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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epreneurship. 나의 아저씨

인문학으로 MBA하다 (10)

by 피터 화엉
인문학으로 MBA하다 (10)
Introduction to Entrepreneurship. 나의 아저씨
2024 Spring - Mod 3
#기업가정신, #창업, #독립잡지, #예술, #나의아저씨



2024년 새해가 밝았다. 2023년 여름부터 20205년 여름까지 햇수로는 세 해에 걸쳐 진행되는 MBA 과정 중 두 번째 해로 접어들은 것이고 나는 예전 한국나이로 치면 마흔 살이 되었다. 생물학적으로나 학업적으로나 원숙한 중년의 아저씨가 된 것이다!


1학년의 세 번째 Module은 이전의 두 Module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학생 개인이 원하는 수업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수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앞선 두 Module에서는 재무, 회계, 마케팅, 전략, 생산관리 등 전반적인 경영학 기초 내용을 다같이 필수적으로 들어야 했는데 이제부터는 다양한 수업 목록 중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들으면 된다.


내가 다닌 UNC at Chapel Hill MBA에서 수강신청은 bidding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학기 시작 전 학생들에게는 2000 포인트가 주어지는데 2000 포인트 내에서 다음 학기에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에 원하는 만큼 포인트를 bid 할 수 있다. 내가 정말 듣고 싶은 과목이 있는데 경쟁이 치열할 것 같으면 1000 포인트를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고, 반면 아무도 듣지 않을 것 같아서 수강신청이 치열할 것 같지 않은 과목에는 단 1 포인트만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 Bidding 결과 높은 포인트를 투자한 학생 순으로 수업이 배정되며, 이 Bidding은 몇 라운드 반복하면서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선택과 도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어떻게 들을 것인지 스스로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Module 3부터 학생들은 희망하는 진로에 따라 확연하게 신청 수업 내역이 달라진다. 금융 트레이더를 꿈꾸는 학생들은 아무래도 Finance 과목으로 몰리고 컨설팅 펌에서 일하고 싶은 학생들은 전략이나 컨설팅 관련 수업을 듣는다.


나는? 나는 특별히 심화전공하고 싶은 분야가 없었기 때문에 세부 전공 이수 여부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서 들으면 그만이었다. UNC at Chapel Hill MBA에서는 13개의 Concentration, 즉 심화 전공 과정을 개설하고 있는데 Concentration을 정해서 이수하지 않더라도 졸업 요건을 갖추면 General Management 라는 분야로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참고로 UNC는 미국 내에서 Real Estate, Health Care, Consulting 분야에서 강세를 보인다.) 나는 특정한 Concentration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수업을 듣고 싶었는데, 첫 Module에서 <Strategy> 과목을 들었을 때 크게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전략 과목 중 하나로 개설된 <Introduction to Entrepreneurship> 수업을 신청했다.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면 <창업의 이해> 혹은 <기업가 정신>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잠깐 창업이라고? 15년 동안 한 회사를 성실하게 다니면서 나만의 비즈니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내가 창업에 대해 크게 생각한 적은 없는데 말이다. 나는 그저 MBA 과정 2년 내내 거의 모든 수업을 함께 들었던 베스트 프렌드 다니엘이 이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그래 같이 듣자!” 라고 답했을 뿐인데 말이다.


이 수업을 가르치는 아툴 네르카르 교수는 첫 수업 시작 전에 학생들에게 짧은 설문조사를 해오라고 했다. 설문항목은 간단했다. “Will you be an entrepreneur?” 만약 그렇다면 왜? 혹시 그렇지 않다면 왜? 자신의 선택과 그 이유에 대해 미리 답을 제출하면 첫 수업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첫 수업에서 아툴 교수가 설문 결과를 공개했는데, 놀라웠던 건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창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을 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만약 창업을 한다면 ‘일반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마치 여행을 다니듯 자유로울 것이며’, ‘내 삶을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고’,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장을 위해 일하는 것이 좋고’, ‘일반적인 사람보다 더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창업의 긍정적인 면을 언급했다.


반면 창업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30명 정도 되는 학생 중 단 네 명에 불과했다. 어떤 친구는 “예전에 프리랜서로 일을 해봐서 아는데요… 경제적으로 충분히 여유가 있을 정도로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게 솔직히 쉽지가 않아요.” 라거나, 또 어떤 친구는 “언뜻 생각했을 때 창업을 한다는 게 자유롭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리스크가 높은 일이죠.” 라고 말하고, 마지막 친구는 “성공한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창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현실적으로 나한테는 없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왜 거의 절대 다수의 학생들이 Will you be an entrepreneur? 질문에 Yes라고 답을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미국인다운 반응인 것인지, 아니면 “Will you be an entrepreneur?” 라는 질문을 일종의 시험문제로 보고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답을 해야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학생들은 첫 수업의 설문조사에서는 창업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두 달 반 동안 15개의 비즈니스 케이스를 읽고 매 수업시간 마다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는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아툴 교수는 창업에 대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더니 본인이 이 수업을 통해 우리가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수업은 창업 계획을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도 아니고, 산업 현장에서 적용되는 가장 최신의 기술 아이디어에 대해 탐구하는 수업도 아니고, 창업에 필요한 다양한 프레임워크를 마치 쿠키 커터처럼 적용만 하면 되는 그런 이론적인 지식을 배우는 수업도 아니라고 했다. 무엇보다 교수 자신으로부터 뭔가를 배워가는 수업이 아니라고 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이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어 자신의 인생 경로를 만들어 나갈 때 그 커리어 중 하나로 창업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수업이고, 내면에 잠재된 창업가로서의 욕망을 스스로 발견하고 이해하는 계기를 만드는 수업이라고 했다. 어떤 학생은 이 수업을 통해 다양한 창업 비즈니스 케이스를 흥미롭게 듣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어떤 학생은 자신을 움직이는 멋지고 이상한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걸 구현시키고 싶다는 잠재된 욕망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였다. 다른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나만큼은 창업에 관련한 잠재된 욕망이 정말 하나도 없다고 스스로 느꼈던 것이다. MBA를 오기 전 경험을 떠올려봐도 주변에 창업을 하기는 커녕 크고 작은 회사에 소속되어 온전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지인들이 전부였고 자신만의 사업을 했다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경우는 나이키를 만든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처럼 책을 읽으며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첫 수업에서 창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교수의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했던 세 명의 아이들처럼 나도 No 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들처럼 나도 창업을 위한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아보이진 않았고 무엇보다 창업으로는 안정적인 경제적 수익을 얻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업 중반부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한 창업가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비즈니스 케이스를 2주에 걸쳐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게 된다. 1980년대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약간 각색한 것인데, 이 비즈니스 케이스는 창업가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일대기를 담고 있다. 한 주는 이 사람의 성공에 대해 토론하고 이어서 사업 실패를 목전에 둔 그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을 창업가의 자질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20대 초반에 어떤 사업 기회를 포착한 창업가는 아주 작은 사업을 인수하면서 사무용품 공급 비즈니스에 뛰어들었고 이후 사업을 키우며 승승장구한다. 자산, 매출액, 영업이익 등 수익성을 나타내는 모든 지표에서 그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내며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발돋움한다.


그러나 모든 실패는 성공의 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법처럼 점점 그의 사업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사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 다소 무리하더라도 경쟁자를 인수했지만 때마침 경기불황과 그의 사업이 속한 산업의 구조적인 다운사이징이 겹쳐서 그의 사업은 결국 문을 닫기 일보직전으로 내몰린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비즈니스 스토리다. 어떤 평범한 사람이 영민한 통찰력으로 기회를 포착하고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하다가, 더 큰 성공을 위해 무리해서 확장한 순간 여러 이유로 실패의 길로 접어든다는 스토리.


케이스에서 다뤄진 창업가도 사업 실패로 인해 미국 정부에 파산 신청을 앞두고 두 가지 선택 중에 고민하게 된다. 미국의 파산보호법(Bankruptcy Protection Law)에는 여러 보호 제도가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는 챕터7(Chapter 7. Liquidation Under the Bankruptcy Code)과 챕터11(Chapter 11. Reorganization Under the Bankruptcy Code)이다.


챕터7은 기업을 청산하고 법인을 폐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챕터11은 당국의 관리감독 아래 어떻게든 기업을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창업자 입장에서 챕터7의 가장 큰 장점은 본인에게 채무의 부담이 전혀 가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챕터 7 아래에서 기업은 남은 자산을 모두 처분하여 주주나 채권자에게 갚아야 할 돈을 지불하고, 종업원은 해고되며, 남아있는 재고 등은 빠르게 처분되지만 창업가가 계속해서 부채를 상환해야 할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챕터 11은 어떻게든 기업을 존속시키면서 상황이 호전될 수 있는 여지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 반전의 여지가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창업가 본인, 종업원, 공급업체 모두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 밖에 없다. 다만 챕터 11의 특징은, 어쨌든 기업은 계속해서 존재하게 되며 이를 위해 창업가를 포함한 모두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2주 간의 비즈니스 케이스 토론 끝에 아툴 교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미 이 사업이 실패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 결국 챕터7이냐 챕터11이냐,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선택만 남은 셈이야. 과연 이 창업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툴 교수는 학생들이 미리 제출한 설문조사 결과를 취합한 뒤 수업시간 당일에 함께 들어보면 좋을 답안을 몇 개 선정해서 수업 당일에 공개하곤 했다. 그런데 이 창업가 비즈니스 케이스의 경우에는 내가 제출했던 답안이 운좋게(!) 당첨되어서 내 생각을 좀 더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대다수의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창업가가 챕터11을 선택해서 어떻게든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역설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비즈니스가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창업가는 실제로 챕터11을 선택했는데요 (실제로 그랬다) 그 이유가 그의 공급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부채탕감이나 아니면 그나마 남아있는 수익분배를 위해서라면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죠.” 라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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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2016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2016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해인데 두 명의 출산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물리적인 출산, 그러니까 딸 아이가 4월에 태어났고 또 하나는 같은 4월에 독립잡지를 만들어서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하며 소위 활자의 출산을 경험하였다. 20대 후반부터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어떤 경우에는 다른 잡지에 글을 연재하면서 잡지에 실린 내 글을 보며 기뻐하였지만,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면 조금씩 내 이름으로 만든 출판물을 하나 갖고 싶다는 욕망이 서서히 생기게 된다.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그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고, 또 남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플랫폼에서 나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2016년 새해가 되자 <독립잡지 출간 프로젝트> 라고 노트에 한 마디 적어놓고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구상을 하면서 잡지 창간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옆에서 만삭에 가까워져가며 조금씩 배가 불러오는 한편 나는 온라인으로 독립잡지에 글을 쓸 기고자를 모집하면서 독학으로 출판물을 만드는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3월이 되어 기고자들의 글을 모아 꽤 조악하지만 잡지의 형태로 만들 수 있었고,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충무로 인쇄골목을 찾아 40부 정도 잡지를 인쇄하고는 양 손 가득히 잡지를 손에 든 채 집으로 돌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독립잡지를 만드는 일도 일종의 비즈니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비즈니스의 모든 과정은 숫자와 숫자 사이의 선택이다. 모든 페이지를 컬러로 인쇄하면 더 그럴듯한 잡지가 되겠지만 제작 단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표지만 컬러로 인쇄하고 나머지 페이지는 모두 흑백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좀 더 두꺼운 종이로 인쇄하면 실제 서점에서 판매하는 것 같이 질 좋은 잡지의 물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제작 단가가 꽤 올라간다. 적당한 두께의 종이로 인쇄하는 것으로 타협하게 된다. 꽤 심플한 논리다. 더 좋은 퀄리티를 추구하면 더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지만 제작 원가가 지나치게 상승한다. 잡지를 만들 때 글을 쓰는 무형의 제작 원가는 과감히 없다고 가정한다면 실제 인쇄비용이 제작 원가에 해당하는 셈인데, 어림잡아 3,500원인 셈 같아서 잡지 한 부 판매가격을 4,000원으로 정했다. 커피 한 잔 정도에 살 수 있는 잡지라면 꽤 매력적일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실물 잡지를 만드는 것과 동시에 이 잡지를 유통해서 판매할 수 있는 독립서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독립서점 연락처를 수소문해 “이런저런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혹시 한 두 부 정도 비치해서 팔아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대부분의 경우에 답장이 없거나 거절했지만 가끔 긍정적으로 답을 주는 독립서점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서울 시내 여섯 곳의 독립서점에 총 다섯 부씩 내가 만든 독립잡지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어떤 서점은 정식으로 계약서를 체결하는 곳도 있었고 어떤 서점은 간단히 구두로 이야기를 마치기도 했다. 4월 초 어느 날, 만삭의 아내와 함께 독립서점을 방문하며 내가 만든 잡지를 건네주고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한 독립서점은 서울 종로구 계동 골목에 있었는데 아내와 함께 헌법재판소 옆을 지나 계동을 향해 걸어가며 바라보았던 2016년의 봄 하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나로부터 DNA를 이어받은 아이의 출산과, 직접 공을 들여 만든 실물 독립잡지의 출간 모두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아툴 교수와 함께 토론했던 창업가 이야기처럼 나의 독립잡지도 1년 동안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약간의 성공을 경험했다. 4월 창간호를 발매한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잡지에 글을 싣는 기고자는 최대 열 명까지 늘어났고, 겨자색의 단색에 잡지 이름만 단촐하게 새겨진 창간호와는 달리 출간 회차를 거듭할수록 잡지의 외형적인 모습도 그럴듯하게 바뀌었다. 글이 아니라 직접 그린 그림으로 기고를 하는 어떤 기고자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서울에 위치한 여섯 곳의 독립서점에 잡지를 공급했는데 점차 서울 뿐만 아니라 강원도와 경상도에 위치한 독립서점에도 계약을 맺고 잡지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판매부수가 엄청나게 많이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개인으로 잡지를 제작해서 인쇄하고 유통시키는 것을 혼자서 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조금씩 독립잡지를 둘러싼 바운더리가 넓어진다는 인상은 받았다.


4월에 태어난 아이가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처럼 4월에 창간호로 시작한 독립잡지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위기는 1년이 못되어 찾아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외로 독립잡지를 만든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1인 제작이었기 때문에 기고자 모집과 관리, 잡지 편집과 인쇄 및 배송, 새로운 독립서점과의 연락 등 모든 과정을 혼자하는 것은 처음에는 신선하고 재미있었지만 조금씩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배송이었다. 직접 잡지를 포장해서 매 달 열 곳 혹은 그 이상의 배송처에 일일이 우체국에 가서 익일특급으로 잡지를 부쳐야했다. 숫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잡지를 실제로 만들어서 판매한다는 것에만 몰두해서 수익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점차 제작원가와 인쇄비용이 판매가격보다 많아져서 적자가 누적되었고 이 역시 1년이 지나자 무시할 수 없었다. 비즈니스라는 것은 창업도 중요하지만 수성도 중요하다는 말처럼, 나는 창업은 즐겁게 시작했지만 그 다음 단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고 결국 1년이 지날 무렵 나는 독립잡지 만드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툴 교수와 함께 고민했던 창업가의 선택을 떠올려보면, 나에게도 독립잡지를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에 두 가지 선택이 있었던 셈이다. 챕터7처럼 모든 것을 청산하거나 챕터11처럼 어떻게든 독립잡지 만드는 것을 계속해보는 것을 고민하는 것인데 나는 창업가와는 달리 챕터7, 그러니까 사업의 청산을 택했다. 그것도 아주 프로답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짧았지만 1년 동안 이 독립잡지 비즈니스를 하며 형성되었던 네트워크들이 있었다. 기고자들, 독립서점 운영자들, 혹은 아주 드물게 문의가 있었지만 이런 독립잡지에 직접 관심을 보여주는 일반 독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이유에서 독립잡지를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몇 줄 안내문으로 비즈니스의 중단을 통보했고 내가 1년 동안 얼마나 적자를 기록했는지 숫자를 결산해서 기록했다. 독립잡지를 매 달 만드는 것은 즐거웠지만 동시에 신경써야 할 것이 참 많아서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그런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일종의 해방감마저 들었다. 나는 나만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결국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청산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비즈니스와 얽힌 공급업체를 생각하면서 챕터7 대신 챕터11을 선택한 창업가의 케이스를 읽으며 나는 2016년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혹은 창업가로서 자질이 과연 있었던 것인지를 나에게 다시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비즈니스는 시작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속하는 것이 중요했고 어떻게 끝낼 것인지도 중요했다.


아툴 교수의 수업 마지막은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현실 속 창업가의 창업 경험을 조사해서 가능하면 직접 인터뷰를 하며 생생한 창업 이야기를 듣고, 창업 과정에서 어떤 성공과 실패 경험이 있었는지를 정리하는 프로젝트였다. 다른 조가 대부분 큰 회사의 창업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학교 인근에서 꽤 규모가 큰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창업가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그룹 멤버 중 한 명이 예전 학부 시절에 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식당의 오너와 맺은 친분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 한 시간 정도 전화로 이 창업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꽤 신선했다. MBA 과정을 밟고 있던 우리로서는 비즈니스란 뭔가 각 통찰력 넘치는 전략의 수립, 철두철미한 수익성 추구, 그리고 굉장히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 전략을 조합해서 실행하는 것의 종합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제 지역 현장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우리가 1년 뒤 혹은 3년 뒤를 내다보고 중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하는지 물어보자 그는 다소 웃으며 사실 비즈니스라는 것은 바로 내일 일어날 일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긴 호흡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미래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다만 day to day operation에만 최선을 다한다고 답했다.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조합해서 실행하는지 여부를 물어보자, 그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그건 어떤 전략을 미리 세워서 실행한다기 보다는 현장에서 고객과 소통하며 시시각각 변화하고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최상의 제품(이 경우에는 그의 식당에서 판매하는 피자와 샐러드)을 만들어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며, 고객 만족도를 최대로 높일 수 있도록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생각하는 비즈니스란, 사전에 긴 호흡으로 준비되는 완벽한 프레임워크가 아니라, 현장에서 고객이나 공급업체와 시시각각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생성되고 바로 적용되는 실시간의 흐름에 가까웠다.


이어 창업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건 공급업체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남들보다 더 좋은 가격으로 원료를 구매할 수도 있고, 또 상황이 좋지 않아서 식당 몸집을 줄여서 운영해야 할 때도 공급업체와 단절되지 않고 어떻게든 계속 원료를 납품을 받으면서 사업을 이어갈 수 있거든요. 실제로도 Pandemic 시기에 그 덕을 보기도 했고요. Pandemic 때 무척 힘들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비즈니스를 계속하려고 노력한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비즈니스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는 비즈니스 케이스 속 창업가가 챕터11을 선택해서 어떻게든 기업을 회생시키고 이 비즈니스와 연결된 이해관계자에게 돌아갈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했던 것처럼, 비즈니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사업을 계속하는 것, 그리고 사업을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함께 일하는 종업원에 대한 관심과 관리도 무척 중요해요. 종업원이 많건 적건 우리가 같이 일한다는 느낌을 주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저는 종업원에게 줄 급여나 보너스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우리 그룹은 인터뷰를 정리해서 마지막 그룹 프로젝트 리포트를 제출했다. 아툴 교수도 다른 그룹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 직접 비즈니스를 하는 창업가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고 우리는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두 달 동안의 Introduction to Entrepreneurship 수업이 끝이 났다. 첫 수업에서 교수가 우리에게 이야기한것과 같이 이 수업은 어떻게 하면 창업을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묻는 수업이 아니었다. 이 수업은 “네 안에 창업가로서의 열정이 있어?”를 묻는 수업이었다. 창업가가 되고 싶다는 열정은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에서 시작되지만, 비즈니스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필요했다. 결국 비즈니스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와 관련한 다양한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함을 의미했다. 2016년의 나는 그러지 못했고, 2024년의 나는 책상머리에서 벗어난 비즈니스는 어떤 것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이해했다.


2018년에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고 이선균 배우가 연기한 박동훈 이라는 캐릭터(45세)는 건축구조기술사로 평생을 한 회사에 소속되어 근무하지만 이지은 배우가 연기한 이지안 캐릭터(21세)와 연루된 사건에 휘말리면서 회사와 갈등을 빚다가 마지막 회에서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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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훈이라는 캐릭터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어른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드라마 제작진의 인물 설명처럼 그는 ‘순리대로 인생을 살아가며, 절대 모험을 하지 않는 안전제일주의이며 눈에 띄는 게 불편하고 나대는 재주 없는 성품’ 이다. 그러나 그는 가족과 주변 인물을 배척하거나 쉽게 버리지 않고, 삶의 실패가 찾아올 때 어떻게든 이것을 버텨내려고 몸부림친다. 그는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거야." 라고 말하며 버티는 힘에 대해 강조한다. 어떻게든 주변과 함께 버텨내려고 한다…… 이것이 박동훈 캐릭터가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준 어른의 모습이다.


아툴 교수의 Introduction to Entrepreneurship 수업을 들을 때 나는 한국 나이로 마흔 살이 되었고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수업에서 다룬 창업가의 이야기나, 우리가 인터뷰를 했던 지역의 창업가 경험을 들으며 나는 비단 창업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비즈니스 세계에서 <어른>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나의 아저씨> 드라마에서 ‘나의 아저씨’인 박동훈 캐릭터가 보여준 어린의 모습을 종종 떠올렸다. 드라마 마지막에서 박동훈 캐릭터가 회사를 떠나 작은 규모지만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처럼, 나도 나만의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평범한 ‘아저씨’와는 다른 ‘나의 아저씨’라는 존재는 나와 관련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들과 단절하지 않으려는 자기 감내적 태도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그 태도는 창업을 하든 또는 한 직장에서 누군가를 위해 일하든 크게 다르지 않을거다. 기업가 정신이란 건 창업가만을 위해 필요한 건 아닐테니 말이다.


누군가 내게 기업가 정신을 묻는다면 나는 ‘나의 아저씨’가 되려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즈니스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책임지려는 마음, 시작한 것은 어떻게든 버티려는 마음, 전략이나 숫자보다 사람을 먼저 떠올리려는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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