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Dec 06. 2016

[서평] 오일의 공포

건설업은 크게 주택, 건축, 토목, 발전, 석유화학 이 다섯 가지 섹터로 구분할 수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경제는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혹은 엇박자)로 인해 어느 정도 사이클이 있는 순환주기가 있는 형태로 진행되며, 여기 건설업의 다섯 가지 섹터도 각기 그 흐름에 따라 등락이 존재하게 된다. 작금의 상황에서는 부동산 경기 호황으로 건축과 주택이 각광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5년 전만 하더라도 그 수많은 미분양 물량으로 인한 금융비용의 증가는 대부분의 건설회사 존폐의 트리거가 된 적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고유가의 영향으로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수주를 하며 선급금을 안겨다 준 발전 및 석유화학 부문의 역할도 점점 확대되어 갔었다. 다시 십오 년 전쯤으로 시계를 돌리면,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통해 민간경기가 얼어붙은 한국은 인프라 재정확대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섰고, 당시 서해안 고속도로 및 다양한 턴키공사를 중심으로 토목사업은 꽤 괜찮은 캐시카우가 되었다.



이처럼 건설업이라는 하나의 산업에서도 각기 다른 플레이어들이 존재하며, 경기의 순환에 따라 각자 빛을 발하는 시기는 다양해진다. 문제는 그 등락에 따라 일정 부분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십 년가량의 구조조정의 늪에 빠지면 이미 그 능력을 보유한 인력의 이탈, 장비 수의 감소로 인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선 또다시 Learning curve가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 건설업체가 장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기 언급한 다섯 가지 섹터를 골고루 유연하게 유지할만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특정 섹터에 몰빵 하고, 나머지는 싹 다 없애버리는 식으로 간다면, 거시경제 등락에 따른 외부 리스크에는 그대로 노출될 것이라고 본다.



나는 토목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솔직히 건축이나 주택 시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토목과 건축은 기본적으로 콘크리트와 철근, 그리고 철강이라는 재료로 구성된 전통적 건설업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건축학’에는 문외한 일지 모르지만 ‘건축공학’에 대해서는 숟가락이라도 조금 얹을 수 있지 않나, 뭐 그런 말이다. 그리고 지난 십여 년간 경제활동을 해오며 부동산 시장을 들여다보니, 잘은 몰라도 대충 그 흘러가는 감은 잡히는 듯하다. 미시적 관점의 학군, 교통, 평형, 세대수, 그리고 거시적 관점의 금리, LTV, DTI 등의 규제, 주택 공급량 등의 함수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흘러가는 흐름은 따라갈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머지 발전과 플랜트, 내 비록 중동에서 발전소를 지은 경력은 있지만, 그 시장에 대해서는 사실 거의 무지한 편이었다. 발전소를 짓는다 하더라도 내가 한 일은 바닷속에 직경 3M짜리 파이프를 묻거나(물론 잠수부 아저씨들이 묻었지만), 상하수도 혹은 터빈의 기초 등 콘크리트 구조물을 짓는 것이었다. 당연히 에너지의 흐름이나 전기계통에 대해 이해할리 만무했다. 하지만 조금 더 미래를 본다면, 건설업의 큰 두 축인 이 시장을 이해해야 하는 건 나에게 어느 정도 선결적인 것이기도 하다.



대니얼 예긴의 황금의 샘, 그리고 에너지 전쟁 2030을 통해 석유 및 에너지 시장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은 잡았지만, 한국의 사례, 그리고 한국의 시각으로 그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궁금했다. 그렇게 집어 들게 된 책이 이 ‘오일의 공포’이다. 사실 나는 비관론이나 음모론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 그다지 손이 가진 않았다. 주변의 호평으로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산 후,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 ‘대담한 미래’나 ‘화폐전쟁’ 등 내가 선호하지 않는 단어들이 등장하자 나는 고냥 덮어버렸다. 하지만 손경제에 출연하신 저자 손지우 애널리스트의 에너지 시장에 대한 내공 깊은 설명에 자연스레 다시 몇 달 만에 손에 쥐어들게 되었다. 과연 다시 눈을 씻고 읽어보니 그 깊은 통찰력과 내공이 느껴지더라. 그러면 책을 한번 살펴보자.



책은 초반에 먼저 OPEC이 감산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논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배운 부분은 왜 석유의 수요가 떨어지는 저유가 시대에도 OPEC이나 미국, 러시아, 심지어 브라질이나 베네수엘라 등의 산유국은 감산을 하지 않는가였다. 쉽게 얘기하자면 이는 결국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싸움으로 해석된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인데, “1970년 기준 사우디의 산유량은 385.1만 b/d(일생산량, 배럴)였고 이란의 산유량 역시 384.8만 b/d로 거의 비슷했다 p.59”고 한다. 여기서 사우디는 계속해서 물량을 늘려나갔고, 이란은 감산을 통해(=공급을 줄여) 유가를 끌어올려 산유국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상반된 길을 걷게 된다. 결국 1978년 이란은 이슬람혁명이 이루어졌고, 더 거센 감산정책의 영향으로 1981년에는 149.7만 b/d까지 급락하게 되었다. 이때 사우디의 일생산량은 무려 1,026만 b/d에 이르렀다. 이후 사우디와 이란의 산유국 지위의 격차 및 국가경제 발전과정은 굳이 후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사우디의 나이미 석유 장권은 2014년 MEES라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가격이 얼마가 됐든 간에 OPEC은 감산을 하지 않을 것이다. 20달러, 40달러, 50달러, 60달러... 얼마든 상관없다. p.63” 증산 및 저유가라는 두 가지 무기로 상대를 무너뜨리며 시장점유율을 증가시켜온 것은 일백 년 전 석유왕 록펠러의 방법이었고, 사십여 년 전 석유황제 야마니가 택한 방법이었다. 책은 작금의 저유가 상황에 계속해서 감산을 하지 않는 이유도 그런 선상에서 해석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유가의 방향성을 읽기 위해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할 부분은 그 당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큰손’의 의도이다. p.65”



그리고 이제 7 공주파와 신 7 공주파를 이야기한다. 네이밍 자체가 딱히 맘에 들지는 않지만, 외신에서도 seven sisters라 하니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이어가자면, 여기서 말하는 7 공주 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석유 메이저 그룹들이다. 즉, 스탠더드 오일 뉴저지(엑손)와 뉴욕(모빌)이 합병하여 만들어진 ‘엑손모빌’. 그리고 영국의 BP와 스탠더드 오일 인디애나(아모코)와 스탠더드 오일 애틀랜타+리치필드(아르코)가 합병되어 만들어진 ‘BP’. 스탠더드 오일 캘리포니아와 텍사코, 걸프 오일이 합병되어 만들어진 ‘쉐브론’. 영국계 네덜란드 석유회사 로열 더치 쉘, 그리고 프랑스 계열의 토탈이 그 7 공주 파라 불리는 석유 메이저 사다. 스탠더드, 스탠더드 계속 이어지니 약간 피로감이 올 것이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스탠더드 오일이 바로 일백 년 전 석유왕 록펠러의 회사였다. 반트러스트 법에 의해 지역별로 해체되기 전까지 시장의 90%가량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던 기업.



여기까지만 읽고, 역시 석유의 시장은 소수의 몇몇 독점 회사들에 의해 움직이는 더러운 산업이야 라고 치부하면 조금 곤란하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이 시장에는 존재한다. 그래서 설명할 회사들은 2007년부터 FT에 의해 신 7 공주파로 불린 신흥 회사들이다. 신 7 공주 파라 불리는 회사들은 다음과 같다.
1. 사우디 아람코 (사우디 최대 국영 석유회사)
2. 가즈프롬 (러시아 국영 에너지회사)
3. CNPC (중국 국영 석유회사)
4. NIOC (이란 국역 석유회사)
5. PDVSA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6. 페트로브라스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7. 페트로나스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회사)
당시 FT 기사에 따르면 전통의 7 공주파가 세계 석유생산에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인 반면, 상기 언급된 신 7 공주 파는 33%가 넘는다고 한다. 이 외에도 중국의 시노펙, CNOOC, 러시아의 루크오일과 로스 테프트, 멕시코의 페멕스, 태국의 PTT 등 세계엔 다양한 석유회사들이 존재한다. 어느 특정 세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단언하기엔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전자의 7 공주파와 후자의 신 7 공주 파는 회사의 재무구조에서 약간 차이가 발생한다. 7 공주니 신 7 공주니 라고 계속 부르면 사우디 아람코나 중국의 CNPC까지 포함되어 다소 애매하니 여기선 그냥 기존 석유 메이저와 신흥국 국영 석유회사로 구분을 해보고자 한다. 신흥국 국영 석유회사는 사실 2000년대 중반 이후 고유가 현상에 의해 규모를 급속도로 키워온 회사들이다. 이들 회사의 매출액이 자국 GDP에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했다. “2014년 기준으로 (중략)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가 32.3%, 베네수엘라의 PDVSA가 26%, 태국의 PTT가 23.9%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전자가 16%, 현대차가 6.1%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수치들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알 수 있다. p.85” 이런 상황에서 2014년 하반기에 유가는 급락했다. 이들 신흥국 국영 석유회사들은 고유가 시장이 형성되자, 부채를 통한 CAPEX(Capital expenditures, 미래 이윤 창출을 위해 지출된 비용, 투자) 확장에 열을 올렸다. 계속된 고유가에 의한 꾸준한 매출이 이루어진다면 선순환이 가능하겠지만, 갑자기 1/2~1/3 가량으로 폭락한 유가, 그리고 줄어든 수요는 이 선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렸다. 버블이 붕괴되니 악몽은 시작되었다.



일례로 브라질의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는 높아진 순차입금 규모, 그리고 낮아진 매출 규모로 국제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패 스캔들이 발생하여 현재 그 존폐위기에 처해 있다. 물론 그 부패 스캔들이 저유가의 상황과 아주 연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성장을 하다가 제동이 걸리면 그간 덮어뒀던 문제들이 슬금슬금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에너지 회사가 휘청거리면 해당 기업의 프로젝트를 시공하는 건설업체의 부도도 필연적이다. 현재 브라질은 전방위적으로 저유가의 고통을 겪고 있다. 문득 2014년쯤 브라질 쪽 건설회사와 협업을 하던 기억이 난다. 상당히 똑똑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었는데, 지금은 연락 안 온 지 한참 되었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거시경제의 흐름에 따라 기업 혹은 개인의 생활에 타격을 받는 것은 언제나 고려해야 할 점이라 생각된다.



책은 그 이후로 석유에서 가스로 넘어오는 시대적 변화, 중국판 탈석유 시대의 시작, 가스의 시대, 전기차로 발현될 패러다임의 전환 등을 언급한다. 그리고 저유가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한다. 한국의 수출비중을 보자면 반도체(10.9%)나 자동차(8.5%)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제품이 있었으니 석유와 석유화학제품이다. 이는 2014년 기준으로 17.4%인데, 이는 고유가 시대에는 매출액이 증가하고, 저유가 시대에는 반대의 경향을 보인다. 중화학 산업이 장기침체를 겪게 되면 기업들은 투자와 비용을 줄여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투자의 감소는 곧 연관산업인 조선, 기계, 철강, 건설 등의 산업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유가의 하락은 주유소 휘발유 요금이 낮아진다는 표면적인 이점이 있지만, 이게 장기화될 경우 한 집안의 가장의 실직이나 월급봉투의 얇아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책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오히려 통념과 다리 장기 시계열(1965-2014년)로 에너지 수요 성장률과 GDP 성장률을 같이 그려보면 사실상 똑같이 움직인다. 계산해보면 같은 기간 에너지 수요와 GDP 성장률과의 상관계수는 무려 0.87로 산출된다. 통산 0.5를 넘으면 상관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상관계수가 0.87이라면 거의 동일한 변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p.203”



저자들은 이러한 적확한 현실 파악, 그리고 발 빠른 대처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유가는 분명 우리 경제에 위기지만, 그 위기를 잘 분석하고 패러다임을 전환하며 새로운 산업을 육성한다면 분명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도 전달한다. 그 예로 석유화학 회사로 시작했다가 바이오나 IT 소재 기업으로 부상한 유럽이나 일본 기업의 예를 소개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바이오로 눈을 돌리고 있는 삼성그룹도 눈에 띄기는 한다. 컴퓨터 회사였지만 하드웨어는 매각한 IBM, 매킨토시를 만드는 회사였지만 현재는 휴대폰이 매출과 영업이익의 대부분인 애플, 생각해보면 부지불식간에 그 패러다임의 전환을 실시한 회사들도 주변에 꽤 많이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많은 회사들도 그렇게 틀의 전면적 변화를 실시해야 할 것인가.



요즘 내가 몸담고 있는 건설업의 경우엔 석유화학 부분을 정리하고, 엔지니어링 부분을 합병하거나 심지어 해외사업을 줄여나가려는 움직임이 조금 눈에 보인다. 현재 활황인 주택시장에 더 집중하여 부동산 개발이나 현재 돈 되는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게 의도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유가의 등락과 같이 건설업의 사이클도 확실히 발생은 할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 가격이 오른다 내린다 말은 많지만, 어쨌든 장기적으로 보자면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우상향 할 것이지만, 그 사이 인간의 심리 및 과잉공급 등에 따른 버블현상도 분명히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기는 꽤나 장기적(5-10년가량)으로 이어질 것이다. 비록 일시적 버블이라 할지라도, 부동산 경기가 하강하는 시점에선 PF사업이나 개발사업 등은 치명적 리스크로 다가올 수 있다. 지금 돈 된다고 언제나 돈 되는 건 아니다. 건강한 포트폴리오의 구성은 가정경제에도 중요하지만, 기업이나 국가경제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단지 ‘현재’에만 집중한다면, 다가오는 리스크의 파도에 잠길 수 있는 여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미래를 본다면, 기술의 축적을 생각한다면, 안정적 성장을 고려한다면, 비록 지금 어려움을 겪더라도 다운사이징이 아니라 아예 어느 한 부분을 없애나 간다는 것은 조금 위험한 선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본업을 제대로 피벗 시켜놓고 다각화를 나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과도한 성장을 지양할 것. 이게 우리가 백여 년 동안 사업을 영위해 온 메이저 석유회사들에게 배워야 할 점 아닌가 싶다. 그저 독점이라고 욕만 하기엔 급변하는 시장에서 그들이 보여온 실적은 벤치마킹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분산투자. 그리고 리스크 매니지먼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러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석유시장의 이해, 그리고 현대산업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끝.


오일의 공포, 손지우/이종헌 지음, 프리 이코노미 북스, 2015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맛의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