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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y 06. 2017

토건예산이라는 것에 대해

스무 살이 되어 도시공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에 왔고, 군대를 다녀온 후 토목공학으로 전공을 전향한 후 여태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이제 어언 이십 년가량을 이 바닥에서 지내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업계나 나름의 고충은 있겠지만, 건설업 같은 경우는 특히나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 종종 어려움을 겪곤 한다. 부천에서 지하철 공사를 할 때는 직접 민원인을 상대하기도 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민원대응이란 생각이 들더라.


여하튼 그런 미시적인 고민은 일단 접어두고, 거시적으로 보자면. 그전부터 그러했지만, MB의 사대강 사업 이후로 사람들은 더욱더 토건 예산하면 응당 쓸데없는 예산이란 인식이 강해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가지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예컨대 어떤 서울대 나온 사람은 그깟 대학 졸업장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며, 간혹 서울에서 5억 원짜리 전세를 사는 사람조차 종종 자신을 서민이라 지칭하며 나라가 자신에게 해준 게 무어냐고 항변한다. 뭐 잘생기거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도 종종 그것이 연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망언을 하는데, 이 모든 게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망각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울을 보자. 지하철 1호선부터 시작하여 9호선까지 정말 덕지덕지 지하철이 거미줄같이 연결되어 있다. 이도 모자라 우이신설 경전철과 같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매번 땅을 파고, 돈을 들이고, 시민들은 힘들고, 쓸데없는 예산은 낭비된다고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 지하철이라는 것도, 만약 없다고 가정하면 서울은 어떠한 모습을 가지게 될까. 첨부의 사진은 베트남 하노이의 사진이다. 베트남에 가면 누구나 그렇지만, 그 장대한 오토바이 행렬에 깜짝 놀라게 된다. 이 곳에서는 길을 건너는 일도 상당한 집중을 요하는 일이다. 베트남 교통부(MoT)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의 오토바이 숫자는 2012년 기준 35,240,162 대라고 한다. 그러니까 5년이 지난 현재는 아마도 4천만 대가 넘을 것이다.


인구가 남한의 대략 2배가 조금 안 되는 베트남에서 남한 인구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의 오토바이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로 인한 공기오염 수준도 무시하기 어렵다. Real time air quality (https://waqi.info)라는 사이트를 통해 현재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해 보면 서울은 100 AQI(Air Quality Indexes) 정도를 보이는 반면, 하노이는 대략 150 AQI를 나타낸다. 그 공기 나쁘다는 서울도 개발도상국들의 수도와 비교하자면 그리 나쁜 수준은 아니다. 물론 서유럽 선진국의 도시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수준으로 나쁘긴 하다.


그런데 만약, 서울에 현재와 같은 지하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지하철 2호선의 경우는 1976년 구자춘 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부터 계획되어 1980년부터 개통을 시작했다. 이 때는 1인당 국민소득은 1천 불은커녕 500불도 되지 않았을 때이다. 현재 베트남의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이 대략 3,500불가량 하니, 당시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그 얼마나 리스키하고도 주제넘은 사업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시드니 같은 대도시도 이제야 지하철 첫 삽을 뜨고 있다. 그러니까 경전철이나 지상의 트레인 수준이 아니라 Rapid transit system의 수준의 지하철로 보자면 말이다. 그런데 시드니와 같은 대도시는 용지보상이나 민원 문제가 심각하게 야기되어 모든 지하철 노선을 지하 깊은 곳에서 TBM이란 기계로 굴착을 하며, 도심지인 CBD의 경우엔 지하철 역사도 건물 밑에서 개착이 아닌 지하 공법으로 만든다. 비용이 상당히 많이 소요된다는 말이다. 싱가포르는 현재 거의 국토 전체를 지하철 공사하고 있다. 여기서 싱가포르와 하노이라는 도시의 퀄리티는 차이 나기 시작한다.


이처럼 도로나 지하철과 같은 인프라는 생각보다 그 중요성은 평소 체감하지 못하지만,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이제 그럼 한국의 경우는 다 만들었으니 더 이상 추가 인프라는 필요 없겠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콘크리트 구조물에도 수명은 있는 것이며, 노후화된 구조물을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도시는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상하수도 같은 경우엔 현재 전 세계 거의 모든 대도시의 문제이기도 한데, 현대문명이 발달하며 대부분 도시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50년 전 100년 전 만들어 놓은 지하망에도 과부하가 걸리며 싱크홀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런던시의 경우만 보더라도, 8조 원가량 예산이 드는 슈퍼 하수도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자연은 물론 유지하고 보존해야 한다. 하지만 도시와 같이 많은 인간이 한데 모여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다소 수정을 해야 한다. 그 수정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리모델링이 필요하듯이, 도시도 꾸준한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리모델링에는 예산이 필요하다. 당장 그 중요성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고, 그저 나몰라라 한다면 성수대교 참사나 싱크홀은 언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다.


부정부패로 세상 모든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부정부패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세상에는 다른 '자연스러운'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이게 바라보지 말고, 조금은 더 디테일하게 따져봤으면 좋겠다. 


보도블록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하여, 그게 다 지자체 예산 낭비는 아닐 것이다. 기존 보도블록이 노후화되어, 아마도 하이힐을 신은 여성분들이나 유모차를 끄는 아빠들이 수없이 구청에 민원제기를 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어떤 아이는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자빠져 다쳤을 수도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신도시는 굴착이나 성토를 한지 십 년 이십 년밖에 되지 않은 지반이라, 보도블록을 깐 후에 어느 정도의 침하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보도블록 밑에 지반보강을 하거나 수십 미터 콘크리트 파일을 박아 주면 마찰력으로 지지한다면 침하가 몇 mm도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보도블록 1km 까는데 수백억 원의 예산이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세상에 다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다 이쪽저쪽 따지고 예산을 편성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쓰이는 예산도 있을 수 있고, 필요 없어 보이지만 꼭 필요한 예산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토건예산은 없애고 복지예산만 늘리라는 이야기. 이런 말은 조금 조심해야 할 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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