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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Nov 09. 2015

손님은 정말 왕일까?

갑질 현상의 원인을 찾아서

출처 : ytn


예전부터 관용어처럼 쓰이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이 있다. 가게 사장님 입장에선 그런 마음가짐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좋은 뜻이지만, 요 근래에는 갑질을 하는 요상한 손님들의 머릿속에 기본으로 탑재한 생각인 듯 하다. 얼마 전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 점원 2명이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기사를 봤는데 이런 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만연한 갑질논란. 나는 이게 갑질을 하는 진상손님만의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진상이야 어느 사회에나 꼭 있다. 이 사람들이 바뀔 것을 바라는 것은 이 세상이 유토피아가 되길 바라는 것보다 요원하다고 본다. 문제는 매니저, 그리고 사장이다. 진상손님에게 들이받는 직원들을 나무라고 탓하고, 심지어 무릎까지 꿇어서 사과하라는 것은 분명 그 직원의 상사가 시킨 일일 것이다. 나는 적어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그런 사람은 상사로서 완전 NG라고 본다. 그런데 그런 상사를 내가 선택할 수도 없는 일이니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필자는 건설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건설회사의 ‘손님’은 공사의 발주자, 즉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들이다. 즉 그들이 ‘갑’이다. 나는 일하며 ‘갑’이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하면 잘 못참는 편이다. 내가 국내보다 해외공사를 더 선호하는 이유도 갑을관계가 비교적 자유로워 내 적성에 맞기 때문이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을이 갑에게 맞대응하기 시작하면 곤란해지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도 ‘갑’들에게 따박따박 되받아 칠 수 있는 이유는 예전에 나의 상사였던 모 차장님의 영향이 크다.


한번은 회의 중 발주처가 계약에 없는 걸 설치하라고 생떼를 쓴 적이 있다. 계약서와 내역서를 아무리 들이밀어 그런건 없다고 해도 안하무인이었다. 결국 목소리는 커졌고 나는 꼭 필요하면 작업지시서를 보내라고 했다. 회의를 마친 후 내가 너무 나갔나 하는 생각도 하며 같이 회의를 했던 차장님께 혼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차장님은 나에게 그러셨다.


“잘했어. 원래 그렇게 들이 받아줘야 그들도 어느정도 수그러들어. 계약조건이나 문서를 바탕으로 부당한 건 언제든지 그렇게 들이받어. 뒷 수습은 내가 책임질테니... 그게 내 일이야.”


그 이후로도 차장님은 언제나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었고, 나는 그렇게 ‘갑’에게 굳이 그렇게 머리를 숙이지 않아도 됨을 알게됐다. 나도 나중에 그런 고참이 되고 싶다.



부디 친절한 손님에겐 친절하게, 진상에겐 진상으로 응대해도 되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손님은 왕'이란 자본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관용어도 굳이 더는 쓰지 않아도 될 것같다. 손님은 그냥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구매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왕과 신하, 교수와 제자, 상사와 부하, 이런 수직적 관계는 언젠가 문제가 발생될 수 밖에 없다. 권력을 독점한 사람은 그 권력 맛에 도취하여 실수를 하게 되고, 권력에 조종당하는 사람은 수동적이게 되어 창의성을 상실한 노예근성이 자리잡힌다.


인간관계는 가능한 수평적으로 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신하도, 제자도, 부하직원도 할 말은 할 수 있는 사회, 말대꾸가 흠이 아닌 그런 사회를 꿈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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