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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Oct 30. 2016

[서평] 불황의 경제학

불황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필독서

SNS를 하며 능력이 뛰어난 여러 전문가님들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으뜸으로 꼽자면 경제학이다. 물론 교양 수준에서 접근하는 형태지만, 어렴풋이 경제학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가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나 거시경제 측면에서의 시각을 하나둘씩 알아 나가니 세상 및 사회를 보는 눈도 조금은 다각화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현대사회의 근간인 자본주의는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되어 왔고, 아직도 진화 중에 있다. 이는 마치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과 같이 직관적으로는 다소 이해가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흐름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방식이 모델을 이해하는 것인데, 모델은 어떤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용도로 꽤 유용한 방식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통화 이론과 그레이트 캐피톨힐 베이비시팅 협동조합의 위기’는 그러한 측면에서 훌륭한 모델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불황의 예를 잘 설명해 준 예화로 널리 유명하지만, 여기서 잠깐만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캐피톨힐은 워싱턴 DC 국회 인근에 위치한 주거지역으로서 이 협동조합은 1970년대 국회의사당에 근무하는 젊은 부부들 위주의 조합이었다. 약 150쌍의 부부가 참여하는 이 조합은, 쿠폰을 발행하여 한 시간 동안 아이를 맡기는 권리를 유통시켰다. 헌데 이 쿠폰은 조합 내에서만 유통되며, 쿠폰의 사용으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기 이 150쌍의 부부들이 수행해야 하는 것이기에, 당장 외출 계획이 없는 조합원들은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쿠폰을 적립하며 아끼기 시작했다. 결국 베이비 시팅의 기회 증대를 위해 만든 이 협동조합에서 쿠폰의 유통이 줄어들며 베이비 시팅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상당히 모순적인 불경기의 예시이다.



크루그먼이 이 불경기 모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불경기의 이유가 구성원들의 베이비 시팅 능력 부족, 가치관의 상이, 편파 주의 같은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유효수요(effective demand)의 부족에 있었다는 것이다. (p.35) 즉 튼튼한 경제를 가진 국가에 있어서도 이 불황이라 하는 것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이다. 이 캐피톨힐 모델이 흥미로운 점은 해결책까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상당히 뛰어난 정책가, 법률가로 이루어진 이 조합은 여러 문제 해결방법을 검토해 보았는데, 결국 해결책은 쿠폰의 공급을 늘리는 조치였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제한된 수량의 쿠폰을 의식하다 보면, 현재 내 쿠폰의 사용은 미래 베이비 시팅 기회의 박탈이란 생각을 하게 되어 사용을 꺼리게 되지만, 쿠폰의 양 자체가 늘어나다 보니 구성원들은 조금 여유로운 마음을(언제든지 쿠폰을 추가로 매입할 수 있으니) 갖게 되어 외출을 하며 쿠폰을 사용하며, 유통된 쿠폰은 다시 다른 부부들이 사용하며 외출 빈도와 베이비 시팅 기회의 확대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여기까지가 일단의 해결책이고, 더 나아가 이자율 관점에서의 해결책까지 보자면 다음과 같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불황에서 중요한 것은 쿠폰을 각 집집마다 쌓아두지 않고 유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쿠폰의 양을 늘려도 미래를 대비해 저축만 생활화한다면 다시 불경기는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현재 쿠폰의 가치를 미래에는 가치가 떨어질 수 있음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겨울에 쌓은 5시간의 베이비 시팅 신용을 여름이 되면 4시간으로 축소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p.117” 이것이 현실 경제에서는 시간에 따라 돈의 가치가 하락되는(=실물의 가치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델로 일본의 경제를 설명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및 2007년 세계 경제위기를 설명한다. 경제학자가 아닌 나 같은 문외한을 대상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사용하는 문장이나 단어도 상당히 평이하다. (이해하기 쉽다는 말은 아니다 ㅠ)



세계화에 대한 부분도 언급된다. 원래 제3세계란 용어는 인도의 네루 총리가 만들어낸 용어로 미국이나 소련과 동맹을 맺지 않은 자주성을 지키는 국가를 일컫는 말이었다 한다. 즉 자부심의 표상이었다고. (p.42) 하지만 지금 제3세계라는 용어는 그저 가난한 저개발 국가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그 네루의 인도만 보더라도 지금이야 GDP 기준 세계 7위, GDP PPP 기준 세계 3위라 하는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외국자본의 도입을 억제하는 폐쇄경제를 고집하던 1991년 이전에는 인구만 많고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던 그저 가난한 나라였다. 경제위기로 인해 1991년 IMF 구제금융 조치를 취하고 시장체제로의 전환을 실시한 인도는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를 대폭 철폐하고, 고관세 및 수입규제 정책 등을 완화시켰다. 50%가 넘던 법인세율, 그리고 외국인 기업 세율, 소득세율을 낮추고 면세점을 높임으로써 세제개혁도 추진했다. 아울러 은행의 국유화를 점차 신규 상업은행 설립을 허용함으로 금융자율화를 도입했다. 그 이후 인도 경제의 성장 및 현재 인도의 상황은 지켜보는 바와 같다. 양극화로 인해 아직 빈곤계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근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등 서남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월등히 나는 국가경제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경제성장과 함께 빈곤율이나 영아사망률도 급격히 감소되고 있다.
(상기 인용된 인도 경제 관련 참고자료: 정동현, 「인도의 외환위기와 경제개혁」, 부산대학교 국제지역문제연구소, 『국제지역문제 연구』, 제19권 제2호, 2001, 265쪽)



일본의 거품경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아래의 부분이 조금 인상적이었다.
“1990년이 시작될 무렵 (중략) 도쿄의 왕국 아래 1평방 마일(약 2.589 제곱킬로미터)로 캘리포니아 주 전체를 다 사고도 남는다는 이야기가 인용될 정도였다. ‘거품경제’에 들어선 일본은 1920년대 미국과 흡사했다. p.96”
거품경제, 혹은 부동산 거품이란 말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한 국가, 어느 시점에는 언제든지 거품이 발생할 수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이 그러했고, 2000년대 초 미국의 닷컴 버블이 그러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부동산 가격을 두고 버블이라 할 수 있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언제나 버블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하며, 투자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지만, 지나친 경계는 비관론으로 빠져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유도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조심해야 한다. 아울러 일본의 사례는 다른 책들을 통해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평면적으로 1990년 일본의 사례를 2016년 한국에 적용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그렇다고 인구 노령화 측면에서 이웃 사례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아니란 생각을 해본다.



책은 한국 및 동아시아 국가의 1997년 경제위기와 관련해서는 IMF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는지, 아니면 잘 해결했는지도 이야기한다. 우리도 경험했지만 IMF는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정부의 긴축재정과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미 경제위기로 불황이 닥쳐온 나라에 긴축재정을 시행하면 불황은 더 악화되고, 구조조정을 실시하면 일자리 축소에 따른 낮은 구매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IMF가 이러한 모순된 해결책을 강요하는 이유는 “이것이 다 신뢰를 재구축하는 과정의 하나, p.173”이라 말한다고 한다. 폴 크루그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IMF의 생각은 틀렸다고 지적한다. 보통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위기를 이야기할 때 호주의 경제위기도 언급하는데, 호주의 경우 통화 하락이 발생해도 그대로 용인했고 높은 펀더멘털의 저평가로 다시 매수세가 작용하여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헌데 IMF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높은 이자율 정책을 요구하여 투자자들의 돈이 나가지 않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경알못인 내가 여기서 어떠한 생각을 제시하는 건 조금 조심스럽지만, 이러한 IMF의 가이드라인은 당시 신뢰도가 약한 동아시아에서는 어느 정도 타당하지 않았냐는 생각이다. 지극히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러한 IMF 시대의 구조조정과 신뢰 재구축 과정에서 나는 한국이 조금 더 투명해지고 나아진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한 대 사려고 해도 대출보증을 서로 서주고, 직원들에게 일 년에 한대씩 사라고 강매하고,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 간의 대출도 횡횡했던 그 이전 시절에 경제활동을 했다면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닷컴 버블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준다.
“비즈니스 분야 전반에 걸쳐 많은 기업들이 신기술을 찬양하고 나섰다. 그들은 신기술이 모든 것을 바꾸었으며, 이윤 확대와 성장을 가로막는 낡은 방식의 시대는 끝났다고 떠들어댔다. p.216”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낙관을 경계하는 나로서는 꽤나 친근한 어투다. 물론 현실은 MS나 애플과 같이 지극히 세상을 바꾸어 놓을 신기술도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현상은 정말 백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일이다. MS와 같은 회사만 바라보며 봄날이 올 것이라 예상한 투자자들은 2000년 여름 이후 2년 동안 40퍼센트가량 가치가 상실한 미국 지수를 경험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전 세계 정책입안자들에게 조언하는 바는 ‘신용경색 완화’와 ‘소비 지원’이다. 전 세계 교역량의 척도로 쓰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아직도 2008년 대비 무려 10% 대에서 허덕이고 있다. 금융위기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고, 그에 따라 우리도 조선사나 해운회사 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한진해운 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 MAESK도 올 상반기에만 1억 7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며 몸집 줄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개인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렇게 전 세계 경제를 거시적으로 보자면 작금의 몇몇 산업의 위기도 단편적으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저자는 도로와 다리 건설 등의 인프라 구축사업을 통해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로 실제로 돈이 지출되는 점과 튼튼한 다리 같은 가치 있는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든다. 실제로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별다른 고정 설비투자 없이 대규모의 자금이 재료비, 노무비, 경비의 일환으로 모래나 시멘트, 철근 등의 원재료 업체에게, 포크레인, 덤프트럭 등의 중장비 제조/임대 업체에게, 철근공/콘크리트공 등의 노무자에게 돈이 직접 지급되는 장점이 있다. 이 지급된 돈은 또 각자 연관기업/노무자에게 전달되어 새로운 소비로 창출될 것이다. 문득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그 시절, 선급금을 막 70%씩 퍼가라던 MB정부의 재정정책이 떠오른다. (아, 선급금이 70%라고 매출액이 많아지고 그런 건 아니다. 원래 받을 돈을 몇 개월 미리 주는 것일 뿐이다.) 이게 세계경제위기로 인한 국내 신용경색을 완화하고 소비를 지원하는 측면에서 추진된 정책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는 결국 경제의 본질은 “공짜 점심은 없다”지만, 불황 경제학은 공짜 점심이 있는 상황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한다. 그리고 우리 세계에서 진정으로 부족한 것은 자원이나 미덕이 아닌 이해라 말한다. 책을 덮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조금 더 많은 책과 글을 통해 이 불황의 경제학이 무엇인지,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 끝.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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