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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화엉 Dec 20. 2023

#3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아? [담엔뭐 읽지?]

담엔 뭐 읽지? - 두 번째

예쁜 모습만 보이는 것도 나쁘진 않아

하지만 나는 베스트 앨범은 사지 않아


- <베스트 앨범은 사지 않아> 중, 가을방학 노래





나는 오랫동안 어떤 증상을 겪으며 힘들어했다.


그 증상의 이름은 베스트셀러 기피증. 이 증상의 징후는 일반적으로 대중이 선호하는 사회, 정치, 문화, 예술 현상이 있을 때 그것에 섣불리 따라가지 않고 일부러 거리를 두려 한다는 점이다. 남들이 어떤 하나에 열광하고 모든 매체가 그것만 말할 때면, 와 정말 그게 그렇게 인기가 있다니 어디 한 번 나도 해볼까, 라는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게 무엇이라고 저렇게 열광하는 것인지, 혀를 한 번 차고는 아예 등을 돌리고는 보거나 듣지 않는 괴로운 증상이다.


인생을 주류와 비주류라는 두 카테고리로 나누어 본다면, 나는 스스로를 늘 비주류로 인식했고 비주류의 삶을 지향했다. 평범한 가정 속에서 평범한 학창 생활을 보내고 남들과 비슷하게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에 들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 평범하기가 가장 어렵다는 말을 떠올리며 누군가는 나의 평범함을 주류의 삶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주류와 비주류는 상대적인 것이다. 나는 때로는 주류로 해석될 수 있는 집단에 배정되었지만 그 속에서 끊임없이 외행성으로 머물기를 고집했다. 어쩌면 정신 승리일 수도 있겠다. 다만, 주류의 중력에 이끌려 가는 것은 옳은 삶의 태도가 아니라고, 비주류로 머물면서 자신만의 중력을 키워 스스로 회전하는 것이 더 옳은 삶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나는 대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대중이 아니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중이기를 기피하려는 증상은 책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 작품을 둘러싼 지점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어느 작가가 노벨문학상, 부커상, 공쿠레상처럼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유명한 상을 수상했다고 해보자. 국내 문학계와 언론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하며, 앞다투어 작가를 인터뷰하며, 서점에서는 작가의 이번 수상작품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출간된 모든 책을 한데 모아 전시하며, 판매부수가 많아 세 달 만에 벌써 몇 쇄를 다시 찍었다는 말도 곁들일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 적지 않은 이들이 그와 그 작품에 열광할 것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내가 예전부터 그 작가를 주목했다고 이야기하며 신이 나서 이야기할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나는 약간 엇나간 마음이 든다. 나는 타인이 열광할수록 더 차갑게 그것을 외면하려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베스트셀러 서가를 둘러보기야 하겠지만, 나는 절대 그 책을 읽지 않는다. 아마 시간이 흘러 아무도 그 작가와 그 책에 신경을 쓰지 않을 즈음 간신히 그 책을 읽어볼까 고민할 정도로, 대중에게서 조명받은 책에는 아무래도 시선과 손길을 아끼게 된다.


지금 인기가 있는 책을 의무적으로, 무조건적으로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계속 찾아 읽어보고 싶은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는 알림이 오면 서점 신간 코너에 들려 책을 사오곤 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은 미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전에 사 버리곤 했고, 책을 다 읽고 날 즈음이면 이 주에 가장 인기가 많은 책으로 올라온 것을 본 적도 많았다. 어쨌든 좋다. 그럴 때면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관심을 받는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잠깐 합류했던 셈이다. 그렇지만 나의 책 읽기 성향과 접점이 없는 다수의 베스트셀러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읽지 않고 지나갈 책이라고 여겼다. 무관심과 약간의 비웃음. 이것이 그들을 바라보는 솔직한 감정이었다. 퇴근길 광화문역 대형서점에 잠깐 들려 요즘에는 어떤 책이 인기가 많은지 서가에 놓인 책을 볼 때, 온라인 서점 베스트 코너에서 이 주에 가장 많이 팔린 책, 이 달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을 볼 때면 의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요즘에는 이런 책이 인기가 많다고, 요즘에는 이런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을 확인할 때면 조금은 조소(嘲笑) 어린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비웃음에 가까웠다. 그래 너희들은 이런 것을 읽는구나, 나는 나의 성향에 어울리는 좋은 책을 찾기 위해 이토록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너희들은 너무나 손쉽게 서로에게 휩쓸려 어느 한 곳으로 우루루 몰려가고 있구나, 그렇게 선택한 책이라는 것이 겨우 그 정도의 책이라는 구나. 이런 좁은 마음으로 대중을 바라봤다. 결국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베스트하게 셀링되었다는 것, 많이 팔렸다는 것을 말했다. 나는 많이 팔린다는 것이 좋은 책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짐작했다. 나의 증상은 쉽게 호전되지 못했다. 많이 팔린다는 것. 대중이 좋아하는 것. 좋지 않은 것. 내게 이 단어들은 등가였다.


베스트셀러 기피증이 조금씩 낫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 고전 문학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내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세 권 전집을 구입해 둔 것이 집에 있었다. 회사에서 <안나 카레니나> 뮤지컬을 단체로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책을 미리 읽고 가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여러 출판사에서 펴낸 판본이 있는데, 집에 있는 것은 문학동네 판본이고 검은 색 표지가 괜찮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책을 구매한 이후에 나도 아내도 그 책의 존재를 잊어버렸는데, 어느 날 새 책의 깨끗한 모습 그대로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의 나는 열심히 책을 읽으려 노력은 했으나, 고전 문학은 물론이고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를 거의 읽지 않고 있었다. 인문, 철학, 역사, 사회, 예술과 같은 소위 인문학으로 분류되는 책만을 편식했다. 문학 작품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아마 대학교 시절이었는데, 국문학과 수업을 교양 과목으로 들으며 읽어야 했던 근대 문학 몇 편이 전부였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나이가 들수록 문학이라는 것을 읽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내가 서 있고 생활하는 터전은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인데 문학 속 허구의 세계가 현실 속 나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책을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책을 덮고 나면 사라질 가짜 이야기 같았다.


불현듯 아무도 찾지 않는 <안나 카레니나>를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2월 25일 아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어쨌든 그로부터 3주에 걸쳐 이 장대한 서사를 읽고 난 뒤 톨스토이의 모든 작품을 읽겠다고 생각했다. <전쟁과 평화>, <부활>과 같은 장편은 물론이고 중단편도 찾아 읽었다. 톨스토이의 모든 작품을 읽고 나니 푸쉬킨,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고골과 같은 모든 러시아 근대 문학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반경은 계속 넓어졌다. 러시아에서 시작해서 헤르만 헤세, 서머싯 몸, 빅토르 위고, 헤밍웨이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의 고전 문학을 두루 읽었다. 비교적 현대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들도 찾아 읽었다. 모옌, 가즈오 이시구로, 아모스 오즈.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가 즐거워졌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 2000년대 한국 작가의 작품도 깊게 파고 들었다. 김영하, 김연수, 김숨, 권여선, 황정은 …… 2018년, 2019년, 그리고 2020년까지 그들과 함께 밤을 지샜다.


4년 동안 40권의 고전 문학을 읽고 나니 (그 당시에는 상당히 치열하게 고전 문학을 읽었지만 뒤돌아 손꼽아보니 4년에 고작 40권뿐이며, 여전히 읽지 못한 고전 문학이 이토록 많다는 것에 약간은 좌절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의 어떤 것을 할 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소구될 수 있는 무언가가 그 작품에 있다는 것이다. 작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고전 문학이라는 것은 당대에도 큰 인기를 끌었고 작가 사후에도 수 십 년, 수 백 년 동안 질긴 생명력을 유지한 녀석들이다. 살아남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베스트셀러라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고전 문학은 대중적이지 않을 수 없다. 대중에게 호소되는 것이 없었다면 시대를 초월하여 이토록 많은 대중이 그 책을 선택했을 리 없다.


많은 이들이 읽고 사랑한다는 이 대중성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일반 대중에게 공통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성질. 그리고 일반 대중이 친숙하게 느끼며 그것에 동감할 수 있는 성질.


돌아보면 사람 사는 것이 크게 특별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사랑, 삶, 죽음, 고난, 갈등, 자아. 몇 개 안 되는 주제로 압축된다.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최명희의 <혼불>, 나보코프의 <롤리타>,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폭풍의 언덕)> 모두 거칠게 말하면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다. 금지된 사랑은 짜릿하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선을 넘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궁금해하고 동경한다. 또 어떤 이들에겐 금지된 사랑이 현실에서 지금 고민하는 점이기 때문에 더 몰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사랑, 죽음, 갈등 이런 것들은, 나를 포함해 모든 인류가 고민하는 것, 얻기를 희망하는 것, 혹은 가질 수 없어 욕망하는 것, 마음에 계속 담아두고 곱씹어보는 것…… 결국 그런 것 아닌가. 그것이 우주에서 바라 보았을 때 대중이 살아가는 방식 아니던가.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지 않던가. 그리고 그 몇 안되는 키워드들이 조금씩 비틀어질 뿐 결국 같은 음악으로 재생되지 않던가.


나라는 사람도 다른 사람에 비해 얼마나 더 특별할 것이며 더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아닐 것이다. 나도 결국 무수한 대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도 타인이 고뇌하는 사랑, 죽음, 갈등, 자아 등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는 사람이고, 내가 고민하는 만큼 무수한 타인도 비슷하게 고민한다. 그런 대중의 공통적인 속성에 호소했기 때문에 고전 문학은 그토록 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나는 고전문학이라는 어제의 베스트셀러를 읽으며 오늘의 베스트셀러 역시 읽어 볼 만하다는 생각까지 나아갔다. 지금 대중이 즐겁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애써 대중과 나를 분리해서 그들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보았을 때 나 역시 무수한 대중의 일부일 테니, 대중의 기호와 나의 기호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안나 카레니나>로부터 시작된 각성의 끝은 이런 것이었다.




담엔 뭐 읽지? 두 번째 법칙은 베스트셀러를 읽어보는 거다. 여러 방법이 있다. 대형 서점에 가서 영역 별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인 책을 두루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은 어떤 책이 새롭게 출간되어 어떤 책이 잘 팔리고 있는지, 대형 출판사에서는 어떤 포인트를 잡아 어떤 책을 세일즈 하는지 그런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 책도 결국 팔려야 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이런 저런 테마를 잡고 여러 책을 조합해서 고객에게 어필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독자에게 어필하는 테마라는 것도 결국 현재의 소비 트렌드, 대중 무의식에 잠재된 지향 가치를 담아낸 것이므로, 지금 저들은 이런 것을 우리에게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구나, 라는 마음을 갖고 찬찬히 들여다봐도 좋겠다.


그런데 책이 너무 많은 대형서점에서 종종 무엇을 살펴야 하나 길을 잃기 쉽다면 동네 작은 서점에 가도 좋다. 동네 서점은 책을 파는 서점이기도 하지만 주변 학생들이 필요한 참고서와 문구류를 제공하는 지역 거점에 가깝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도 많다. 때문에, 대형서점 대비 상대적으로 적은 책을 구비할 수밖에 없어서 지금 인기가 많은 책을 들여다 놓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베스트셀러가 무엇인지 가장 압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동네 서점만의 매력이 있다. 그곳에는 의외로 모든 책이 있다.


나는 동네 작은 서점이 좋다. 좁은 장소에 빽빽하게 놓인 서가, 서가 가득히 층을 쌓아 올린 책들, 예전의 베스트셀러였지만 책을 사는 손님이 없어 색이 약간 바랜 낡은 표지, 책보다 더 많은 종류의 중학교 고등학교 참고서와 문제지, 낮 시간이면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공간의 음색. 그런 공간에서라면 베스트셀러라고 여기 놓인 책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왜 이 책이 인기인지, 이 책의 무엇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공통적으로 움직이는지 좀 더 생각하며 책을 고를 수 있게 된다.


그런 마음에, 가끔씩 집 앞 작은 서점에 들려 몇 권의 책을 사서 읽어 본다. 한동일의 <믿는 인간에 대하여>, 문유석의 <최소한의 선의>, 리베카 솔닛의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핸드폰을 꺼내 이 책이 현재 잘 나가는 책인지 같이 확인해본다. 대부분 그렇다고 했다. 예전처럼 베스트셀러 기피증을 앓고 있었더라면 쉽게 구매하지 않았을 것 같은 책들이다. 어떤 책은 만족스러웠고 어떤 책은 평범했다. 책이란 건 그렇다. 좋다고 여겨지는 책을 사서 읽어본다고 해도 100% 만족할 수는 없다. 다만 이 다음에 무엇을 읽어야 할 지, 좋은 책을 찾는 또 하나의 방법이 더해진 셈이다.


베스트셀러에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지만 단 하나, 여전히 마음이 쉽게 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면 요즘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큐레이팅 서점이다. 큐레이팅 서점은 사회, 예술, 과학, 문학, 역사 이런 식으로 주제에 따라 책을 분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휴식, 도전, 일상탈출 등 특정 테마에 따라 어느 정도 검증되고 인기가 많고 판매량이 높은 책을 재 분류하여 진열하는 공간을 말한다. 정성스럽게 손 글씨로 북 큐레이터가 이 책을 추천하는 팻말도 매대 한 켠에 올려져 있다. 회사 근처에 정확히 이에 부합하는 A서점이 들어선 적이 있다. 지금은 없어지고 다른 매장으로 바뀌었지만 이상하게 A 서점에 가면 책을 사고 싶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을 사고 싶기 보다는, 이 책이 속한 테마의 글귀를 내 마음 속에 밀어 넣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일상에서 탈출을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저 책을 읽으면 어려운 도전을 서슴없이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책을 추천하는 서점 직원의 손 편지라도 읽으면 작은 동지애가 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함정이란 생각도 든다. 대중들이 저 책을 좋아하는 이유, 공통적으로 그것을 욕망하는 속마음이 너무나도 손쉽게 테마나 키워드라는 이름으로 밖으로 꺼내어져 있기 때문에 책을 찬찬이 들여다보기 전에 테마에 손쉽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곳에서는 이 책을 내가 읽어야 하는 이유를 주체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이 책을 내가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나는 나의 힘으로 찾고 싶었다. 나에게 어울릴 것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타인이 말해주기란 어려웠다.


담백하게, 무심하게, 그러나 요즘 남들이 읽을 책은 다 있는 동네 서점에 가본다. 책이 많을 필요도 없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는 동네 서점에도 다 있다. 서점 직원과 나 밖에 없는 조용한 공간 속에서 찬찬히 들여다보자. 네가 도대체 왜 인기가 많은 것인지, 너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인지, 나도 남들처럼 너에게 빠져들 마음이 있는 것인지. 내가 특별하다는,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 놓은 채. 베스트셀러를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다른 말이었다. 싫어하지 않는다면 우선 다가가 볼 수는 있는 거다.


베스트셀러를 읽어도 좋다. 때로는 자신을 조금은 멀리서 바라봐도 좋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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