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Apr 04. 2017

홍콩 기행

꽤나 장문의 홍콩 기행문

프롤로그


신혼여행 이후 처음인 아내와의 단둘이 여행. 봄방학을 틈 타,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봐주신다 하여 급작스레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아내가 이제 곧 복직을 하는 바람에, 앞으로 딱히 시간을 맞추어 외국으로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 일단 행선지는 한국이 아닌 외국으로 잡았다. 처음엔 일본 북해도부터 시작하여, 미국 뉴욕, 오스트리아, 등등 다양한 나라를 상상 속에서 경험하다가 결국 손에 잡히게 된 홍콩. 여행의 목적은 각기 상이하겠지만, 식도락과 쉬어가기가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아마도 가까운 이 동네보다 괜찮은 곳은 없지 않나 싶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매번 출장 갈 때마다 가는 인천대교 길이지만, 이번만큼 훈훈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출장을 가거나 해외현장에 갈 때, 인천대교를 건너면 항상 가족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이번 길은 무언가 데이트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두근거림마저 갖게 만들었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는 에어버스 A321 기종이었다. 동체 길이가 44.5미터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조그만 비행기였는데, 이는 애초에 70년대 유류파동 이후 에어버스 사에서 연료 소비를 최소화할 요량으로 만든 에어버스 A320 시리즈의 일종이라 들었다. 인천-홍콩의 4시간 남짓, 약 2천 킬로미터가 조금 넘게 걸리는 비행에 있어서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홍콩섬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데


홍콩입국


홍콩 공항에 도착하니 이제 조금 여행이 시작하는 기분이 들더라. 홍콩은 크게 홍콩 섬과 공항이 있는 Lantau섬, 그리고 구룡반도를 포함한 중국 대륙에서 뻗어 나온 반도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8년에 개항한 첵랍콕공항에서 홍콩의 도심인 센트럴까지는 Airport Express라는 기차를 통해 24분가량 걸린다. 티켓은 공항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 홍콩은 옥토퍼스 카드라는 일종의 티머니를 만들어 관광하거나 생활하기에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더라. 옥토퍼스 카드는 티머니보다 조금 더 확장된 개념인데, 교통수단은 물론 식당에서 식사하고 결재할 수도 있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괜찮아 우리도 도입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대부분 서울의 음식점에서 신용카드를 받아주는데, 굳이 한국에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다시 퍼뜩 들었다.



자정이 넘어 도착하는 바람에, 우리는 일단 잠을 청했고, 홍콩의 밤거리는 내일을 위해 남겨두었다. 첫날 우리의 목표는 홍콩 섬, 그러니까 그 핫하다는 란콰이퐁 지역과 소호지역을 비롯한 센트럴 지역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홍콩의 많은 명소를 가기보다는 홍콩이라는 도시를 느끼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게 금번 여행의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고 일어나 산책 삼아 란콰이퐁을 둘러보니 과연 이 도시는 정말 말 그대로 빌딩 숲의 도시더라. 용적률을 가늠하기 어려운(대충 봐도 1,000%는 되어 보이는) 고층빌딩들이 숲을 이루는데, 도로는 거의 1.5차선, 보행자 통로는 두 사람이 겨우 왕래할 수준으로 좁았다. 처음에 IFC몰과 같이 조금은 신시가지 느낌도 받았지만, 조금 남쪽으로 들어가 보니, 과거 중경삼림이나 영웅본색에서 보이던 그 과밀하면서도 인간미 나는 건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극악의 홍콩 용적률 및 건폐율을 보여주는 사진. 그래도 사람사는 냄새가 나서 훈훈하다.



금강산도 식후경. 우리는 먼저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Tsui wah라는 음식점에 가서 소고기 몇 점이 얹어진 라면과 Fish balls soup을 먹었다. 라면의 경우엔 생각보다 인공적인 맛에 조금은 실망했지만, 부드러운 소고기와 Fish balls soup의 풍부한 국물 맛은 꽤 만족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울러 아침메뉴라 같이 나온 밀크티의 경우는 영국식의 Earl gray나 English breakfast와는 다소 상이한(조금은 더 진한 맛이 느껴지는) 홍콩 스타일의 밀크티였는데, 개인적으론 괜찮은 맛이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그 후 우리는 홍콩에는 명물이라 할 수 있는 세계 최장 에스컬레이터인 Mid-levels escalator를 타러 갔는데, 이는 총 800m에 이르는 길이, 높이로 따지자면 135m의 엄청난 규모의 구조물이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홍콩, 그중에서도 센트럴은 정말 구조물의 도시라 할 수 있다. 워낙 도시가 과밀하다 보니 앞서 언급한 대로 보행자 통로를 놓을 공간도 부족해서, 홍콩시는 고가교를 많이 만들어서 보행자와 차량의 통행을 분리시켜 놓았다. 게다가 센트럴의 경우엔,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고도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하는데, 대부분 블로그에서 언급되는 ‘마의 계단’이 그것이다. 미드레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보이는 끊임없는 주택가(중경삼림의 양조위가 거주하던 주택, 그런 느낌이다)와 음식점들을 보며, 사람이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함을 느꼈다. 아울러 이 에스컬레이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초를 만드는 콘크리트 구조물, 아울러 콘크리트 기둥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구조물. 구조물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도시가 홍콩이다. 게다가 홍콩에는 이층 버스, 이층 트램이 있어서 고가도로의 경우에도 보통 4-5m 수준의 Clearance가 아닌 7-8m 수준의 상당한 높이를 보인다. 구조공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기둥에 있어서 한계 세장비와 좌굴, 그리고 안전율을 고려할 시, 높이가 커진다면 투입되는 재료의 양도 높이의 차이보다 훨씬 많아지게 된다. 조금은 너무 과밀한 곳에 다 같이 살려고 하다 보니 과도하게 사회적 비용이 더 투입되지 않았난 하는 생각이 들더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니, 이제 고급 멘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세계 최고의 극악이라 할 수 있는, 홍콩의 진정한 부동산 가격을 볼 수 있나 싶어 근처 부동산을 기웃거려봤다. 사진으로 올리지만, 대략 이 동네 방 3개짜리 아파트(멘션)의 가격은 홍콩달러로 $30M가량 했다. 물론 방 4개짜리로 가자면 $63M도 보인다. 현재 환율로 보자면 $30M면 대략 44억 원가량 한다. 방 4개짜리는 그럼 93억 원 정도. 방 4개짜리 삼성동 아이파크 158m 2가 대략 22억 원이니, 강남과 비교를 해봐도 홍콩의 집값은 우주 최강 수준으로 보인다. 항상 국제 부동산 가격을 비교할 때,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예외로 여겨지는 이유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것 참 당황스럽더이다


홍콩의 거리를 걷다 보니, 생각보다 대기오염은 그리 심각한 수준으로 보이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간혹 홍콩의 대기오염 수준은 심각하여 외출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들었는데, 가시거리 측면에서 보자면 적어도 서울보다는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대기오염이 심각해도 금방 휘휘 쓸어가는 대류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 내, 높은 건폐율로 인한 건물 주변의 위생관리상태는 서울보다 조금 취약해 보였다. 홍콩은 영웅본색 초반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씹으며 걸어가는 씬에서 보여주는 강렬한 햇살 아래 매끈한 건물 숲과, 중경삼림 초반 임청하가 노란 머리를 휘날리며 걸어가는 씬에서 보여주는 어두컴컴하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래된 건물들이 공존한, 그런 이중적인 도시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런 이중적인 단면은 비단 홍콩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 유수의 메트로폴리탄 시티에서 보이는 면모이지만, 과밀화된 도시다 보니 그러한 부분이 더욱더 눈에 띄게 느껴졌다.



나의 사랑 에그타르트


에그타르트♡


첫날의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에그타르트이다. 마카오에서 시작되었다, 홍콩에서 시작되었다, 의견이 분분한 이 에그타르트는 여하튼 홍콩의 명물인데, 직접 길거리에서 그 맛을 보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기만 해도 육중한 칼로리의 압박이 거세 보이는데, 여행이라 많이 걸으니 괜찮지 않나 싶어 하나 먹고 두어 개를 더 집어 먹었다. 슈크림빵을 연상시키는 작고도 아담한 이 빵은, 적당히 구워진 타르트지 안쪽으로 계란 노른자로 구성된 에그타르트 필링이 넣어져 만들어진 과자이다. 바삭바삭한 식감에 버터 향기 가득한 타르트지와 고소한 계란 노른자의 조합은 생각보다 환상의 조합을 느끼게 해 주었다. 종종 노른자보다 흰자의 비율이 가미된 곳도 있었는데, 나는 노른자보다 흰자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것이 더 내 취향에는 맞았다. 한국에서도 종종 먹어본 적은 있지만, 갓 조리되어 따뜻한 상태를 유지시켜서 그런지 조금은 그 맛의 수준이 높아 보였다. 물론 이는 홈그라운드 이점일 수도, 여행의 들뜬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여하튼 앞으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많이 먹을 이 에그타르트는 대부분 1천 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기에 더욱 더 행복할 뿐이다. 밀크티와 에그타르트, 이것만으로 홍콩의 하루는 일단 합격이다.



Shugetus에서 먹은 쿠로부타동. 미슐랭 가이드에 3년 연속 소개된 맛집이라고. 밥은 훌륭한데 맥주 맛이 조금 아쉬웠다.




구룡반도


80년대 이전에 태어난 분들은 아마도 홍콩 하면 떠오르는 주제가가 한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영웅본색의 주제곡 중의 하나인 당년정(當年情)이다. 스산한 하모니카 소리로 오프닝을 시작하고, 장국영의 슬픈 눈망울이 연상케 되는 도입부. 영화를 지금 다시 봐도 홍콩의 비극적인 시대와 어우러진 스토리의 전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든다. 80년대만 하더라도 홍콩의 삼합회는 상당한 수준의 조직력을 발휘했고, 90년대 중반까지도 아시아위크에서 아시아를 움직이는 50대 인물을 발표하면, 삼합회의 용두;龍頭(두목을 뜻하는 홍콩식 용어) 신의안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어제는 그렇게, 예전 홍콩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구룡반도에 가 보았다.


구룡반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고급맨션 병풍촌


솔직히 구룡반도, 그러니까 현지어로는 九龍을 뜻하는 카오룽(Kowloon) 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조금은 깜짝 놀랐다. 63 빌딩 높이의 약 두배 가량 되는 ICC; International Commerce Centre는 그렇다 치고, 둘러싸인 대략 60-70층 정도 되어 보이는 The Waterfront나 The Arch와 같은 고급 맨션들의 위엄이 어마어마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전 악명이 높았던 구룡성채(九龍城寨)의 느낌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1990년 철거 직전 구룡성채 사진 (출처: 위키백과)


아울러 문득 항구 주변에 이런 고층아파트들을 보고 있노라니, 얼마 전 서울시에서 한강변 아파트의 35층 논쟁이 떠올랐다. 홍콩의 구룡반도 고층건물 단지를 바탕으로 더듬어 보자면, 그 밀집한 홍콩에서 이렇게 탁 트이고 쾌적하다 느껴본 곳은 얼마 없었다. 이는 낮은 건폐율과 높은 용적률로 만들어진 혜택이 아닌가 싶었다. 아울러 아파트 가격을 좀 검색해 보니 100m2 면적 수준의 맨션이 대략 25억 원 수준으로 보이던데, 이쯤 되면 홍콤섬 산자락에 있는 아파트들보다는 조금 더 쾌적하며 저렴한(?)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역시 인구가 과밀한 도시에서 쾌적하고 적정 수준의 주택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도제한을 풀고 용적률을 올리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꼭 맞다고 볼 수는 없다. 나는 처음에 멋모르고 카오룽 역에서 나와 길을 걸었는데, 여기선 사방이 Private area라 어딜 딱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앞서 언급한 The Waterfront와 같은 맨션 단지를 통해 밖으로 나가자고 해도, 경비원이 길을 가로막고 가지 못하게 했다. 사유지라는 특성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길 자체를 막아버리는 건 무슨 경운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아무래도 한강변에 고층아파트 단지가 활성화되면, 여기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있겠다 싶었다. 아울러 병풍처럼 존재하는 마천루들을 보며 경이감도 들었지만, 구룡반도에서 바라보는 홍콩 섬의 전경, 항구에 대한 조망을 완전히 덮어버리는데, 이쯤 되니 강변의 아파트는 그냥 병풍형 아파트가 아닌, 타워형으로 지으라는 강제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홍콩의 부동산


홍콩의 부동산 잡상을 조금 더 이어가 보자면, 나는 버스를 타고 구룡반도 동쪽 끝자락에 있는 Lam Tin 버스터미널 종점까지 가봤다. 구룡반도 침사추이란 곳은 얼핏 둘러보니 그냥 서울의 명동 같은 거리로 보여 애초에 관심이 그다지 없어, 홍콩 사람들이 사는 곳을 한번 둘러볼 요량으로, 그리고 이층 버스 꼭대기에 타서 도시를 둘러볼 요량으로 갔다. 서울로 따지자면 중랑차고지 정도 되어 보이는데, 과연 가보니 외국인은 그다지 없고 노인분들과 아이들이 가득하더라. 진기한 풍경 중의 하나는, 거기도 30-40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맨션이 즐비했는데, 홍콩 섬이나 구룡반도 끝자락에 보이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고, 지극히 서민적인 분위기였다. 사진으로 올리겠지만, 집이 작아서인지 사람들은 빨래를 베란다 밖으로 특이한 형태의 빨래 거리로 내어 걸어 놓은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여하튼 이 곳은 조금은 슬럼화 되어 보였다. 이 아파트는 한국의 1기 신도시와 나이가 비슷한 1993년생이었는데, 최고 76층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높이로 인해, 그리고 20평 이하의 적은 평수로 인해 일곱 동인데도 불구하고 무려 2,410세대에 이른다. (자료 참고: Hong Kong Housing Authority) 이 동네 역시 산을 깎아서 만든 탓인지 구조물의 향연으로, 아파트와 상가, 스포츠센터 등을 넘어가려면 구름다리는 물론 엘리베이터까지 타고 다녀야 한다. 여하튼 이 낡은 아파트의 현재 가격은 14평 기준 약 6억 원가량했다. (출처: www.squarefoot.com.hk) 홍콩 섬도 아닌 구룡반도에서도 버스종점까지 가서 14평짜리 아파트가 6억 원 정도 한다니. 홍콩의 살인적인 집값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서 곡예에 가까운 빨래 널 이를 하며 살아가는 서민 분들이 나보다 훨씬 더 부자인 자산가였다니 하는 자괴감도 살짝 들었다.


구룡반도 동쪽 끝자락 버스종점에 위치한 아파트. 홍콩의 서민적으로 보이는 아파트들은 대부분 창문밖으로 빨래를 널어놓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딤섬스퀘어, 그리고 와규


딱딱한 부동산 이야긴 여기까지 하고, 이제 본격적인 식도락 이야기를 풀어가자면. 딤섬스퀘어를 홍콩에 거주 중이신 분께서 팁을 주셔서 가 보았는데, 과연 이 맛의 향연은 홍콩에 온 보람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다. 오전 열한 시부터 길게 늘어선 줄은 이 식당의 퀄리티를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들었다. 순환율이 높아 금세 줄은 줄어들었고, 우리는 두 명이라 앞에 있던 다섯 명 일행보다 먼저 들어가는 행운을 누렸다. 헌데 막상 들어가 보니 어느 홍콩 할머니(?) 두 분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려면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는 게 서로를 위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음식의 맛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갓 튀긴 스프링롤을 감싼 라이스페이퍼의 부드러움, 그리고 그 안의 돼지고기와 새우의 오묘한 조합. 실로 이렇게 긴 줄이 선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Pork and Shrimp dumpling과 몇 가지 음식의 조합은, 정말 가성비를 떠나(가성비를 포함하면 단연!) 만족스러운 홍콩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딤섬스퀘어. 가성비 정말정말 쵝오였던 다시 방문해보고픈 센트럴의 맛집! 관우운장을 모셔놓고 향을 피워놓은 주인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음.


저녁엔 쿠로게와규를 먹었는데, 홍콩에 꽤나 유명하다는 일본 음식점은 대부분 일본에서 직영하는 체제로 운영되어 그런지 맛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와규를 그리 많이 먹어보진 않았지만, 적당히 얇고 마블링이 가미된 갈빗살이나 등심은 앞뒤로 5초씩 구워 먹으면 딱 입에서 살살 녹기 좋았다. 그 5초 사이에 사진을 찍기 어려워 이건 애피타이저로 준 와규 초밥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본디 일본 북해도로 여행 가려고 했던 것은, 북해도 푸른 초장에서 뛰어노는 북해도식 소고기 및 양고기를 맛보고 싶음이었다. 물로 그만큼의 독특한 맛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나름 괜찮은 수준의 고기 맛을 즐긴 기억이다.



와규초밥. 그것은 지갑을 탈탈 털게만드는 아픈 기억의 전주곡이었음을. 오른쪽 옆에 살포시 그 자태를 드러내는 따뜻한 사케의 모습도 엿보임.


에필로그


홍콩에서의 마지막 날은 일요일이라 현지 Community church 다녀오고, 짐을 정리하느라 딱히 느낀 일도 없어 그간의 인상 깊었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홍콩 섬 센트럴의 어느 한 장면인데, 나른한 일요일 오전 이층 트램 위에서 바라본 시각이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노래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이었다. 그만큼 내 머릿속 중경삼림의 기억은 홍콩과 어느 정도 등치 된 수준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듯하다. 복잡한 홍콩 거리에서 노란 머리 마약 밀매상 임창하의 숨 막히게 빠른 움직임, 그리고 그녀를 따라가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느린 카메라 워크. 옛 애인이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앉은자리에서 몇십 통 까먹는, 그리고 그 사랑의 유통기한을 찾아 떠나는 고독한 금성무. 옛사랑을 무생물과의 대화를 통해 서서히 디졸브 시키며, 천천히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양조위. 그 만의 독특한 색깔로 자유로운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는 왕페이. 이 모든 캐릭터들이 옴니버스식으로 '나'라는 하나의 인격체 안에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 어린 시절, 영화와 함께 나의 성장기를 같이 하며, 감수성과 남성성(?)을 키워준 홍콩에 감사하며.


THE END




매거진의 이전글 연남동 산책-달빛부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