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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Oct 08. 2016

인간중심적이라는 말에 대해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인 이정모 선생께서 책을 내셨다고 한다. 아마도 귀국을 하게되면 가장 먼저 사서 보게 될 책일 듯 싶다. 책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인상깊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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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예쁜 이유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존재하기 전에는 어떤 동물도 저 꽃을 보고 예쁘다고 얘기한 적이 없잖아요. 인간이 있으니까 자연이 아름답고, 지구가 의미가 있고, 우주가 장엄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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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내가 살아남는 거예요. 이런 말하면 인간중심적이지 않느냐고 하는데요. 당연히 인간이 인간중심적이지 도롱뇽중심적인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해요. 인간 없는 지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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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그 '자연적'이라는 말이 꼭 그렇게 좋은 뜻은 아닐 수 있다는 말과 조금 맞닿아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자연생태계와 이미 아주 먼 생활을 하고 있다. 평소 얘기하던 지극히 토목공학적 치수 및 상하수도 말고, 이번엔 동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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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생태계는 상위포식자인 맹수와 그 외 육식동물, 그리고 수많은 군집생활을 하는 초식동물로 구분될 수 있다. 개체수는 당연히 초식동물이 많으며, 상위로 가면 갈수록 개체수는 줄어든다. 개체수가 많은 초식동물들의 군집은 거의 하루에 몇마리씩 육식동물에게 잡아 먹힌다. 그러면 육식동물은 맘편히 초식동물만 잡아먹으며 배따숩게 등뚜리며 잘 살까. 그렇지 않다. 만약에 육식동물도 그렇게 쉽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육식동물 개체수가 과도하게 증가해 초식동물의 수가 줄어들어 결국 다같이 멸종에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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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네셔널지오그라피에서 하는 다큐멘터리를 유심히 본 적 있다. 이는 사자의 습성을 주로 묘사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에 따르면 사자는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이 주로 암사자가 사냥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냥에 성공하면 숫사자가 먼저 그 사냥감을 먹는다. 숫사자가 먹고 남은 것은 이제 암사자가 먹고, 새끼들은 제일 마지막에 먹게 된다. 사실 그 사냥이라 하는 것도 며칠에 한번 하고 매번 성공하는 게 아니라 며칠씩 먹이를 못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새끼사자들은 자기가 먹이를 먹을 차례가 오지 않아 아사하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실제로 새끼사자가 굶어죽지 않고 장성하는 확률은 20-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사자에 비하긴 좀 그렇지만, 이쯤되면 그 모성애라는 것도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것인지 교육에 의한 것인지 좀 애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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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법칙은 그러하다. 초식동물은 거의 매일 죽음의 위기를 본능적으로 피해야 하며, 아무리 잘 피해도 군집의 한두마리는 거의 매일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힌다. 그리고 그 육식동물도 아무리 열심히 사냥을 해도 자기 자식을 굶어죽일 수 있을만큼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사실 인간도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살아가던 시절에서 벗어난 게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멀리 삼국지나 칭기스칸의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반백년 전 그 우아한 유럽의 선진국들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살아왔다. 물론 지금도 테러와 같이 그런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사는 한국사회에서는 질병이나 노령으로 죽음을 걱정하지, 누군가에게 인위적으로 죽음을 당할까 걱정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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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우리 인류, 아니 우리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이러한 인프라, 그리고 사회구조는 어찌보면 정말 대단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헌데 이를 두고 인간중심적이라느니 인간이기주의라고 우리 인간이 인간 자체를 비하하는 걸 보면 고개가 좀 갸우뚱해진다. 자연주의는 워딩 자체로는 좋은 뜻으로 보이나 실제로 그 생태계나 홍수나 지진 등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나이스한 단어는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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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우리 인간이 중요하니 저 자연을 막 파헤치고 개발만 하자, 그런건 아니다. 자연 생태계에서 최상위포식자가 개체수를 막 늘려가서 초식동물들이 줄어들면 결국 그 최상위포식자도 굶어죽게 되듯이, 과도하게 인간 위주로만 생각해서 먹이사슬의 일정부분을 지나치게 크게 차지하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인간세계 안에서도 통용되는 것인데, 소수의 자본가나 권력자만 지나치게 잘먹고 잘사는 사회가되면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불평등이란 문제의 필연성은 어느정도 인식하되, 어떻게 그것을 '인위적'으로 완화하고 해결해 나갈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자연 그대로 둔다면 오히려 문제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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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다. 자연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잘 들여다보면 이 말은 인간에게 꼭 그렇게 좋은 말만은 아닐 수 있을 것이다. 한번쯤 곰곰이 고민해봐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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