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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Dec 06. 2016

[서평] 맛의 비밀

제 지인들은 아시겠지만, 요즘 내 인생의 즐거움의 절반은 먹는 것이다. 물론 그 먹는 것에는 같이 먹는 사람과의 즐거운 대화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헌데 먹는 것을 즐기며 찾아먹기 시작하니 슬슬 그 맛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더라. 얼마 전 회를 먹으며 숙성의 참맛을 알게 되었고, 일백 년 전 발견된 감칠맛의 존재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상엔 제 6의 맛인 지방 맛이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쯤 되니 좀 괜찮은 책을 통해 그 맛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자인 노봉수 선생님은 서울대 식품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동서식품에서 일을 하다 UC Davis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여대 식품공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각종 정부기관 및 회사의 자문역을 하고 있다. 요즘 내가 읽는 책은 누군가의 서평을 통해 접한 책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은 이와 같은 책을 읽을 때는 나에겐 저자의 약력이 상당히 중요하다.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건너야 하듯 책도 읽으며 시간 낭비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헌데 이 책의 저자는 학계와 업계 두루 경험을 갖추고 그 과학적 바운더리 안에서 맛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 줄 것 같아 과감히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성공했다. 뭐 더 설명할 필요 있으랴.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금은 역시 맛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소금에는 쓰고 시고 달고 매운맛이 모두 다 들어있으며, 짜다는 말은 그런 여러 가지의 맛이 잘 짜여 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실제로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을 혼합해보면 짠맛이 나온다. 따라서 음식에 소금만 잘 사용해도 다른 어떤 종류의 양념이나 향신료를 넣을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소금은 진정한 맛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p.29” 언젠가부터 나는 음식을 먹을 때 가능하면 그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고자 노력한다. 물론 어복쟁반이나 김치찌개 류의 섞어서 만든 음식이 아니라 회나 구이류가 그러하다. 소금의 짠맛 하면 떠오르는 게 꽃등심인데, 잘 데워진 숯불 위에 살짝 구워진 꽃등심을 소금에 찍어먹으면 그 이상 행복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과연 그 소금은 쓰고도 시고, 달고도 매운맛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저자는 소금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데, 생활 속의 소금 활용법 하나를 알려준다. “물과 기름은 잘 섞이지 않는 성질이 있어서 튀김요리를 만들 때 물기가 있으면 기름이 이리저리 튀는데 이때 소금을 한 줌 넣으면 기름이 튀는 현상이 가라앉는다. p.32” 바로 일주일 전 퇴근하고 맥주에 군만두나 먹어볼까 프라이팬을 물로 대충 씻고 만두를 올렸는데, 이리저리 튀는 기름 때문에 밤새 주방을 홀딱 닦은 기억이 난다. 그때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소금을 투척했을 텐데. 이렇게 소금이 프라이팬 기름이 튀는 현상을 가라앉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수분과 유지의 결착력을 높이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역시나 식품에 대한 책답게 MSG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MSG는 소금에 비해서 나트륨 함량이 1/3 밖에 되지 않고, 매우 소량이 사용되므로 소금의 함량을 약 30%까지 낮출 수 있다. MSG는 물에 쉽게 녹는 성질이 있고 식품에 첨가하면 특유의 감칠맛을 제공한다. p.40” MonoSodium Glutamate(글루탐산 일나트륨)의 약자인 이 MSG는 조미료의 원료로 잘 알려져 있다. 흔히 화학조미료로 유해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 MSG가 유해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한국 식약청에서도 안전하다고 발표도 했으며, FDA 홈페이지 Q&A에도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됨(GRAS, Generally recognized as safe)로 설명되어 있다. 물론 어떤 음식재료든 과하면 문제가 될 것이다. 소금도 적당히 음식에 넣어먹으면 건강에 좋지만, 한주먹을 퍼먹으면 당연히 건강에 적신호를 초래할 것이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MSG라고 경기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책은 온도와 음식 사이에도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과일이 더운 상태로 있으면 똑같은 과당과 포도당이라도 약간 덜 단 맛을 제공하지만 찬 상태로 보관이 되면 단맛이 더 강한 상태의 과당과 포도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p.45”라고 말한다. 그리고 뚝배기나 양은냄비, 그리고 돌솥밥 등 요리와 관련된 기구들이 음식 온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이렇게 음식, 그 음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온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건 새삼 중요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더 나아가 한국음식과 중국음식의 차이를 설명한다. “우리 음식은 식물성 기름을 주로 사용하지만 중국 음식은 대부분 동물성 기름을 쓰고 있어 더울 때는 맛이 있지만 식어 버리면 맛이 없기 때문에 우리처럼 한상에 가득 차려 놓을 수가 없다. (=하나하나 코스대로 나온다) p.46” 동물성 기름은 주변 온도가 내려가면 기름이 액체 형태가 아닌 고체형태로 변화한다고 한다. 그것 듣고 보니 과연 각국마다 요리문화의 차이가 왜 존재하는가 무릎을 탁 치고 감탄하게 된다.



매운맛을 싫어하는 나에게 저자는 일종의 특효약을 처방해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매운맛은 통증의 맛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즉 음식과 닿는 부위에 강한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p.71” 내가 매운맛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다 ㅋ 여하튼 저자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매운 음식들도 먹고 난 뒤에 우유를 먹으면 매운맛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우유에 함유된 카제인과 같은 단백질과 칼슘 그리고 유지방 등이 매운맛 성분과 결합하여 혀를 진정시켜 주고 통증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보다도 더 효과적이다. p.75” 괜히 오도독뼈를 시키면 자두맛 쿨피스를 주는 게 아니었다. 과연 매운맛 음식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그렇게 식품영양학적 관점의 처방을 제대로 내려주시던 것이었다.



이어 저자는 전자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약견의 태생적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마약탐지견들도 사실은 마약에 중독되어 있어 자신들이 먹고픈 마약을 찾아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마약탐지견들은 오래 살지 못하고 빨리 죽게 된다. p.84” 공항에서 간간히 보이는 그 늠름해 보이던 마약탐지견들이 갑자기 불쌍해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그것 참 세상에 인간을 위해 고생하고 희생하는 동물들이 많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어쩌랴, 인간이 이 지구에 존재한 이후 식물 및 동물 모든 생태계는 필연적으로 교란이 된 것을. 그래도 가능하면 전자코 등 기술의 발전으로 다른 종을 희생시키는 일은 가능하면 점점 줄여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역시나 맛에 대한 책답게 내가 좋아라 하는 초콜릿에 대한 부분도 존재한다. “사람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경전달물질로 페닐에틸아민, 세로토닌 이외에도 엔도르핀이 있는데 엔도르핀의 진통효과는 모르핀의 효과를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133” 초콜릿은 엔도르핀의 생산을 증진시키는 좋은 식품이라 한다. 우울할 땐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열심히 초콜릿을 또 먹어야겠다 ㅋ 물론 과하면 또 문제겠지만.



저자는 맛의 다양한 분야를 터치해 나간다. 커피, 맥주, 생선회, 흑돼지, 간장, 등등 내가 좋아라 하는 분야들에 대해 그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적확하게 설명을 해준다. 내가 과학을 좋아라 하지만 그중에 유독 생물학은 싫어했는데, 이 책을 보니 조금씩 맛의 비밀을 알기 위해선 그 생물학과도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지막으로 내가 요즘 친애하는 생선회, 그 숙성 맛의 비밀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마무리해본다.


“보통 생선을 바로 먹기보다는 어느 정도 숙성, 발효시킨 후에 먹는 것이 오히려 더 부드럽고 맛이 좋은데 여러 효소들에 의해서 분해가 되면서 질긴 상태의 조직감이 보다 부드러워진 상태로 변하기 때문이다. p.222, (중략) 이들 분해산물 중 이노신산, 하이포잔틴, 잔틴 등은 아주 맛이 잇는 물질들이다. 미역을 오랫동안 끓이면 생성되는 우마미 맛 하고는 다르지만 핵산조미료의 성분들 중 하나로 감칠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생선이나 돼지고기 등을 숙성시키는 이유는 생선을 잡고 난 직후의 ATP상태보다는 어느 정도 발효, 숙성 과정을 거쳐 이노신산, 하이포잔틴, 잔틴으로 ATP가 전환된 다음에 먹는 것이 훨씬 더 맛이 있기 때문이다. p.323”



맛의 비밀, 노봉수, 예문당,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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