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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Oct 08. 2016

[서평] 쇼펜하우어 문장론

쇼펜하우어 문장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지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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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자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쓴 사색, 독서, 저술과 문체에 대한 책. 내가 쇼펜하우어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무지한 상태에서 읽은 책이지만, 책을 읽으며 얼핏 드는 생각은 역시 염세주의자라는 칭호가 붙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19세기의 모두까기 신공의 달인이라고 할까. 여튼 앞서 언급한 사색, 독서, 저술과 문체에 대해서는 꽤 배울 것이 많았고, 200년 전의 독일이라는 곳도 작금의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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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사색은 주관적 깨달음이라 이야기한다. 독서나 학습 등의 습득을 통해 얻어진 진리는 다른 여러가지 지식과 결합시켜 비교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절차를 거쳐야만 비로소 완전한 의미에서 자신의 것이 된다고.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완전하게 내 것이 된 지식을 원하는 사상에 맞게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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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나아가 책은 다독에 대해 조금 경계하는 말도 다음과 같이 하게 된다.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으로 정신에 재료를 공급할 수는 있어도 우리를 대신해서 저자가 사색해줄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독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대용품, 즉 독서가 실제적인 사색을 방해할 수도 있다. p.26”
내가 다독을 하는지 아닌지는 비교 잣대에 따라 달라져서 애매하긴 하지만, 조금은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다. 사실 주변에서 책을 많이 읽어서 좋겠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의 욕심은 내가 인생을 살며, 일을 통해 배우고 느낀 바를 나의 글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 하지만 그 우물의 한계는 분명 존재하는 것이고, 그 우물의 깊이나 넓이를 크게 하려면 독서가 필수적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우선순위가 있는 법, 독서가 실생활에 우선이 되면 조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독을 하며 뒷짐 지고 훈수만 두는 서생보다는, 실제로 정치나 사업을 하며 좌충우돌하는 분들의 말씀을 나는 더 귀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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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또 권위를 앞세우는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면 권위 있는 말을 인용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력과 통찰력을 활용하는 대신 타인이 남긴 침전물을 동원하고, 이를 자기 생각보다 더욱 확신한다. p.33”
나도 가만히 되돌아보면 나의 오롯한 생각보다 권위 있는 타인의 생각을 쫓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여겨진다. 실은 얼마 전부터 글을 쓰며 나의 생각을 더 우선시하게 되긴 했지만, 이도 따봉이 달리는 숫자에 따라 나의 생각이 잘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 타인이 아닌 나만의 생각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은 원론적이지만 어려운 말이다. 어디까지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그 구성원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부분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상기 권위에 대한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어 보인다. 권위 있는 말은 왜 권위를 갖게 되었는지,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 생각은 어떤 방향으로 가져가야 할런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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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렇게 깊이 사색하기, 글쓰기와 문체에 대해 논하면서 이어진다. 간혹 재미있는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현시대에 대한 한탄은 꾸준했구나 하는 부분이다.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자들은 100년 전의 선배 학자들처럼 우리의 모국어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p.164”
독일이나 한국이나 이 언어 혹은 문자에 대한 고민과 고찰은 시대를 뛰어넘어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나는 개인적으로 언어와 문자는 그 시대의 사회를 대표하는 성질을 띄고 있다고 생각하여 은어나 신조어에 대해 거부감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상기 언급한 부분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어차피 독일어도 라틴어에서 파생된 것이고, 한글도 따지고 보면 세종대왕 이후 해방되기 전까지 긴 암흑기가 있었는데, 어떠한 시점이 기준이 되고, 자연스럽게 파생된 언어의 변천과 왜곡의 판단기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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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데 있어서 미리 설계도를 완성한 후 이 설계도에 따라 세부적인 부분을 완벽히 쓰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 그렇지가 못하다.
“대다수의 작가들은 도미노 놀이를 즐기듯 글을 쓴다. 도미노를 나란히 세워놓는 것처럼 절반은 의식적으로 쓰고, 나머지 절반은 그 의식에 지배당하는 우연에 의해 글을 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문장이 되는지, 또는 어떤 결말로 도출되는지 작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한다. p.168”
작가는 이러한 경향이 짙어지면 작가들의 극단적으로 무의미한 작품을 쏟아낸다고 하는데, 나도 그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튼 전업작가가 아니므로 크게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사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글쓰기를 좋아한다. 내 의식 속에서 있지 않았던 부분이 사실 글쓰기를 통해 종종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쓴 글도 두세번은 시간차를 두고 다시 읽어보곤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를 다시 볼 수 있고, 그런 게 정립되다 보면 객관적으로 나를 조금 더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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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의 한계는 정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을 하루 종일 하거나 일주일 내내 하는 것은 상당히 비생산적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그러한 부분을 지적한다.
“많이 읽을수록 책의 내용은 정신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즉 우리의 정신은 칠판과 같다. 그러므로 반복적으로 쏟아지는 내용을 저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해진 양만큼 알맞게 읽은 책은 분명 독자의 것으로 남는다. p.193”
이런 측면에서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은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문득 얼마 전 어느 후배로부터 왜 서평을 쓰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평은 마치 그 책의 마침표와 같다고 생각한다. 서평을 씀으로써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궤도를 돌이켜 볼 수 있고, 일정 시간 복습의 시간을 둠으로써 다음 책을 읽을 때까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긴다고 느낀다. 아울러 요즘과 같이 블로그에 기록하다 보면, 문득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 언제든지 아이폰으로 뒤져봐 생각의 끈을 가져올 수도 있다. 물론 나의 무지함을 글로 드러낸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만, 그것도 하다 보면 무던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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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당대의 철학자 피히테, 셰링, 헤겔을 책에서 엄청나게 까댄다. 사실 헤겔의 경우 같은 베를린 대학 강단에 섰지만,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헤겔에게 약간의 질투심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쇼펜하우어의 경우는 말년에 그 명성을 얻게 된 케이스로 알고 있다. SNS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고 썰전을 뜨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서로가 괜찮고 대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헤겔과 쇼펜하우어와 같이 사이가 좋지 않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언제 다시 어떤 사이로 마주할지 모르니 가급적이면 감정적 대응은 삼가는 편이 낫지 싶다. 어디까지나 문자로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라면 진정 서로가 어떤 말을 하는지는 완벽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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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론 글보다 업무가 우선이다. 업무를 잘하려고 글을 쓰는 경향도 있다. 어디까지나 몸으로 익힌 업무를 글로 정형화시키는 것도 능력이니 그 연습의 일환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글 쓰는 것도, 사색하는 것도, 독서를 하는 것도 다 어느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허황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 속의 위대한 철학자의 고민을 통해 이런 부분을 조금 다듬어 나간다면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글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이 서평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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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간결한 문체와 적절한 표현은 훌륭한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쇼펜하우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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