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의 10억 원짜리 건물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이 건물에 입주해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사업체에서 근로하는 직원이 있다. 언뜻 보기엔 인생의 행복이란 게 건물주> 사장님> 직원 순으로 갑을병이 이어질 것 같은데, 과연 언제나 그러한 등식은 성립할까?
먼저 건물주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이 건물주는 자산을 10억 원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그 10억 원 중 부채가 얼마인지 각기 다르다. 정말 1% 미만 대의 부자가 아닌 이상에야 이 정도 금액의 건물이면 대출을 끼고 사곤 하는데, 여기서 매월 부담해야 하는 원리금으로 인해 건물주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대략 건물을 담보 잡고 3억 원을 20년 상환 연리 4%에 원리금 균등상환으로 빌렸다고 가정하면, 매월 약 180만 원가량이 발생한다. 여기에 임차인을 구하려면 부동산 중개료가 들어간다. 아울러 건물에 대한 관리비용도 들어가게 되는데, 상하수도 및 소방시설, 전기기계 문제 등이 발생하면 건물주의 책임으로 수리해야 한다.
아울러 건물의 감가상각 및 내용연수를 고려하면 매년 1-2% 정도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임차인이 매번 100% 입주하면 상관없지만, 공실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해당 사무실의 보증금 및 관리비용은 건물주가 부담해야 한다.
그것뿐인가. 반기별로 건물의 재산세도 납부해야 하며, 임대소득에 대한 부가가치세 및 임대소득세도 납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임대료를 제 때 납부하는 것도 아니다. 임대료를 정상적으로 납부하지 않으면 세입자와 갈등이 시작되는데, 이게 심해지면 명도소송을 통해 내보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나의 장인어른께서 한 때 동네의 4층짜리 건물을 소유했을 때가 있었는데, 이야길 들어보니 4층에 세입해 있는 어느 가난한 모녀가 보증금을 초과하면서까지 월세를 내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30만 원 60만 원가량 연체를 하시다가, 이게 일 년이 넘고 이년이 넘어가니 1천만 원가량되었는데, 매번 미안하다, 곧 갚겠다 하는데 딱히 어떻게 할 재간이 없으셨단다.
얼굴을 모르고 산 사람도 아니고, 같은 동네에 거주하니 명도소송을 하여 쫓아낼 수도 없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착한 사람이 건물주를 했다가는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겠구나. (참고로 나의 장인어른은 현재 건물주가 아니시다 ㅠ 건물을 유지하는 일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하튼 그렇게 건물주라 하더라도 인생을 아주 편하게 살면서 리스크 없이 월세를 따박따박 받는 건 아니다. 서울의 유수한 몇십층짜리 건물주는 다르겠지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1백억 원이 넘어가는 건물은 대게 부동산펀드나 리츠가 가지고 있다. 일반 자산가가 가지고 있는 보통의 동네 4-5층짜리 건물은 그렇게 노다지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건물 가격이 오르면 이득이란 말을 할 수 있겠는데, 건물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일은 신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그러한 가격 상승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당신도 지금 오만 대출을 일으켜서 어서 구입을 하셔야 한다. 직장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고, 건물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일으키는 레버리지를 이용하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건물주가 될 수 있다.
경인지역 4층짜리 건물은 대략 7-8억 원에도 매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 보증금을 고려하면 더 낮은 자본금과 대출금으로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딱히 그렇게 하지 않는다. 빌딩의 투자수익률이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오피스 투자수익률은 1.5%에 불과하다고 한다. 임대료와 빌딩값 상승에 따른 수익을 합친 것이다. 참고로 서울지역 전체 공실률은 10.2%에 달하는데, 공실이 발생하면 당연히 투자수익률은 떨어질 것이다. 외환위기라도 닥치면 공실률은 20%대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업주는 어떠할까. 그래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한다고 해보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증금과 권리금을 포함한 초기 비용이 발생한다. 아울러 인테리어 비용도 수천만 원은 들어갈 것이고, 매월 월세 및 인건비를 지출해야 한다. 여기에 기타 전기요금 및 수도요금 등을 감안하면 지출금액이 적은 편은 아닐 것이다.
수입은 물론 숙박비로 충당한다. 객실 점유율이 100% 일 경우엔 예상했던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겠지만, 이것도 공실률보다 훨씬 들쭉날쭉한 숫자라, 성수기/비성수기 및 계절과 흐름에 따라 상당한 변동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사업주 입장에서도 초기 투자비용을 1-2억 원을 들여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도 매월 적정 수준의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사업을 계속해서 운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금번 사드 문제와 같이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든다면, 1-2개월가량 객실 점유율이 50% 미만대로 떨어져, 고정비용인 직원 인건비 및 전기 수도요금, 건물 월세 등만 계속해서 지출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직원은. 어찌 보면 건물주보다, 그리고 사업주보다 얻는 소득이 적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직원은 해당 건물에 대한, 해당 사업에 대한 리스크는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건물 가격이 떨어지거나 공실률이 발생하면 건물주는 투자원금을 까먹을 수 있다. 아울러 사업주도 객실 점유율이 떨어지거나 예상이익이 발생하지 않아 사업을 접게 되면 초기 투자금이 완전히 손실 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직원은 그렇지 않다. 자본을 전혀 투자하지 않고 소득만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든, 사업이 부도가 나든, 직원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것뿐이다. 이런 게 리스크란 말이다.
사실 사업주가 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디어만 있고 사업계획이 잘 짜여 있으면 투자자를 모집할 수도 있고, 기획재정부나 미래창조과학부, 중소기업청 등에서 창업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지난 2013년-2015년간 투입된 창업대출 예산이 21조 원가량 되며, 내 주변에서도 이러한 창업대출을 5천만 원씩 1억 원씩 받은 사람들은 꽤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출을 통해 사업을 일으켰는데 만약 이익이 꾸준히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럼 신용불량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대출이 아닌 자기자본금이라 할지라도, 사업을 접는다는 것은 초기 투자금을 그대로 날려버리는 일이다. 괜히 대기업 부장님이 퇴직하고 치킨집으로 그나마 있는 돈을 날려먹고, 남은 아파트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게 아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창업한 개인사업자는 106만 명인데, 같은 해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73만 명이다. 자영업 생존율은 30%대라는 말이다. 사장님 나빠요~ 하지만, 그 사장님 열명 중 일곱 명은 내일의 실업자일 수 있다.
직원의 노동가치는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짊어지고 사업을 일으킨 사업주의 경영가치도 소중한 것이고, 건물이라는 자산에 투자를 한 건물주의 투자가치도 소중한 것이다. 사회는 그렇게 각자 플레이어들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 속에 구성된다. 어느 한 명이 윤리적으로 나쁘고, 다른 한 명은 아주 착하고,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조금 곤란하다. 물론 건물주나 사업주 중에 아주 나쁜 사람들도 사회엔 존재하겠지만, 직원들 중에서도 월급 받고 인터넷 하며 놀기만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부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면, 내가 건물주도 되어보고, 사업주도 되어보고, 직원도 되어보는 다각화된 시각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구성원이 많을수록 사회는 조금 더 건강하게 잘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