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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an 21. 2017

대기업은 정말 사람을 망가뜨리는가.

얼마 전 SNS를 통해 널리 퍼진 포스팅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https://www.vingle.net/posts/271544?msrc=facebook


일견 일리 있는 포스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다른 직장보다 좋은 이유는 몇 가지 존재한다.



첫 번째로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거나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경험을 하면서도 개인에게 부과되는 리스크는 그다지 크지 않다. 따라서 주니어로서는 생각보다 상당한 Track record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 같은 경우엔 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선진 외국회사들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대기업이 아닌 개인으로 이 회사와 일을 하려고 했다면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로 CV를 던져대야 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안정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 본문의 필자는 안정성 자체를 그다지 가치 있는 것으로 보진 않지만, 가정경제를 이끌어 가는 가장에게는 따박따박 정해진 월급이 들어오는 것은 상당한 메리트다. 아울러 금융권에서 비교적 대출도 잘 해주며 이율을 낮게 주는데, 이러한 안정적 현금흐름은 미래를 계획하기도 용이하다.



세 번째로 다양한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나는 어떠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부족한 경험을 보완하기 위해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해 본 선배들을 찾아간다. 건설 프로젝트라 하면 특정 공종의 생산성 및 리소스를 데이터 화한 것이 곧 경쟁력인데, 같은 회사 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에게 물심양면 거의 모든 자료를 내어주신다. 다른 나라 회사 사람들과 미팅을 할 때도, as per the specialist from my company라고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그들도 할 말이 없다.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말이라는데, 이쯤 되면 대화를 하는 주체는 내가 아닌 내 등 뒤에 있는 회사임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가치 있는 이유는, 정말로 기업의 그 안정성과 수동적인 행동 패턴, 부품의 일환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사회에서 도태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부장님은 그 대기업의 명함이 있을 때나 부장님이지 퇴직을 하는 동시에 그냥 동네 아저씨로 전락하게 된다.



예전에 나는 회사의 관리조직이나 기획업무 같은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그러한 오퍼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드는 생각은, 과연 그러한 일이 이 회사를 나가면 얼마나 가치 있는 경력이 될까 하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한국에서도 한 때 1등을 할 만큼 큰 회사이다. 세계적으로도 매출이 10조 원 넘는 건설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담 우리 회사에서 내가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경력은 무엇일까. 프로젝트 수행 혹은 견적 경험이다. 본사에서 아무리 내가 관리를 하던 예산을 편성하던 기획을 하던, 이런 건 솔직히 그저 이 회사를 다닐 때 가치 있는 일이지 회사를 퇴직하는 순간 그저 그런 경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0억 불 단위의 세계 최고 심도의 해저터널, 수 킬로미터의 사장교나 현수교, 수 킬로미터의 터널은 서유럽과 북미, 혹은 중국을 제외하고선 전 세계에서 수행한 경험이 그다지 없다.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도 사장교를 많이 지어본 적이 없고, 해저터널로 가자면 전 세계에서 침매터널을 지어본 나라가 극히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해외 프로젝트를 견적하고, 수행하면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 욕심이 든다. 외국의 다른 회사를 보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들도 왕성히 활동을 한다. 비록 그들 회사의 임원은 MBA를 나온 젊은 사람들이지만, 이 할아버지들은 수십 년의 전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견적을 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우리와 다른 점은 그 임원들은 이 할아버지 스페셜리스트들의 결정에 굳이 많은 토를 달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스펙트 하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대기업 다니는 어떤 과장이 아니라, 중동의 어느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고, 인도의 어느 프로젝트를 수주한 경험이 있으며, 세계 어디다 내어 놔도 스스로 견적하고 프로젝트 수행계획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 매번 모르는 노란 머리 아저씨들과 회의하며 얼굴이 빨개지며 논쟁을 하며 힘든 하루를 보내곤 있지만, 이러한 경험이 쌓여 결국엔 가치 있는 나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기업은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리는가. 나는 그 반대되는 예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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