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Jan 21. 2017

일, 그리고 무형의 공포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어떠한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일이 많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그저 막연하게 나는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느끼기 쉬운데,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의 양과 진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늘어가는 스트레스를 저감 시킬 수 있다.



어느 사파리에 앉아 1박 2일 캠핑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모닥불 피워놓고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기 저 수풀 뒤에서 무언가가 푸석푸석거린다. 그리고 무언가 움직이는 동물이 느껴진다. 당연히 우리는 이럴 때 무형의 공포를 느끼게 되고 즉각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식은땀이 흐르고 솜털마저 바싹 서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 푸석푸석 거린 것이 표범과 같은 맹수가 아닌 토끼 한 마리라면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다.  



업무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상당히 많아 보이긴 하지만, 이것을 리스팅 하여 정리해 보고 예상시간을 기록해 보면 사실 그렇게 스트레스받아야 할만한 분량이 아니라 느껴질 수 있다. 만약 정말 정리해 보았는데 너무 많다. 그러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상급자에게 가서 나의 업무로드가 너무 걸려있으니, 추가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도 있고, 상급자가 가져가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급자가 혹여나 능력 있고 결정을 잘해 나가는 스타일이면 업역을 적당히 끊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설령 상급자와는 관련 없이, 내가 Decision making을 해아 한다면, 제한된 시간과 예산 안에서 목표치 혹은 완성도를 조금 낮추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일에 있어서 완벽함을 추구하고 싶기는 하지만, 정해진 Target date에 모두가 완벽한 성과품을 제시하기는 곤란한 측면이 있다. 이럴 땐 가정을 해가며 일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이때 가정한 사항들은 잘 기록해 두어, 훗날 누군가가 물어봤을 때 설명이 가능해야 하며 합리적이어야 할 것이다.



예전 군대 있을 때 보초근무에 나가기 전, 정말 천 원짜리 한 장 주고 나에게 냉동만두와 라면과 빵을 사 오라고 하는 고참이 있었다. 그런 고참은 군대니까 넘어갔지, 업무 하다 만났으면 제대로 한소리 해 주었을 것이다. 천 원짜리 한 장 주고 이것저것 사 오라고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제한된 시간과 예산 안에서 계속해서 높은 성과품과 수준을 요구하는 경영진이나 클라이언트는 문제가 있다. Tolerance, 즉 허용오차는 업무에서도 존재해야 한다. 그럴 땐 과감히 처음부터 안된다고 말을 해 주어야 한다. 이때 그냥 말로 안된다고 하면 그냥 딴지를 거는 것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나의 Work load listing, 그리고 잔여 스케줄, 투입 가능한 Resource의 양, 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설명 못하겠다고? 그럼 당신은 실제로 일이 많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무형의 공포에 휩싸이지 말자. 나는 그래서 매일 아침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을 나열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내가 느끼는 부담이 정말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그 부담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스스로 알아내기 위함이다. 무형의 공포를 유형으로 바꾸며 정말 내가 처해진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럴 수 있을 때, 나도 행복하고 주변 사람도 행복한 업무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기업은 정말 사람을 망가뜨리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