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MBA하다 (9)
인문학으로 MBA하다 (9)
Financial Management. 물고기는 존재한다
2023 Fall - Mod 2
#기업가치평가, #과학,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 #룰루밀러, #질서와탈주
첫 Module에서 Financial tools 수업과 Financial accounting 수업을 들은 것에 이어, 두 번째 Module에서 모두가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전공필수 재무과목은 Financial Management 였다. 가르치는 담당 교수는 아메릭 벨리옹 교수였다.
작은 체구지만 매우 영민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메릭 교수는 프랑스 파리 태생이었기 때문에 영어 액센트에 프랑스어 억양이 살짝 묻어났는데 가령 컴퍼니를 꼼빠니로 발음해서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경우가 있었다.
무엇보다, 아메릭 교수는 수많은 MBA 교수 중에 처음으로 나보다 나이가 어린 교수로부터 수업을 받은 경우였다. UNC 경영대학원에는 30대 초반부터 6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의 교수들이 있는데, 마흔을 목전에 두고 MBA 과정을 이수하러 간 내 입장에서 나보다 나이가 적은 교수로부터 수업을 듣는 종종 경우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이수한 뒤 운이 좋으면 30대 중반에 대학 조교수, 그러니까 Assistant Professor로 부임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이론적으로 나보다 어린 교수를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MBA 과정 초반에는 회사에서 15년 정도 일을 하다왔다는 점도 잊어버리고 스스로를 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배우는 학생은 가르치는 교수보다 당연히 더 어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곤 했다. 아메릭 벨리옹 교수는 MBA에서 처음으로 만난 나보다 젊은 교수였는데 덕분에 이후로 젊은 교수로부터 수업을 들을 때 조금은 무감각해질 수 있었다. 어떨 때는 Linkedin으로 이 교수가 대학을 졸업한 연도를 보고 나이를 추측해보고는, 지금 내 앞에서 나를 가르치는 저 교수의 나이에는 나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지… 라면서 예전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 수업에서는 앞서 배웠던 내용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무 분석 방법론을 배우게 되는데 두 달 동안 핵심적으로 배운 건 기업가치평가였다.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내가 어떤 기업을 인수하는 M&A상황에서 나는 이 기업을 얼마짜리라고 진단할 것인지? 또 전체 기업 가치는 얼마인데 내가 가진 돈은 그보다 못한 이것밖에 없을 때 나는 자금을 어디서 얼마나 조달할 것인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수업이었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EBITDA(수익) x EV/EBITDA Multiple (미래가치 승수) 방법을 사용한다.
EBITDA는 “이자 및 법인세 차감 전의 영업이익”을 뜻하는데, 기업이 영업을 해서 벌어들인 영업이익에 실제 현금지출이 발생하지 않는 감가상각비를 보전하여 만든 개념이다. 쉽게 말해 기업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실질적인 수익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불확실성이 높은 부분은 수익력을 의미하는 EBITDA가 아니라 EV/EBITDA Multiple (미래가치 승수)다. 보통 이 미래가치 승수는 몇 배, 몇 배라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계산공식으로 보면 기업가치를 의미하는 EV(Enterprise Value)를 아까 구한 EBITDA로 나눈 값이다.
예를 들어 기업가치(EV)가 1000원인데 EBITDA가 100원이면 이 기업의 미래가치 승수(EV/EBITDA)는 1000원을 100원으로 나눈 10배가 된다. 기업가치는 수익력에 미래가치 승수를 곱한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미래가치 승수는 기업가치를 수익력으로 나눈 것이기도 하다. 앗,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우리는 분명히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방법으로 미래가치 승수를 사용하려고 하는데, 이 미래가치 승수를 사용하려면 이미 기업가치 값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저것을 끌어와야 하는데, 저것을 알려면 이미 이것을 알아야 하는 순환오류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보통 평가 기업과 같은 산업군에 소속된 다른 기업의 EV/EBITDA Multiple이나 산업 전체의 평균적인 EV/EBITDA Multiple을 사용한다. 아메릭 교수는 “장기적으로 결국 어떤 기업도, 그 기업이 속한 산업의 평균적인 미래가치 승수에 수렴하기 때문에 산업 평균 지표를 사용할 수 있다.” 라고 강조했다.
생각해보면 기업의 가치를 구하는 것은 꽤 논리적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간단하기까지 하다. 우선 나의 수익력이 미래에도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한 뒤에, 내가 속한 산업이나 다른 경쟁사가 시장으로부터 인정받는 미래가치 승수를 나에게 적용해서 나의 미래 가치를 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내 가치를 평가하는 데 내가 생각하는 미래가치 승수가 아니라 <다른 기업의 미래가치 승수를 나에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내 가치 승수는 내 주변의 타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가정하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나라는 존재는 다른 사람이 나를 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는 것과 같았다. 적어도 가치 평가 측면에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었다.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정의할 것인가… 나는 회사에서 겪었던 두 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하나는 2010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난 다음 해, 내가 2년차 주니어 사원이었을 때 일이다.
동어반복 같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에너지 사업을 하는 에너지 회사였다.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기름값도 상승하기 때문에 소위 고유가 국면은 우리 회사에게도 여러모로 크게 부담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의 불만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격이 올랐다고 차에 기름을 넣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주유를 하지만 불만은 극에 달하고, 정부부처 입장에서도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핵심 물가관리 모니터링 대상 중 하나로 높은 관심을 갖는다. 국회에서는 매 년 가을에 시행되는 정기 국정감사 시즌에 단골 손님처럼 국내 에너지 기업들의 주유소 가격 인상을 두고 대대적인 감사를 하는데,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고유가에 정유사 돈잔치…” 등의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자료가 쏟아지며 증인으로 국정감사에 참석한 기업 임원들을 향해 국회의원들은 호통을 치기 일쑤다. 소비자, 정부, 국회, 언론 모두가 기름값 상승을 두고 에너지 산업 전체를 비난하기 바쁜데, 그중에서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1960년대에 설립되어 연혁이 가장 오래되었고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은 1위 업체라는 이유로 온갖 비난의 화살을 다 받아야했다. “우리가 그래도 업계의 맏형이니까…” 라면서 비난을 감내할 수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고유가가 길어지던 어느 시점에 CEO는 몇 몇 부서를 불러서 <2등 전략>이 가능한 것인지 한 번 고민해보라고 했다. 1960년대에 회사가 설립된 이후 한 번도 시장 점유율에서 1위를 놓쳐본 적이 없었지만, CEO는 우리가 1위라는 이유만으로 산업 전체의 비난을 거의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2등으로 새롭게 포지셔닝한다면 지금과 같은 비난 독식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때 2년차 주니어 사원이기도 했고 내가 속한 부서가 그 전략을 고민하는 전담 부서도 아니었기 때문에 검토 결과를 나중에야 건너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1등에서 의도적으로 2등이 되는 전략은 깊게 검토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1등에서 2등으로 내려오려면 아무래도 국내에 제품을 덜 팔아서 시장 점유율을 낮추는 방법 밖에 없는데, 수익성 측면에서 손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과연 시장 점유율을 낮춘다고 해서 시장이 우리를 2등으로 새롭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애초에 국영기업으로 시작하다가 민영화된 기업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시장 점유율을 낮추는 것과 상관없이 시장에서는 여전히 산업 내 1등 기업으로 우리를 인식할 거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게 된다면 점유율만 잃고 지금과 같이 외부로부터 고유가 비난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이중으로 위기라는 판단에 결국 <2등 전략>은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시장에서 한 번 인식된 나의 정체성을 내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비슷한 일이 최근에도 있었다. MBA를 오기 전에 나는 기업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방향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부서에서 일했는데 외부 투자자로부터 우수한 ESG 등급을 받는 일이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언론에서 가끔 “무디스가 모 기업의 투자등급을 OOO에서 ㅁㅁㅁ으로 낮추었습니다.” 라고 보도하는 것처럼, 해외의 대형 투자자들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여부를 진단하기 위해 기업의 ESG 등급을 평가한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나 우리 기업이 에너지 산업에 속해있다는 점이었다.
ESG, 즉 환경, 사회, 지배구조 세 영역 중 아무래도 해외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분야는 E, 환경 분야였다. 2015년 파리협약을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환경 과제는 탄소 배출량 감축이었다. 산업화 이전 시대에 비교하여 1.5도 이내로 온도 상승폭을 제한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 기업 구분없이 모두가 탄소 배출량을 의도적으로 감축시켜야 하는데, 지금까지 지구 전체적으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 산업 중 하나가 내가 속한 에너지 산업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에너지 산업에 속한 기업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탄소 배출량 감축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고 이 목표를 달성해야 우수한 ESG 등급을 얻을 수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무디스로부터 우수한 투자등급을 받아야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것처럼, 평가기관으로부터 우수한 ESG 등급을 받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ESG 부서 내부적으로 “우리 기업이 에너지 산업 중에서도 정유화학 산업이 아닌 다른 종류의 에너지 산업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 여부를 한 번 검토해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기업은 60년 넘게 정유화학 사업을 해왔지만 전기차 배터리나 플라스틱 리사이클처럼 꽤 다양한 방면으로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정유기업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벗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만약 우리가 정유화학 산업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소위 친환경 에너지 산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낮은 강도의 탄소 배출량 감축을 이행할 수 있게 되어 부담을 덜 수 있고 더 우수한 ESG 등급을 받는 측면에서도 유리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해외 투자자에 우리가 소속된 산업 섹터를 바꾸는 것을 문의했지만 대부분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이만큼 변했다고 자평하고 그것을 외부에 잘 이야기하면, 외부가 우리를 인식하는 것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던 셈이다. 즉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는 생각, 우리가 변화했다는 점을 타인에게 알리면 그들도 우리의 변화를 인지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할 것이라는 생각이 깃들어 있었다. 정체성을 규정하는 시작점은 우리 자신으로부터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현실적으로 나의 정체성은 내가 만들지 못했다. 정확히는 나만이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체는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기업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시장이 나를 바라보는 인식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는 “변화했다!” 라는 선언과 행동만으로 시장이 나를 규정하는 어떤 섹터에서 다른 섹터로 자유롭게 넘나들지는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메릭 교수로부터 기업 가치 평가 방법을 배우다보니 나는 개인과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에 거대한 간극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읽었던 룰루 밀러 작가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때문이었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전반부에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의 일생과 생물 분류에 대한 열정을 소개하며 그를 꽤 긍정적으로 그려낸다. 1851년 태어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을 맡으며 교육 쪽으로도 유명했지만 그는 당대에 세계적인 어류학자였다. 조던은 엄청난 열정으로 어류에 속한 수천 종의 물고기를 분류하고 그 하나하나의 물고기에 이름과 세부적인 종을 명명하는데 지진으로 실험실 어류 표본이 모두 깨져버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어류에 이름을 붙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그건 이 책의 제목처럼 <어류라는 개념은 생물학 분류체계에서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류의 류는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와 같이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카를 폰 린네가 제시한 생물 분류 체계, 즉 종속과목강문계역에서 강(Class)에 해당하는 분류 단계다. 그래서 어류가 만약 존재한다면 이는 인간이 속한 포유류와 같은 레벨에서 물고기를 포괄하는 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진화 분류학적으로 어류라는 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물에 사는 척삭동물(척추의 원시형태인 척삭을 몸에 지닌 동물)이 육지로 올라오고 난 뒤, 육지로 올라오지 않고 물에 남은 생물을 모두 끌어모아 어류라고 불렀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류라면 이런 저런 특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을 정의하고 그에 속하는 생명을 계통적으로 어류로 분류한 것이 아니라, 다른 류들을 정의하고 남은 여집합 중 물에 사는 집합을 어류라고 불러왔던 셈이다.
저자는 데이비스 스타 조던을 긍정적으로 그려낸 책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서는 어류라는 분류 체계에 절대적인 믿음을 지니고 물고기에 이름을 명명하는 것에 집착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강하게 비판한다. 데이비스 스타 조던은 어류가 있다고 굳게 믿었고, 무엇이든 계통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 믿음은 나아가 하나의 종은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우생학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자연에 그 질서를 강압적으로 적용하려 하는 인간의 대표적인 사례다. 원래 종의 구분 없이 제각기 태어나 살아가던 생명체에 너는 이런 강이야, 너는 저런 강이라고 분류하고 같은 인간을 백인, 흑인, 황인이라는 인종으로 분류한다.
저자는 “어류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멸적인 단어이다….(중략) 우리가 언어를 사용해 동물들의 중요성을 박탈하는 방식이자, 우리 인간이 정상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 단어들을 발명하는 방식” 이라고 언급하면서 책 말미에 저자의 큰언니와의 대화를 소개한다.
나의 아버지는 “어류”라는 단어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큰언니는 물고기를 놓아버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언니는 어류라는 범주 전체를 바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왜 언니한테는 그게 그렇게 쉬운 거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언니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늘 반복적으로 오해해왔다고 말했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304-305 (전자책 기준), 곰출판 펴냄)
룰루 밀러의 큰언니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준 대사는 정체성, 성장, 존재 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가는 개인으로서의 우리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한편 자폐증으로 일생을 고민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책을 펴낸 카밀라 팡처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 룰루 밀러 역시 기존의 사회적인 질서로는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자신의 정체성, 즉 동성애자로서의 스스로를 정체성을 지니며 살아간다. 그런데 룰루 밀러에게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성애와 동성애의 분류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고 자신의 정체성은 결국 자신이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동성애자라는 점을 긍정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외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랑의 분류 방식 - 이성애 또는 동성애 - 으로부터 탈주하는 방식으로 룰루 밀러는 이 책을 마무리 짓는다. 카밀라 팡이 자폐증이든 그렇지 않든, 룰루 밀러가 동성애자든 그렇지 않든, 자신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타자가 옆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든지 나를 타자에게 인식시키는 주체는 결국 자신이다.
그러나 나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생각이 과연 기업가치 평가에서도 유효할까… 나는 꽤 혼란스러웠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나의 정체성은 타자가 규명한다.
내가 속한 집단(산업)에 적용되는 질서(EV/EBITDA Multiple)를 나는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적용한다. 집단의 평균적인 EV/EBITDA Multiple이 10배면 나도 10배를 적용하고, 15배면 나도 15배를 적용한다. 내가 아무리 “나는 사실 여기 산업에 있을 몸이 아니라 저쪽 산업에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저쪽 산업에서 요구하는 것을 이렇게나 잘 하고 있기 때문이죠!” 라고 말해도 결국 돌아오는 답은, “응 잘 알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여전히 이쪽 산업에 속한 몸이야.”가 대다수였다. 이에 지지 않고 “일단 이 산업에 있어야 한다는 점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스스로 제 가치를 평가했을 때 저는 산업 평균인 10배보다 더 높은 20배의 미래가치 승수를 나에게 적용해야 할 것 같군요!” 라고 말한다고 해도, 시장에서는 “넌 산업 평균인 10배를 적용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너의 가치는 과대평가된거야.” 라고 냉정하게 대답한다.
내가 시장점유율을 낮춰서 1등이 아니라 2등이라고 주장하더라도,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정유화학 사업과 더불어 친환경적인 에너지 사업도 같이 하기 때문에 정유화학 산업이 아닌 다른 산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주장은 타인이 보는 나, “기업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에는 이르지 못했다. 기업이 가까스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본질적인 수익력이었지, 산업으로부터 주어지는 인식은 좀처럼 바꾸기 어려웠다. 기업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아니라 타자, 즉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장이 기업을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나의 정체성이 바뀌는 셈이다. 정체성이 바뀌어야 나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물고기는 존재했다.
반면 나라는 존재는 비즈니스의 현실과는 반대였다. 나의 정체성은 내가 규명한다.
물론, 장 폴 사르트르나 자크 라캉이 말한 것처럼 나의 정체성은 타자가 정의하는 것이며, 우리는 타자가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궁금해하지만, 타자가 정의하는 나의 모습을 나는 결코 알 수 없다는 프랑스 현대철학의 사상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여하는 인물들, 기존의 분류체계를 거스르며 새로운 사잇길로 성장하는 인물들의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정해진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의 섹터와 또 하나의 섹터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부유하는 이들은 개인으로서 정신적인 자유를 얻으며 더 큰 미래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하나의 존재로서, 나의 정체성을 타자가 규정한다는 말은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나의 시작점은 내 안에 존재한다.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달랐던 것이다…
아메릭 교수의 Financial Management 수업은 재미있었고 유익했지다. 그리고 동시에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인간이라는 개인에게는 적용할 수는 없다는 점, 혹은 그 반대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은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간극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만약 어떤 기업이 “우리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산업 분류 체계로 우리를 정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면, 외부 평가기관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그런 기업을 흘끗 바라본 후에 기존 분류 체계 중 어딘가로 기업을 밀어넣지 않을까. 반대로 계속해서 정체성을 고뇌하고 성장을 갈망하는 인간이라면, 적어도 스스로에겐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라고 되뇌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룰루 밀러가 말했듯이 인간이 성장하면서 타인이 규정해놓은 질서를 끈질기게 잡아당겨 결국에는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는 것처럼, 언젠가는 비즈니스의 질서를 붕괴시키는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804년 나폴레옹 1세가 대관식에서 자신의 왕관을 스스로 썼듯이 스스로의 미래가치승수를 스스로 부여하고 그것이 시장에서 인정받는 기업에서 언젠가는 한 번은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비즈니스 맨으로서의 욕망이기도 하다.
2025.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