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좋은 서평이 많아 구입을 해두었는데, 여력이 안되어 보관만 하다가 불현듯 이틀간 한 큐에 읽어버린 책. 실은 그간 책만 너무 많이 읽은 것 같아, 이제 자기계발 차원에서 출퇴근 길에 영어공부를 해보려는 생각을 했다.
작심삼일이라고 처음 삼일 정도는 효율적인 출퇴근길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이게 막상 영어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니 출근길도, 퇴근길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더라. 예전엔 일어나면 출근길에 책을 읽어야지. 퇴근시간이 되면 또 책을 사거나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게 갑자기 Listening test를 한다거나 Grammar test를 한다고 생각하니 출근도 퇴근도 다 싫어지는.
그래서 회사 서랍 속에 고이 잠자고 있던 이 책을 다시 들었다. 그래. 자기계발 따윈 나와 맞지 않는 것이지. 고냥 생긴 대로 살아야지 하고. 여어튼 이제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면.
먼저 책은 크게 Part 1,2와 Part 3,4로 구분될 수 있다. Part 1,2는 저자가 금융업을 그만하고 축산업을 시작하게 된 바이오그라피가 주를 이루고, Part 3,4는 저자의 시각으로 본 농촌 및 에너지 등에 대한 견해를 볼 수 있다.
먼저 Part 1,2에서 나오는 저자의 농촌 정착기는 정말 파란만장하다. 처음엔 귀농을 하신 분인지라 나보다 훨씬 연배가 많으신 분 인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40대 초반에 퇴직하셨다고 하여 확인해 보니 대략 나보다 열세 살 가량 많으신 분이더라. 그러니까 회사를 그만둔 시점은 현재의 나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
그 창창한 나이에 본업(?)을 과감히 그만두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든 결단력에 모종의 부러움이 생겼다. 그렇지만 뭐 업역이 다르고, 나 같은 경우 그냥 계속 철근 매고 콘크리트 쳐도 앞으로 이십 년은 먹고 살 걱정은 없으니 고냥 모종의 부러움만 남기는 것으로.
여하튼 필자는 우여곡절 끝에 부도직전의 돼지농장을 인수한 후, 성과급까지 지급하는 스토리를 들려주는데. 127페이지 즈음 잠실 L호텔 뷔페에서 열린 농장 송년회 이야기가 나올 때 즈음엔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2년 반 동안의 고생 끝에 농장 운영이 정상화되면서 신용불량자였던 직원은 채무를 상환하여 이제 어엿하게 4대 보험의 혜택을 받고, 예순을 훌쩍 넘긴 직원분들도 손자 손녀까지 불러 서울의 호텔 뷔페에서 송년회를 하고, 출자자는 출자자대로 농장 직원들은 농장 직원들대로 모두가 행복해진 모습을 보니, 역시 기업이 살아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책에서는 돼지농장이라는 주제에 맞게 축산업에 대한 스토리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예컨대 돼지는 백돈과 유색돈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돼지는 백돈이며, 이것은 요크셔, 랜드레이스와 같은 품종으로 분류된다고. 조금 더 가격이 비싼 유색돈은 우리나라 고유 재래종, 버크셔, 듀록 같은 품종이 있는데, 해외에서는 한우처럼 고급육으로 인정받는다고 하더라. 앞으로 삼겹살 먹을 때 이런 거 유심히 봐야겠다 ㅎ
그렇지만 Part 3,4로 가면서 저자의 농업 및 에너지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조금은 동의하기 않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먼저 저자는 금융 전문가답게 민자 인프라 사업과 농업을 비교하며 정부의 지원을 탓하는데, 이 책이 나온 시점이 2016년인데, 민자 인프라 사업의 최소 운영수입 제도가 폐지된 게 2006년이다. 민자 인프라 사업에 최소 운영수입이 도입되니 농업에도 그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면, 이미 십 년 전에 폐지된 제도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 있다.
아울러 나같이 해외출장을 많이 다니는 사람은 늘 드는 생각이, 한국의 농축산물의 가격은 여타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보다 비싼 편인데,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자면 오히려 시장경제원리를 조금 더 도입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솔직히 이러한 농산물 경제 및 유통구조에 대한 설명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쪽은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참고로 한국의 2007년 대비 2010년 식료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OECD 29개국 중 3위였다. 한국은행 농산물 생산자물가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아울러 충남지역에서 축사를 운영하다 보니 화력발전에 대한 비판이 조금 높은데, 사실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폐쇄하고 LNG 및 친환경 발전으로 가자면 전기요금의 상승이 불가피하다. 현재 주택용이나 산업용 전기요금에 비해 농사용은 절반 이하의 요금을 부과하고 있고 누진제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친환경적인 발전소 운영으로 이 농작물 재배 및 축산, 수산물 산업에 공급하는 전기요금도 높인다면 한국 농업 생산물의 경쟁력이 그대로 유지될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바이오가스 플랜트 사업에 대한 애착을 보이시는데, 아산 통합형 바이오 가스 플랜트 시설의 경우는 완공된 지 몇 년째 운영을 하지 않고 방치된 사례가 있다. 운영비에 비해 효율성이 지극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건설회사를 다니는 내가 옆에서 봐도 이 바이오가스 시설과 관련한 지자체와 건설업체 간의 클레임은 상당히 많은 편인데, 간혹 보면 건설업체에서도 그 효율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입장인데도 지자체에서 환경사업이라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경우를 본다. 누구 잘잘못을 떠나서 아직까지 효율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는 그 접근방법을 보수적으로 갈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몇 가지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했지만, 전반적으로 책은 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조리 있고 흥미롭게 서술했다는 측면에서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80세가 넘는 이 시점에서 환갑도 되지 않아 퇴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앞으로 더 많은 베이비 부머들이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실행할 것이다.
Lessons Learned가 잘 기록된 이러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면, 그러한 분들께 조금 더 명확한 설계를 할 수 있게 도움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인생 2막 새 출발을 위한 3가지 원칙이라 한 것으로 마무리해본다. 이건 사실 지금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싶다.
1.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2. 결과물이 계속 쌓이는 일이어야 한다.
3. 평생 지속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