤 책을 꼭 읽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설령 어떤 책을 읽는다고 해서 지금 느낀 것과 동일한 벅찬 감정을 느끼며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며 만족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생명이 있을 수도 있는 별에 갔을 때 무조건 생명이 있으리라고 우리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어느 책의 행성으로 이동했으면 하는지 최소한의 단서를, 메모는 우리에게 말없이 제시할 뿐이다. 그 단서에 기대어 다음 장소로 가거나 가지 않거나, 그것은 지금의 내가 결정할 몫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한 단서를 일단 계속 기록하면 된다.



며칠 전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져온 몇 안 되는 시집 중에, 고 허수경 시인이 2011년 문학동네를 통해 펴낸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꺼내 들쳐보았다. 빨간 시집 표지를 들추자 5년 전 시집을 읽으며 남겼던 노란 색 메모 한 장이 붙여져 있었다. 번역가이자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누나와 함께 한 달에 한 권 시집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을 꽤 오래 가진 적이 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햇수로 3년을 했다. <나와 누나의 서재>라는 이름이었다.


누나와의 이 모임에서 선택한 마지막 시집이 고 허수경 시인의 이 시집이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각자 시집을 읽고 만나 어떤 것을 느꼈는지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이 시집을 읽고 만나자는 이야기만 반복하다가 바빠져서 결국 만나지 못했다. 시집에 남겨진 메모는, 그 만나지지 못한 모임을 위해 적어둔 몇 가지 생각의 조각들이었다. 발설되지 못한 사유의 편린들이었다.


수년 전의 나는, 30대 중반의 나는 이 시집을 읽는 중간에 이런 것을 느꼈구나 …… 어떤 구절은 지금의 나로서는 해석할 수 없기도 했지만, 어떤 구절은 지금도 너무나 잘 이해되는 것이 있었다. 유물처럼 발견된 이런 메모들이 이 다음에 읽을 무언가를 찾아 나서게끔 만든다. 당장 메모에 적힌 뭔가를 얻어 내기 위해 책을 사러 갈 필요는 없다. 설령 수 년의 시간이 지나 이 기록을 남긴지 10년이 지난 2029년에 이 메모를 다시 발견할 때까지 이 메모가 시집 속에서 잠들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이 다음을 위한 단서가 기록되어 있다는 그 정도에 만족하는 마음이다. 나는 언제나 그 메모가 12억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기억은 너무나 쉽게 왜곡되고 휘발되어 사라진다. 그러므로 그 순간을 놓치지 말자. 기록되어 있다면 언젠가는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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