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6년 전 나는 부천의 어느 지하철 현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요즘엔 그나마 조금 덜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노가다는 보통 월화수목금금금 일을 하던 때였고, 한 달에 몇 번 쉰다 하더라도 그 쉬는 날에도 전화통이 종종 울려 제대로 쉬지 못하곤 했다. 그러니까 건설현장에서 온전히 쉴만한 때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인데, 근로자 아저씨들도 명절에는 고향에 가시기 때문에 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날도 스팸 한상자를 들고 기분 좋게 집으로 가서 앞으로 3-4일간 쉴 생각에 무지무지 행복했다. 비가 뭐 스물스물 내리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것도 뭐 나름 운치 있는 수준이었다.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동네 대학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유유히 추석 연휴를 시작하고 있던 순간, 하늘이 뚫린 것과 같이 폭우가 내리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기록을 확인해 보니 2010년 9월 21일 하루에만 서울 하늘에서는 259.2mm에 달하는 비가 내렸다. 9월 하순으로는 1908년 관측 시작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다른 직원들은 다들 시골에 내려갔고, 부천 현장에서 20분 거리에 사는 나에게 현장소장은 전화를 걸어왔다. 대학 도서관에서 뽀송뽀송한 분위기를 느끼는 그 찰나였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이대로 추석 연휴는 끝날 것임을 직감했다. 인천에서 부천으로 차를 타고 가면 송내 지하차도라는 곳이 존재한다. 송내 지하차도는 평소에도 밀리는 곳이라 그저 넋을 놓고 유유히 차량의 흐름에 몸을 싣고 내려가고 있던 순간, 지하차도 밑이 물로 가득 찬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뒤로 꽉 막혀 어디 도망갈 수도 없고, 그대로 차는 핸들 바로 밑에까지 물이 차 버렸다. 물론 방수는 어떻게 잘 된 차인지 차 안으로 물이 새지는 않았고, 이대로 나는 차를 버리고 탈출해야 하는가도 고민했다. 다행히 차량의 흐름은 제대로 이어져 지하차도에서 탈출에는 성공했다.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태 껏의 수중 운전은 전주에 불과했다.
내리치는 빗물은 보차도 경계석 바로 밑에 있는 스틸그레이팅으로 내려가고, 그 빗물은 우수관 혹은 하수관을 타고 내려간다. 지하철 공사를 하면 복공판 밑으로 수많은 우수관/상수관/하수관(관 혹은 박스) 등을 공중에 매다는 일을 하는데, 하필 그 우수박스 중 과부하가 걸린 어느 부위가 터지고 만 것이다. 정신이 없었다. 하늘이 뚫린 채 내리치는 비는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 저 우수박스를 통해 계속해서 물이 터져 나오면 지하철 현장은 물바다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문득 언젠가 어느 선배에게 상수도관이 명절에 터져서 한두 달 동안 공사를 아예 못했단 소리를 전해 들었다.
나는 물론 현장에 속속들이 모인 직원들은 해당 우수박스로 갔고 어떻게 상황을 복구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체역학에서 유량에 대한 기본 공식은 Q=AV이다. 즉 유량(Q)은 면적(A)과 유속(V)의 곱인데, 계속되는 빗물의 유입으로 유량이 커져갔고, 우수박스의 면적은 똑같은 가운데 유속은 유량에 비례해서 점점 커져만 갔다. 문득 현장 공사팀장님이 현장에 비치해둔 마대자루를 생각해 냈고, 모래가 잔뜩 들어간 마대자루를 현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는 정말 사투와 같았다.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로 마대를 가져다 놓는데, 한두 개를 놓으면 그대로 쓸려 내려가기 일수였다. 다 같이 한 번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자칫하면 인명피해까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남은 마대자루를 전 직원이 한꺼번에 투하했을 때 물길은 본디 흘러가던 우수박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남은 마대를 쌓아 더 이상 물이 터져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때를 기억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물이 계속 터져 나왔더라면, 혹여나 마대 작전이 실패하여 터져 나오는 물에 인명피해라도 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일반적인 서울시 하수처리능력은 시간당 75mm라고 한다. 그 날의 폭우로 인해 강원도 영월에서는 2명이 실종되고, 용산에서는 1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광화문과 강남역은 물바다가 되었고, 전국적으로 6,400가구가 침수되었다고 한다.
재난은, 한 순간에 다가온다. 어느 때를 기다려서 천천히 다가오는 게 재난이 아니다. 정부의 SOC사업 예산을 두고, 토건족 배 불리려고 갖다 놓은 예산이라 폄하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심히 서운하다. 자신들은 추석 때 등 따습게 아파트에서 윷놀이하고 있을 때, 지하 어딘가에선 오늘도 전선관을 관리하거나, 도시가스관을 점검하거나, 상하수도관을 체크하러 다니시는 분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도시의 상하수도 시스템이나, 터널 내 방재 시스템, 노후 교량의 보수작업 등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엊그제 지진이 났다고 하는데, 내진설계를 통해 안전율 높은 구조물을 짓는 일은 10년,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일을 대비하여 튼튼하고 고비용으로 짓는 것이다. 토건족들이라 불리는 나쁜 사람들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러한 분들은 어디엔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설업계 전반을 폄하하고 예산을 쓸모없다고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지구의 기후가 뭐 완전히 바뀌어서 이제 수해로 인한 이재민이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 중동에선 아직도 하루 강수량 20mm만 넘어도 온 동네가 물에 잠기고, 교량 등이 무너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만큼 한국이 그동안 건설 예산을 많이 투입하여 이룩한 것이 현재의 인프라다. 이제는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쉽사리 재난이라 할만한 일이 많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80-90년대와만 비교해봐도 상전벽해가 이런 상전벽해가 없다. 마포구 망원동이나 상수동은 더 이상 상습침수구역이 아니고 홍대를 피해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아름다운 동네가 되었다. 잠실은 더 이상 여름만 되면 침수되는 뽕밭이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비싼 주거지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어렵게 이룩해 놓은 인프라를 거저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전기도, 물도, 도로도, 철도도, 공항도, 항만도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생긴 것 없다. 어느 정도 우리의 세금으로 계속해서 만들고 유지 보수해야 택배도 다니고, 비행기도 타고, 정수기에 물도 받아먹고, 이렇게 페이스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지 못한 가운데 얻게 되는 그 유무형의 것들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나는 오늘도 철근을 어떻게 더 빨리 매어볼까, 거푸집을 어떻게 더 유용해서 공사비를 낮게 산출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물론 나와 내 가족의 입에 풀칠하려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러한 공사에 대한 고민이 보람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냥 ‘토건족’이라는 말도 안 되는 프레임으로 규정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가치와 노력을 인정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