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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r 20. 2017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 벗어나려면

업무를 하다 보면 업무방식에 있어서 사람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자기가 가진 능력을 공유하려는 자와 공유하지 않으려는 자. 보통 자기가 가진 능력이 남의 것보다 특출 나게 뛰어나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것을 공유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가 가진 능력을 그다지 크게 평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배우려고자 하는 사람은 그것을 쉽게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엔 늘 남이 나보다 잘 하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배워보려고 하는 편이라, 내가 가진 9를 주더라도 1을 얻어올 수 있다면 대부분 오픈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1씩 아홉 번을 얻어오면 다시 내가 가진 능력이 18이 될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야 정해진 기간과 범위가 있기에 혼자만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급변하는 산업에 발을 담그면서 무언갈 혼자만 고민해서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꽤나 조심스러운 일이다.



예컨대 공정관리의 영역으로 보자면, 물론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도 어느 정도 간단한 공정관리 정도는 할 수 있다. 언젠가 엑셀 수식이 겁나게 복잡한 공정관리 파일을 만들어 놓고 쓰시는 분을 본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 조금 친해졌다 생각하셨는지, 나에게 이 귀한 걸 너에게 전수해주마. 하며 슬며시 파일 송부를 해 주시더라. 그분은 무려 십 년 전에(이 사건의 시점은 오 년 전이니, 15년 전이다) 이 귀한 파일을 스스로 개발하셨다고, 열심을 다해 자랑하시더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물론 15년 전에는 정말 자랑스러운 파일일 수 있었겠지. 게다가 혼자 고심해서 이 정도 복잡한 파일을 만들 수 있을 정도면 수학 실력도 상당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간 이미 MS나 오라클에서는 공정관리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 상용화시킨 지 오래며, 오라클의 프리마베라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그분이 만든 엑셀 공정관리 파일보다 백배 천배 이상으로 효율적인 공정관리를 할 수 있다. 각 공종별 Relation도 잘 잡아주어 선후행 공종도 확실히 알 수 있고, Critical path도 알아서 그려준다. 게다가 FF나 TF도 눈에 보여, 어떤 공종을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하는지 확인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지 않으셨다. 그냥 MS 프로젝트로 만드시면 돼요. 프리마베라로 하시면 돼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지 않으시다, 언젠가 내가 주관한 공정회의에 들어오셔서 눈이 살짝 떠지셨다. 오. 이봐 자네, 내 컴퓨터에 그 프리마란지 뭔지 좀 한번 깔아줘 봐봐.



세상엔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대부분 프로그램화되어 출시된 것들이 상당수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프로그램의 존재를 모른다면, 넘을 수 없는 벽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이는 신석기 문명이 청동기를 이길 수 없고, 청동기 문명이 철기를 이길 수 없는 것과 유사한 형태다. 그런데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라고, 무언가 내어주지 않고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에겐 쉽게 그 빗장이 열리지 않는다. 신식 문물을 전수받기 위해선 먼저 내가 가진 패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쉽게 내어주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도 일 년 오 년이 지나면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리고 세상에 나만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세돌급 천재가 아니라면 말이다. 당연히 이 글을 읽는 나도 당신도 천재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른 회사와 협업하는 것을 즐겨한다. 뭐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국가의 회사와 협업을 하다 보면 무언가 배울 점 한두 가지 정도는 어떻게든 발견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다른 회사 직원의 그 현란한 공정관리 기술을 보며 무릎을 탁! 쳤다. 역시 세상엔 무지막지하게 뛰어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구나 하고. 어깨너머로 사이어인 능력 빨아들이듯이 열심히 배웠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는 내가 또 일장 연설을 해가며, 화이트보드에 마커펜 날려가며 열강을 해 주었다. 공부는 모르겠지만, 산업에 있어서는 분명 윈윈관계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다.



우물 안에 고여봤자 개구리밖에 되질 않는다. 혼자서 끙끙 고민만 할 시간에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 다른 회사는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지켜봤으면 좋겠다. 분명 잘 지켜보다 보면, 배울 점 한두 가지는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두 가지가 모여 나중엔 나의 열두 가지의 능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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