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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s.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인문학으로 MBA하다 (8)

by 피터 화엉
인문학으로 MBA하다 (8)
Operations Management.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2023 Fall - Mod 2
#생산관리,#심리, #Bottleneck, #강점검사, #기계와사람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학교의 MBA과정은 총 2년 동안 8개의 Module로 나뉘어 수업이 이루어진다. 하나의 Module은 보통 8주 정도 이어지며, 네 개 Module을 마치면 한 학년이 끝난다. 2023년 8월 MBA 정규 과정이 시작되고 맞이한 첫 번째 Module 때, 우리는 공강 시간에는 경영관 지하 스터디룸에서 모여 그룹 과제를 하곤 했는데 생각보다 수업도 많고 과제도 많아서 모두가 적응하느라 힘들어했다. 어떤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풀죽은 얼굴로 터덜터덜 스터디 룸으로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같은 학년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걱정하지마! 선배들이 그러는데, MBA 과정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첫 번 째 Module이 가장 높은 난이도가 높은 산 정상이고 그 다음부터는 계속 천천히 내려간대.“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라고 답했다. 그 친구가 손으로 허공에 그린 그래프 모양을 떠올리며.


Operations Management 수업을 들었던 Module 2는 2023년 10월 23일부터 12월 13일까지 이루어졌는데, 과연 그 말대로 두 번째 Module은 첫 번째 Module 보다 수월했다. 수업도 다섯 개에서 네 개로 줄었고 (수업 한 개의 체감 차이는 꽤 크다) 수업이 끝나고 모든 과목이 기말고사를 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만 집중하면 되었던 점도 좋았다.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져가던 Module 2에서 가장 편했던던 과목은 누르 교수가 가르치는 Operations Management 과목이었다. 누르 교수는 MBA 학생들과 그리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이 젊어보였고, 항상 웃는 낯에 친절한 모습이었고 무엇보다 Cold Call이 없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누르 교수의 Operations Management 수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Bottleneck이다.


Bottleneck은 병목현상이라고도 한다. 이는 여러 생산 공정으로 이루어진 프로세스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을 찾아내서 이를 개선시키는 관리방법이다. 예를 들어보자. 캔디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데 전체 공장은 총 네 개의 공정으로 되어 있다고 해보자. 원료 믹싱, 염색, 커팅, 그리고 포장 공정이다. 다양한 종류의 캔디 원료를 한 통에 넣고 섞은 다음, 원하는 색을 입히고, 이를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른 후, 포장하면 캔디는 완성된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네 개 공정의 작업 속도가 다르다. 공정에 투입되는 인력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공정 별 처리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시간 안에 어떤 공정은 좀 더 많이 반제품을 생산할 수 있지만 어떤 공정은 주어진 시간 내에 적게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원료 믹싱은 한 시간에 120개, 염색은 45개, 커팅은 130개, 그리고 포장은 125개의 반제품을 처리할 수 있다면 이 전체 공장의 Process Capacity 또는 System Capacity는 시간 당 45개 처리량이 된다. 다른 공정이 아무리 한 시간에 120개, 130개, 125개의 높은 처리량을 가지더라도 공장 전체 처리량은 가장 작은 처리량인 시간 당 45개 처리량으로 수렴한다. 우리가 수업에서 배운대로 “The smallest capacity in the system is the system capacity.” 이다. 원료 믹싱, 커팅, 포장을 아무리 잘 하더라도 염색 공정의 처리 수준이 낮기 때문에 공장 전체의 효율성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염색 공정이 전체 프로세스 중 문제가 되는 Bottleneck이며, 시급히 개선해야 할 포인트이기도 하다. 염색 공정에 인력을 더 많이 투입하거나, 보다 효율성이 높은 장비로 교체하는 노력을 통해 염색 공정의 처리량을 다른 공정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것이 Bottleneck이 말하는 생산관리의 핵심이다. 가장 못하는 부분을 발견해서, 그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생산 프로세스가 보다 효율적으로 흘러간다. 쉽게 말하면, ‘이중에서 어떤 친구가 가장 못하니?‘를 찾아내는 것과 같다.


Bottleneck은 그리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서 그걸 개선시켜야 하는 건 생산관리의 지극히 당연한 접근 방법이다. 그런데 나는 누르 교수가 이 Bottleneck 현상을 설명하느라 칠판에 여러 개의 사각형 (각 사각형은 한 공정을 의미했다)을 그리는 것을 보고 회사에서의 어떤 경험이 떠올랐다.


MBA에 오기 전에 나는 회사에서 몇 명 인력을 선발해서 별도의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HR 트랙에 후보로 선발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HR 트랙을 혐오했는데, 다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는데 어떤 인력은 회사에서 별도로 관리하고 어떤 인력에 대해서는 관리를 하지 않아서 마치 우리를 계급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회사를 대표해서 HR 트랙에 선발되어 별도의 교육을 받고, CEO를 멘토로 두어 여러 무형적인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고, 그룹 내 다른 회사에서 선발된 인력과 교류하며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진다는 점은 장점이다. 그런데 그런 장점은 소수에 대한 특혜로 왜곡될 수도 있고 그 HR 트랙에 속한 사람들에게 헛된 선민사상을 심을 수도 있었다. 나를 ‘특별한 존재’로 착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 이런 생각과는 별도로 나는 리더의 권유로 HR 트랙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지원서를 작성해야 했다.


자기 지원서의 항목 중 하나는 지금까지 자신이 축적한 경험과 역량을 자기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것이었다. 경험과 역량 진단 항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자기지원서에 보면 <전략기획>, <재무>, <Global>, <사업개발> 등 여러 영역이 사각형으로 제시되어 있고, 우리는 그 항목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기술해야 했다. 기본적으로는 “나는 이 모든 영역을 다 경험해봤고 충분히 준비된 인재입니다.”를 어필하는 것이 이 자기지원서의 목적이지만, 만약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은 항목이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이를 보완할 것인지자기 미래의 계발 계획도 함께 적어야 했다. 만약 내가 지금까지 <사업개발> 분야에 경험이 부족했다면, 앞으로 3년 이내에 관련 부서로 이동해서 사업개발 경험을 쌓겠다고 해야했다. 나는 전략기획, 재무, Global 등 거의 모든 영역에 있어 평균 이상의 경험과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유일하게 사업개발에는 경험이 없었고 그 점이 나를 남들보다 우수한 인재로 판단하는데 저해가 된다면 이를 끌어올리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사업개발 분야가 나의 Bottleneck에 해당했다. 궁극적으로 나는 Bottleneck이 없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MBA에서 들었던 생산관리 수업이나 내가 예전에 작성했던 HR 트랙 자기지원서 모두, 전체 시스템의 효율성을 갉아먹는 어느 하나의 약점에 주목했다. “System Capacity 개선에 방해가 되는 Bottleneck 지점은 어디인지?” 이 질문은 생산관리 관점에서는 충분히 고려하고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과 역량 중에 갖추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가장 약한 지점을 식별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끌어올려야 한다는 과제가 사업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영되면, 현실에서 끝없는 자기 불신과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레드 퀸 효과(Red Queen Effect)와도 같았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레드 퀸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있는 힘껏 달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바닥이 계속 뒤로 움직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달리지 않으면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한 약점에만 주목하다 보면, 아무리 그 약점을 개선하더라도 우리는 한 걸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스로 평균에 머무르게 될 뿐이다. 그리고 개선해야 할 약점이 또 없는지 자꾸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약점은 약점을 부른다. Bottleneck 해소는 사실 또 다른 Bottleneck을 만든다. 사실 어느 공장에나 가장 처리속도가 느린 공정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HR 트랙 자기지원서를 쓰고 나서 몇 달 뒤, 나는 우연히 <강점혁명> 이라는 책을 읽었다. 팀에서 연초에 올 해 할 일을 논의하는 미팅을 반나절 정도 가지기로 했는데, 일 이야기만 하는 것이 딱딱할 것 같아서 팀원 각자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론이 뭔가 없는지 찾아보던 무렵이었다.


<강점혁명>책은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조사기관 갤럽의 회장을 역임한 도널드 클리프톤이 평소 주장했던 강점 심리학의 이론을 소개하고 직접 갤럽 사이트에서 자신의 강점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도널드 클리프톤은, 사람의 재능과 관심은 모두 다르지만 사람이 가진 특성은 크게 24개 테마로 일반화 할 수 있다고 봤고 자신이 어떤 테마에 가장 강점을 갖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강점과 약점은 나에게 있고 없는 것이 아니다. 강점은 내가 가진 것이고 약점은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24개의 성향 테마 중 내가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나의 강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약점이 아니라 강점을 더 잘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말한 강점 심리학의 핵심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연구하는 여타 심리학자와는 다른 접근 방법이었다.


나는 평소 긍정심리학이나 강점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인간 또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라는 것이 낯간지럽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지만, HR트랙 자기지원서를 쓰면서 내가 채우지 못한 역량이 무엇인지 실컷 고민했던 터라 그런지, 적어도 내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는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지 못한 빈 박스가 아니라,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가득 찬 박스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책을 구입하고 그 속에 담긴 쿠폰을 이용해서 강점 검사를 해보니 나의 다섯 가지 강점은 유머, 사랑, 희망, 친절, 그리고 영성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평소에도 실없는 이야기를 잘 하고 딱딱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분위기를 푸는 농담을 하려는 성향이 있었고, 말재주가 좋지는 않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누고 보살피는 감정을 존중하는 편이고, 가끔 힘이 들때도 “오히려 좋아” 라고 말하면서 처한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고, 타인에게 이타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점점 믿기 시작하고 있고, 특별히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편이었다. 강점검사를 통해 드러난 나의 다섯 가지 강점은 내가 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존중하는 영역이기도 했다. 뭔가를 좋아하다 보면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잘 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나는 24개의 특성 중 내가 가장 가지지 못한 영역이 무엇인지, 소위 나의 약점이 무엇인지는 찾아보지 않았다. 그건 이 강점검사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성향의 Bottleneck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았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다시 검사를 해봐도 나의 강점 Top5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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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이 아니라 강점에 주목할 때 우리는 뺄셈이 아니라 덧셈의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2년 동안 MBA 과정을 거치며 가장 많이 느낀 점이 이 덧셈의 인생이었다. UNC MBA Class of 2025 학생은 모두 약 250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적, 성별, 인종, 경력, 재능, 관심, 성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 모여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굉장한 수준의 다양성을 경험하게 된다. 매일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면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MBA 과정이 특별했던 이유는, 우리가 애써 각자가 공통적으로 지닌 Common Sense를 찾아내서 그 공통의 놀이터에서만 놀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양한 그룹 프로젝트를 하며 우리가 항상 떠올렸던 질문은 “저 친구는 뭘 잘하더라?” 였다. 어떤 MBA학생은 재무제표를 끝내주게 분석할 줄 알고, 어떤 학생은 뉴욕에서 트레이더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내가 경험하지 않은 금융 분야의 다양한 일화를 이야기해주곤 했다. 어떤 친구는 그룹 프로젝트 미팅 때 잘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정말 엄청난 프리젠테이션 스킬이 있어서, 그 친구에게 발표를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어느 한 시점에 어느 한 사람이 기여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친구를 비난하지 않았다. 이 다음에 내가 잘 모르고 못하는 분야가 등장하면 그 친구가 기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 크게 억울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생산관리 관점에서 MBA가 내게 남긴 강렬한 인상은, 우리 각자의 Bottleneck을 떠올린다거나 아니면 조직 내의 누군가가 우리의 Bottleneck인지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건 관점의 전환이었다. 가장 생산성이 부족한 멤버의 생산성이 우리 전체의 System Capacity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강점의 합이 곧 우리 전체의 System Capacity에 해당한다는 현실의 경험이었다. 그렇게 관점을 바꾼다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어디가, 누가 가장 지금 전체 생산성을 끌어내리는 약점이지?” 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점이 우리에게 있어?”로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사마천이 쓴 <사기>에서 맹상군이 계명구도(鷄鳴狗盜) 고사를 통해 우리에게 그 답을 들려준 바 있다.


맹상군은 고대 중국 제나라 왕족 출신으로 높은 신분의 인물이었는데, 평소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손님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열곤 했다. 어느 날 손님 중 몇사람을 골라 당신에게는 무슨 재주가 있냐고 물어보자 두 사람이 자신들은 각자 개 흉내와 닭 울음소리를 잘 낸다고 대답했다. 주변의 다른 손님들은 그 말을 듣고 그게 무슨 재주냐고 힐난했지만, 맹상군은 그런 재주라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답한다. 시간이 지나 맹상군은 주변의 모함을 받아 감금되게 되는데 이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까의 두 손님이 가진 재주가 큰 역할을 했다. 한 사람은 개 흉내를 내서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왕궁에 숨어들어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올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은 새벽에 닭 울음소리를 내서 성문을 지키던 수문장이 일출 시간이 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무사히 위험한 지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맹상군의 고사는, 약점이 아니라 강점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누르 교수의 Operations Management 수업은 굉장히 재미있고 유용했다. Bottleneck 현상은 모든 유형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개념이었다. 뭔가 전체 프로세스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때 그걸 세부 프로세스로 나눠보고 어떤 프로세스가 가장 개선해야 하는 약점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경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슈다. 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무형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어디가 Bottleneck인지 아는 것은 일에 우리가 끌려다니지 않고 우리가 일을 끌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관리 방법론을 사람 그리고 사람이 군집된 조직으로 확대해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구성원의 경험과 역량 중에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들추어낸 뒤 ‘너는 모든 분야를 경험하고 그것을 잘 해야만 다음 단계,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시각은 슬프게도 회사 곳곳에 존재한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분 중에 “경영은 모든 분야를 다 알아야 하는 종합 예술이다.” 라고 말했던 모 임원처럼, 회사에서의 우리는 무엇이든 다 알고 다 잘해야하는 존재여야 함을 요구받는다. 나를 또 다른 나와 비교하거나 나를 남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부족한 것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때로 부끄럽게 만든다. 왜 이건 못할까… 자책하면서 말이다. 이런 시각은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는 관점에서도 반복된다. 전체 과목을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로 나누고 어느 과목이 가장 취약한지 알아내려 하고, 모든 과목을 다 잘해서 Bottleneck을 해소해야 우리는 그 다음 단계인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기 반성은 평생 반복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고 이선균 배우가 상사와의 논쟁 중에 “회사는 기계가 다니는 뎁니까? 인간이 다니는 뎁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생각난다. (물론 이 대사를 말한 맥락은 생산관리와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사람과 조직을 기계 또는 부품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가장 부족한 Bottleneck을 찾아내서 이를 끌어올리는 것보다 그 사람이 가장 자연스럽게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인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보다 잘 기억하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누르 교수는 그가 가르친 생산관리의 기초적인 지식보다도,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했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 친절함과 상냥함은 누르 교수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그가 가진 Bottleneck이 아니라 강점으로 그를 기억하게 되는 법이다. 그 사람은 무엇을 잘했어, 그 사람은 이런 것을 잘 하는 것이 인상적었어, 라고 말하며 말이다. 최소한 나는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이 가진 강점으로 기억하고 싶다.


사실은 이성복 시인의 고백처럼, “잘하는 것을 계속해서 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못하는 것을 잘하는 것 이전에,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을 계속 잘하는 것 역시 끊임없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야 하는데, 마른 나무 뿌리를 씹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시로 돌아가야 할 테지만 도무지 의욕이 없다. 그렇다고 전에처럼 프루스트나 뭐 그런 사람들이 했던 글쓰기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용기도 안 나고 흥미도 크게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앞으로 몇 십 년을 하루하루 어떻게 보낼까. 아, 다시 한번 1976년에서 1980년 사이처럼 시에 ‘올 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외에는 달리 길이 보이지 않는데, 도무지 시가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이것밖에 없는데, 이것밖에 없는데….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텐데….”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 p.254-255, 열화당 펴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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