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전혀 타인의 노력이 들어가 있지 않는다 생각하는 분들이 간혹 계시다. 전기도, 깨끗한 물도, 잘 닦인 도로도, 철도도, 공항도, 항구도, 휴대폰도 모두 거저 생긴 것인 줄 아는 분들.
인류는 끊임없는 기술의 진보로 현재의 위치까지 왔다. 그러한 기술의 가치를 폄하하면 앞으로의 미래도 어두울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선사시대로 가볼까.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 누군가 토기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동물들과 같이 하루 잡아 하루 먹는 시스템으로 살아, 사냥에 며칠 실패하면 다 같이 아사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치수를 하고 경작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면, 홍수가 나면 그간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불을 다루는 기술이 없었다면 육식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가축을 다루고 농기계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대량의 농작물의 소출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로 가자면 더욱더 진보되는데, 냉장고가 없었다면 인류는 음식을 현재와 같이 오랜 기간 보관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교역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농축산물의 보관과 교역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흉년엔 다 같이 배를 곪아가면 살았을 것이다. 지난 몇십 년간 흉년이라 하여 우리가 마트에서 쌀이나 과일을 구하지 못한 적이 있는가. 토목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엔 지리적으로 깊은 수심의 해안가만 위치할 수 있었던 항구는 현재 어느 곳이나 원한다면 바다 밑 땅을 파서 항구를 지을 수 있어 어느 곳이나 교역이 원활해지게 되었다. 의학의 발달로 인류의 수명은 연장되었고, 상하수도 기술의 발달로 수인성 전염병 등으로 대규모 사망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X-Ray, MRI 및 CT의 출현으로 인류는 보이지 않는 질병을 헤쳐나갈 수 있었으며, 탄소저감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도시에 스모그 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런던, 20세기 중반의 LA는 현재 베이징이나 뭄바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공기의 질이 좋지는 않았다.
여기에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로 현재는 제3세계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의무교육으로 어느 정도 세계 스탠더드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선진국들의 차관 및 원조로 인해 기아에서 해방하는 비율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리하여 전 세계적인 영아사망률;Infant Mortality Rate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미국 통계만 보더라도 1915년 1 천명당 100명이었던 영아사망률은 1995년 1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물론 이는 제3세계에선 현재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기술에 대한 막연한 반감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대기업에 대한 반감, 미국에 대한 반감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기술의 발전을 해왔고, 그것은 대다수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당장 여기 페이스북을 보는 분들이 고려시대 혹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현재보다 좋을 삶을 누리기란 로또 당첨확률과 비슷할 것이다. 물론 과도한 기술의 발달, 산업혁명 이래 다소 잘못되었던 기술에 대한 맹신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태껏 수많은 인류의 선배들이 닦아놓은 기술의 발전, 그것이 뭐가 중한데. 이런 식의 자세는 곤란하다. 적어도 자기가 누리고 있는 전기, 물, 병원, 상하수도같이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을 발명하고 발전시킨 분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