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브렉시트를 비롯하여 터키 쿠데타, 니스 테러,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세계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러한 사건이 뭣이 문제냐 하며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를 조금만 돌이켜 보면, 그러한 무관심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세상은 때론 나의 그 무관심이, 또는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문제로, 나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물론 우리와 같은 소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관심을 가져봐야 뭐가 달라지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류 역사상 최악의 오점으로 기억되는 제2차 세계대전은 어쩌면 그 소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일함이 일으킨 역사라고 볼 수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는 원칙적으로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사람이다. 독재자의 이미지가 강해서 무언가 처음부터 국민들을 벌벌 떨게 만들며 권력을 휘둘렀을 것 같지만 나치당의 운명은 1933년을 기점으로 크게 나뉘게 된다. 그러니까 1933년 이전에는 독일 사민당이나 공산당도 꽤나 견제 가능한 세력이었지만, 이들은 국회 내 점차 그 의석수를 잃어가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나빠져 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높은 배상금과 전쟁시 생산시설 붕괴, 재원조달을 위한 엄청난 통화 발행, 채권 등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켜 3년 만에 물가가 무려 1조 배나 올랐다고 한다. 이게 1919년에서 1921년의 이야기다. 이 무렵 태동하기 시작한 나치당;Nazi Party는 1924년부터 국회 의석을 차지하게 되고, 그림 1과 같이 십여 년에 걸쳐 차츰차츰 그 의석 수를 늘려간다.
보면 1933년에도 의석수는 총 647석 중 288석밖에 되지 않는데, 이 1933년에 나치당은 수권법; Ermächtigungsgesetz을 통과시켜 독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만, 독일 역시 헌법을 수정하고자 하면 재적의원의 2/3 이상의 출석을 얻은 후에, 출석 의원의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로 한다. 이는 지난 총선 때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민주주의에서 누군가에게 너무 큰 권력을 안겨주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당시 나치당은 의석비율이 50%가 조금 안되어 의원 2/3 이상의 동의를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나치당은 보수계열인 가톨릭 정당인 중앙당;Zentrum과 자유주의 진영인 인민당;DVP과 손을 잡고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좌파로 분류되는 독일 사민당과 공산당은 물론 반대표를 던지려 했으나 공산당의 경우는 아예 출석조차 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독일을 대표하는 정당인 이 사민당은 당시 이러한 사태를 조금은 너무 여유롭게 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1933년 2월에 일어난 독일 국회의사당 화재사건으로 인해 히틀러는 이를 공산당의 소행으로 선언하고, 공산당을 거의 완전히 섬멸해 버린다. 결과적으로 전 국민 50% 이하의 지지를 받았던 제1당 나치당은 이 수권법의 통과로 전권을 휘두르는 독재정당이 되었다. 입법권을 국회에서 히틀러 내각으로 이양하고, 정부의 입법이 헌법에 우월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심지어 외국과의 조약에도 의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게 되어, 사실상 의회의 권한을 거의 다 박탈하고 히틀러 독재체제를 실현시켰던 것이다.
필자 자신을 돌이켜 보면 대학시절 뚜렷한 정치관은 없었지만, 약간의 우파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90년대 말 한총련 사태를 뉴스를 통해 보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도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MB를 존경했고, 김우중 씨나 정주영 씨 등 수많은 경제인들을 알아가려 노력했다. 헌데 입사를 하며 ‘노동’이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보수 10년 정권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인권이나 탈권위,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기 시작했다. 나꼼수를 열심히 들으며 진보적 사고를 가진 분들의 책을 많이 읽으며, 그러한 의식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사업을 하며, 시장경제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또 그 지나친 진보적인 생각은 때론 포퓰리즘으로 이어져 사회 자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딱히 나의 스탠스가 어디쯤인지 스스로 진단하기는 어렵다. 주변 분의 말씀처럼 ‘드라이’한 글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나의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환경과 현재 금융소득 및 자산, 가정 구성, 직업 등이 각기 다 달라 같은 정치관을 가지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치의 영역으로 가자면 나도 딱히 키보드 배틀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다른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무관심은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관심은 누군가의 독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독주는 언제 또 상기 언급한 1933년 독일의 수권법과 같이 독재로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유태인에 대한 혐오는 독일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퍼져있는 암적인 존재였다. 파시즘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스페인 등 다른 유럽에도 많이 퍼져있는 사상이었다. 다만 그 파시즘이 득세를 하여 독재를 한 국가가 독일과 이탈리아였다는 점, 득세를 하지 못한 국가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연합군이었다는 점이 다른 부분이었다. 작금의 유럽은 상당히 위태로워 보인다. 프랑스는 연이은 테러로 강경 우익 정당인 국민전선;FN이 그 의석을 넓혀가고 있고, 영국은 브렉시트로 어느 정도 유럽 대륙과 연결고리를 단절시켰다. 인권을 중시하는 북유럽의 덴마크는 또 인민당;DF이라는 반이민주의를 내건 정당이 가파르게 지지율이 상승해 2014년 총선에서 유럽연합 덴마크 의석 13석 중 30%가량인 4석을 차지하였다.
유럽에서 민족주의적 파시즘이 만연하여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 고작 70여 년 전이다. 당시에도 어느 뿔 달린 악당이 출현하여 선량한 국민들을 억누르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국민들이 스스로 악당을 만들기 시작했고, 히틀러나 무솔리니라는 사람은 점점 악당으로 변모해 나가며 브레이크를 걸지 못해 2차 대전을 통해 전 세계 7천만명 가량의 사상자를 만들었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자. 여기서 이야기하는 역사란 우리나라 역사나 문화, 국민성 같은 전통이 다른 나라보다 얼마나 뛰어난 지 입증하는 국수주의적 역사 관점이 아니다. 이러한 배타주의로 인한 지나친 애국심과 자만심은 파시즘의 형태로 엇나갈 수 있다. 과거의 영토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되면 결국 영토분쟁을 통해 소중한 우리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상기 독일 나치당의 사례와 같이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언제든 우리의 손으로 악마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점에 있다. 점점 느끼는 바지만, 세상은 어느 한쪽만 100% 옳다고 주장할 수 있을만한 문제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선악의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기엔, 세상에 그렇게 나쁘기만 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부디 몇천 년, 몇백 년 전의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 혹은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절이라도 조금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