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엔 뭐 읽지 ? - 첫 번째
너는 너의 인생을 읽어보았느냐
몇 번이나 소리내어 읽어보았느냐
- <천둥>, 이문재
자, 1월 1일이 되었다.
당신은 올해야 말로 책을 열심히 읽어보기로 결심을 한다. 당신이 책을 읽기로 한 그 목표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당신은 매 주 한 권씩 읽자고 다짐하고 또 어떤 당신은 자신이 없으니 열 권 또는 스무 권 정도 읽어보자고 목표를 세운다. 열 권, 스무 권, 오십 이권,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백 권. 저마다 목표하는 독서의 분량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다. 독서라는 여행의 종착역이 몇 권으로 끝나는지는 저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첫 번째 책은 있다는 점.
독서의 시작이 되는 한 권의 첫 번째 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책을 읽는 여정을 우주가 팽창하는 것에 비유해보면 첫 번째 책은 빅뱅에 해당할 수도 있다. 물론 진짜 빅뱅과 달리 우리의 독서란 앞으로 읽을 모든 책의 경험이 이 첫 번째 책에 응축되어 담겨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쨌든 어떤 것의 첫 시작점이라는 건 아주 큰 의미가 있는 법이다. 처음이 있어야 끝이 있다. 첫 번째 책이 있어야 열 번째, 스무 번째, 백 번째 책이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읽어야 할까? 올 해 몇 권의 책을 읽겠다는 당신의 의지는, 첫 번째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 앞에서 옅게 흩어진다. 사실 당신이 얼마나 책 읽기에 능숙한 사람이었는지 관계없이 매년 초가 되면 이러한 고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책을 아무리 좋아하고 잘 읽는 사람이라도 새롭게 책 읽기의 목표를 세워야 할 때가 오면, 첫 번째 책으로 무엇을 읽어야 할지 결정을 앞두고 생각보다 깊은 고민에 빠진다. 첫 번째 책을 고르는 것은 언제나 힘겹다. 비교적 책 읽기가 낯설었고 텍스트보다는 영상이나 오디오가 더 가까웠던 당신을 떠올려보자. 당신은 아마 책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담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일까. 당신은 지금까지 책이라는 것에 정말로 거리를 두고 살아왔을까.
그렇지 않다.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생각보다 많은 책을 접해 왔다. 초등학교 때 교실 한편 서가에 꽂혀 있던 공포 괴담 시리즈, 만화 한국사, 글보다 그림이 더 많았던 백과사전, <반지의 제왕>, <묵향>, <비뢰도>, <드래곤라자> 같은 판타지 소설, 서울대 가려면 읽어야 했던 이문열의 <삼국지>, 대학 입시 논술을 대비해 전집으로 들여놓았던 30권, 40권짜리 한국 문학 전집 ……
그것이 책이든, 그림책이든, 만화든, 사전이든 그 무엇이든 우리는 살아오며 너무나 많은 텍스트를 접해왔다. 서점에 즐비하게 놓인 책이라는 외형적인 물질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다가오는 텍스트 그 자체다. 텍스트는 너무나 많은 방식으로 존재한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수없이 다양한 텍스트를 수없이 많이 접하는 여정 그 자체다.
그런데 그 텍스트 보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를 읽을 때의 다가오는 거대한 우주의 질감이다. 어떤 텍스트를 읽었을 때 나는 재미를 느꼈고, 또 어떤 책은 내 성향과 맞지 않다고 느꼈고, 재미없다고 느끼고, 또 어떤 것은 이 텍스트를 쓴 작가가 궁금할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텍스트에 그림을 곁들인 삽화가가 궁금할 수도 있다. 텍스트를 읽고 난 당신의 반응이 궁금하다. 좋다, 싫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궁금하다, 이쯤이면 충분하다, 더 알아볼 필요는 없겠다, 혹은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인쇄된 이 레이아웃과 활자와 자간이 읽기에 편했다, 편하지 않았다, 의미가 있었다, 의미가 없었다 ……
각자의 첫 번째 책을 찾기 위한 첫걸음은 내가 지금까지 무엇에 어떻게 반응했던가, 그것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책은 하나의 과정이다. 한 권의 책이라는 물질 안에 담긴 수 없는 텍스트. 텍스트에 담긴 작가의 사유와 사상. 그 작가가 살아오며 경험한 인생의 다양한 경로. 외국어로 쓰인 사유를 우리나라의 어순으로 옮겨주는 번역가의 정신. 혹은 작가가 가진 무형의 생각을 기꺼이 유형의 책으로 바꾸어 내자고 결심한 출판사의 정신. 책을 읽는다는 건 한 권의 텍스트 이면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의 복잡하게 발산하는 정신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정신이 나에게 투사될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에 조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는 나 자신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놀라워하고 새로운 다른 걸음을 걷게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중요한 것은 텍스트에 담긴 타인의 생각,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고, 때로는 반응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거다.
그러므로 당신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은 절대적으로 책이라는 매체를 많이 읽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당신은 얼마나 스스로에 대해 사유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얼마나 자신이 어떤 질료로 이루어진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들었습니까, 를 물어보는 질문에 가까웠다. 책이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일 뿐이라고 간단히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책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발견하고 마침내는 확장시키는 여러 길잡이 중 하나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빅뱅의 첫 순간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꿈꾸었던 것, 나를 설레게 하는 것, 혹은 내가 갖지 못해 아쉽고 후회가 되는 것,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 또는 내가 비우고 싶었던 것, 지금의 내 혼란을 없애줄 수 있는 것 …… 그런 것을 누군가 나에게 전해줄 수 있다고 믿으며 생각을 더듬다 보면 어떤 것은 어떻게 서라도 꼭 알고 싶다는 하나의 키워드가 떠오를 거다. 그 키워드를 알려줄 법한 책을 일단 읽어보자. 그게 우리의 기나긴 책 여정을 시작하게 해 줄 첫 번째 길잡이가 되어줄 바로 그 책이다.
2009년 12월, 며칠 뒤 1월 초부터 시작될 신입사원 연수를 앞두고 나는 서점에서 연수를 받으며 읽을 책을 한 권 고르고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14년째 다니고 있는 그 회사를 내가 가게 될 것이라고 대학생 당시의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를 포함해 경영학을 공부하는 친구들 대부분은 첫 1학년이 끝나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것이 CPA이든 행정고시이든 무엇이든 인생을 바꿀 시험을 준비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에 글로벌 컨설팅 기업이나 투자은행의 문을 두드릴 것인지. 청운의 꿈을 간직한 젊은 경영학도의 선택은 대개 이 둘 중 하나였는데 나는 그 어느 것도 나의 길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회계원리를 배우며 좌변과 대변 숫자의 합이 딱 떨어지는 것도 재미있었고, 또는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글로벌 컨설팅펌에서 제시하는 기업 케이스 스터디를 하며 경쟁 PT를 하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 어느 것도 이것이 나의 길이라 여길 만큼 흥미롭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반응한 것은 좀 더 크리에이티브한 쪽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적색과 녹색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적록 색약인 점이 역설적으로 색과 디자인에 공부하게 만들었는데 (나는 여전히 색깔 점으로 된 색약 검사표의 숫자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 때문에 디자인, 건축, 광고와 같은 길을 적당히 기웃거리고 적당히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광고 카피라이터는 꽤 선망의 대상이었다. 15초 광고 안에 대중이 관심을 갖도록 모든 예술을 종합적으로 선보이며 그것을 한 마디 문장으로 집약시켜 제시하는 광고 카피라이터는 크리에이티브의 정점이라 여겼다. 그래서 이런저런 광고회사의 기획 공모전에도 응모해보고 혼자 좋은 문장을 수집하고 적어보는 노트를 끼고 다녀 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은 잘 흘러갔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도 제대로 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였는데 드라마에서 있었던 것처럼 극적인 변곡점은 내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저런 기업에 남들과 같이 취업의 문을 두드린 결과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국내 모 석유 회사에 합격해 있었다. 2004년에 대학에 입학했던 우리는 선배들처럼 취업이 무조건 쉬웠던 세대도, 지금처럼 취업이 극도로 어려운 세대도 아니었다. 다만 삶의 큰 변곡점 없이 물 흐르듯 대학생활이 지나버렸고 또 큰 변곡점 없이 이제 사회인으로 바뀔 때였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나의 길인가, 석유 회사가, 그것이 나의 길 맞나.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광고 카피라이터의 꿈을 포기하진 못했다. 어느 한 직장에 귀속된다고 꿈이 그것으로 온전히 바뀌거나 이전의 꿈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두 달 가까이 진행된 신입사원 연수를 받는 틈틈이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박웅현, 강창래 지음, 알마 펴냄, 2009) 를 읽고 있던 것도 남들 눈에는 의아하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강의실 앞에서는 거대한 석유 공정도를 띄우며 어떻게 검은 원유에서 투명한 휘발유가 생산되는지 장대한 흐름을 설명할 때 나는 뒤에서 몰래 책이나 읽었다.
그것이 2010년 책 읽기의 첫 번째 책이었고, 1년에 100권의 책을 읽는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이름이지만, 당시에는 아는 이들에게만 이름이 알려져 있던 TBWA 박웅현이라는 크리에이터의 이름. 그의 삶, 그가 만든 광고, 그가 광고를 만들며 동원했던 사유의 깊이 …… 스물 여섯의 나는 그런 것에 반응했고, 그런 삶을 동경했기 때문에 내가 되지 못한 나를 찾을 수 있기라도 하듯 박웅현 작가의 책을 신입사원 연수 두 달 내내 끼고 살았다. 책에 실린, 그가 제작했다는 광고를 찾아보고, 광고를 보며 느낀 점을 기억해두었다가 그것을 알게 해 주는 또 다른 책 몇 건을 찾아 읽었다.
연수가 끝나고 3월부터 본격적인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비록 박웅현이 될 수는 없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삶을 기록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가능성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음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여러 책을 계속 찾아 읽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박웅현이라는 이름 석자는 희미 해져갔다. 그의 또 다른 책 <책은 도끼다> 시리즈에서 추천하는 여러 문학 작품을 찾아 읽기도 했지만, 그가 제시하는 것만이 삶의 바이블이라고 여긴 것도 아니었다. 박웅현에게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내가 스물 여섯 그 언저리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관심을 갖는 것,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꿈꾸는 것은 계속해서 바뀌기 마련이었다. 다만, 스물 다섯 대학생에서 스물 여섯 직장인으로 전환하는 변곡점에, 과연 내가 스스로의 정체성이라 믿는 몇 가지 다른 가능성을 계속 꿈꾸어 나갈 수 있을지 …… 그 책이 그 시점의 나의 고민에 반응해 줄 것이라 믿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스물 여섯의 나와 박웅현 작가의 책은 잠시나마 맞닿아 있었다.
담엔 뭐 읽지? 첫 번째 법칙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엇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곰곰이 따져보는 것이었다. 2010년 이후 매년 책을 읽으며 그 법칙은 꼭 지키는 편이다. 2016년,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나라는 사람은, 인류라는 우리의 기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했을 때 <사피엔스>를. 2018년,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 문학도 재미있지만 지금 현재진행형의 문학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알제리의 유령들>을, 2021년, 전년도에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고, 그렇다면 그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인 미셸 오바마의 삶은 어땠을지 궁금한 마음에 <비커밍>을……
그랬다. 항상 그 해의 첫 날이 되면,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한 것, 잊지 않기를 바라는 것, 꿈꾸는 것, 더 알고 싶은 것을 떠올렸고, 그것에 대한 작은 답을 들려줄 수 있을 법한 책을 읽었다.
지난 12년 간, 매년 첫 번째 읽은 책은 이랬다.
2012년. 너무 문과 근성이 강한 것 같아서 조금은 수학적인 생각으로 뇌를 채우고 싶은 마음에 <신기한 수학 나라의 알렉스>
2013년. 정유회사에 근무한 지 3년이 되자 심각한 매너리즘이 왔고 그 탈출구로 미학(美學)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이것은 Apple이 아니다>
2014년. 경제학 책을 읽고 싶지만 조금은 다른 각도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에 <생각에 관한 생각>
2015년. 정유회사에 근무한 지 5년이 되자 또 심각한 매너리즘이 왔고 그 탈출구로 이번에는 미학이 아닌 본류 철학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이정우 박사의 <세계 철학사>
2016년. 2016년 봄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사람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에 <사피엔스>
2017년. 부모가 되어보니 마지막으로 내가 나의 부모와 데이트를 한 것이 궁금했고 결혼 전에 어머니와 둘이 성북구 길상사를 다녀온 기억을 더듬어 <백석 평전>
2018년. 지난 몇 년 간 의도적으로 문학, 특히 소설을 멀리했는데 이제는 의도적으로 문학에 가까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만 현재를 관통하는 젊은 소설을 읽고 싶다는 마음에 <알제리의 유령들>
2019년. 회사 생활 8년 차 정도 되니 뭔가 틀에 박힌 사람이 되어 가는 듯해서 조금은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이상한 정상가족>
2020년. COVID-19로 회사에 못 가고 근처 북카페에서 근무를 했는데 내가 앉은 자리 책장에 놓인 책을 보다가 아주 오랜만에 김훈의 글을 읽고 싶다는 충동적인 마음에 <흑산>
2021년. 전년도에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고, 그렇다면 그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인 미셸 오바마의 삶은 어땠을지 궁금한 마음에 <비커밍>
2022년. MBA를 준비하다가 고등학교 때 천문학을 무척 좋아했던 것을 다시 떠올리고 <침묵하는 우주>
2023년. 여러 이유로 2022년 봄에 스트레스가 겹쳐 번아웃 증세가 왔는데 조금은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에 <수영의 이유>
첫 번째 책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책이 그렇게 거창한 책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 이런 거대한 산맥만이 첫 번째 책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내게 찾아온 첫 번째 책은 언제나 소박했고 평범했다. 앞서 말한 책들이란 물론 언젠가는 읽으면 좋을 책이고 그것이 첫 번째 책이 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아주 저명하고 훌륭한 두꺼운 책을 읽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지식과 지혜를 쫓아 다음 책을 찾아 읽고 또 다른 책을 읽고 …… 그런 미래 지향적 목적을 갖고 빅뱅은 시작되지 않는다. 빅뱅은 지금 이 순간 나의 감정과 고민에 반응하며 시작된다.
오히려 어떠한 의도를 갖지 않았을 때,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빅뱅이 시작되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주는 뻗어 나간다. 한 권만으로는 나의 궁금함을 만족시키지 못하겠다는 마음에 관련한 책을 한 권 더 찾을 수도 있고, 외서이지만 국내 작가가 쓴 것처럼 번역이 매끄러워서 가독성이 높았다면 그 번역가가 번역한 다른 책을 한 권 더 찾아보거나, 혹은 첫 번째 책을 읽는 도중에 새로운 궁금함이 생겨나서 그쪽으로 퀀텀 점프를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든 책은 우리의 의도를 배신하며 예상하지 못한 다른 목적지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러나 그 시작만큼은 나에게서 뻗어 나간다.
지난 12년 간 무수한 고민 끝에 선택되었던 첫 번째 책을 지금 돌아봤을 때, 지금의 나를 조각했던, 나를 흔들어 깨운 책이 맞는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어떤 책은 지금 읽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큼 여전히 뜨겁게 다가오는 것이 있고, 어떤 책은 내가 저런 책을 왜 선택했던가, 이미 내핵이 차갑게 식어버린 행성처럼 절대온도로 지각되는 책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모든 책이 그 당시에는 의식과 무의식에서 기인한 궁금함, 절박함의 감정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책에서 그 다음 책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것 역시 분명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것에 정신을 쏟고 있고, 무엇이 결핍되어 있고 어느 길을 꿈꾸고 있는가? 나의 지평이 어디까지 넓어지고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는지는 아직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지금은 나에 귀 기울이며 한 발자국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나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삶을 해석하고 사랑하기 위한 증거를 책 속에서 찾아내는 거다. 때로는 내가 먼저 애써서, 때로는 책이 운명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며.
이렇게 첫 번째 책이 시작되었다.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활자 히치하이커 여행 또한 시작했다.
추신. Open AI로 원하는 이미지를 주문해서 만들어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네요. 하나씩 만들어서 업로드 해보겠습니다. 아래는 AI가 만든 "우주를 여행하는 활자 히치하이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