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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y 25. 2017

노동조합에 대해

엊그제(2017/5/23) 뉴욕타임스 폴 크루그먼의 칼럼이 흥미로운데, 아래 FRED 차트는 1970년대 초반 이후 1/3로 하락한 운송 및 창고 작업자들의 평균임금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소비자물가지수 대비로, 현재 달러로 표현된 것이다.



칼럼이 흥미로운 이유는, 크루그먼은 이렇게 트럭 운전사들의 임금이 떨어진 이유를 노동조합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70-80년대를 지나며, 미국은 중국 트럭운송 서비스를 수입하지도 않았고, 로봇 트럭 운전사도 없었다. 제조업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이 조금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크루그먼이 내린 결론이 노동조합이다.


Unionstat 데이터에 따르면, 1980년대 트럭 운전자 조직화는 급격히 하락했다고 한다. 1983년 노조에 가입한 대형트럭 운전사는 38%였는데, 1991년에는 25%로 감소했다. 여기서 작년 운전자/ 판매원 및 트럭 운전자 중 노조 가입자는 무려 13%라 한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단체행동(collective action)을 통해 많은 교섭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레이건 정부 이후 일어난 노조파괴에서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크루그먼은 그 특유의 냉소적인 표현으로 마무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산층으로부터 이탈된 대다수는 아마도 트럼프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Oh well! 이러면서 말이다 ㅋ


개인적으로 나는 노조원이다. 어디 가서 그것에 대해 감출 생각도 없고, 나는 근로자로서 노동조합을 구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라 생각한다. 대관절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애초에 포기하는 것은 근로자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내 글을 읽다 보면 아시다시피, 나는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으며, 여건(실업급여 및 고용보험)이 잘 조성된다면 고용도 유연해야 한다 생각하며, 기업과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회에 그러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근로자의 권리를 찾는 것은 다른 일이다.


간혹 대기업 노동조합 자체를 악의 축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 나라의 대선후보가 일부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표현을 버젓이 쓰는 곳이 대한민국이니, 이쯤 되면 노조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건 동네 누렁이도 다 아는 사실이다. 간간히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회사와 각을 세우면, 연봉 1억 원이 넘는 사람들이 뭐 그런 짓을 하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연봉이 1억 원 넘는 조종사라 할지라도, 실질임금이 깎여 외국 항공사에 비해 2-3배 떨어진다 하면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임금격차로 인해 동료 조종사들이 중국 항공사로 이직을 하며 발생한 빈자리로 비행안전에 위협을 받고, 충분한 휴식시간이 부여되지 않은 채 운항을 강요하면 회사에 정당한 근로조건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과연 개인 대 회사로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회사는 언제든지 개인을 상대로 온갖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존재다. 대기업이라 한다면 사내 법무팀에 변호사만 수십 명이고, 로펌을 고용하면 제 아무리 똑똑한 직원이라 할지라도 넋 놓고 당할 수 있다.


자 이제 눈을 들어 두 번째 그래프를 보자. 


2013년 기준 OECD 노조 조직률을 보면 70%대에 육박한 나라는 북유럽 3개국이다. 그나마도 이게 최근 30년간 하락한 것이란다. 이와 반대로 저 멀리 OECD 평균을 넘어 개노답 삼 형제의 영역으로 가보자. 다행히 그 삼 형제 안에 들지는 않았지만, 한국은 꼴찌에서 4등이다.


법을 변경하고, 제도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근로자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사회에 있어서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 권리의 보호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덴마크에는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에서 그러한 것을 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저 70% 가입률에 달하는 산별노조가 매년 경제인연합회 같은 곳과 Collective agreement를 만들어 기준이 되는 임금을 만들긴 한다. 그리고 그 산별노조에서는 해당하는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는지, 근로조건에 위반되는 것은 없는지 파파라치를 통해 기업들을 감시한다.


내가 코펜하겐에 머물던 3년 전쯤, 이탈리아 업체인 Salini impregilo가 코펜하겐 메트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폴란드 하도급업체가 종종 그 Collective agreement를 위반하니 건설노조에서 해당 업체를 나라 밖으로 쫓아 보낸 일도 있었다.


우리 대부분은 임금이 많든 적든 근로자다. 자영업자들도 자본금을 마련하기 전에는 대부분 근로자였을 것이고, 혹여 폐업을 한다면 다시 근로자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근로자들이 제대로 된 근무환경에서, 적절한 급여를 받고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건, 어떠한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뭐 딱히 대단한 노조를 만들어 기업을 엎어버리자. 이런 거 말고. 일상을 살아가며 불합리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바꿔가며 같이 살아보자는 말이다. 아니 뭐 누가 누구를 설득할 필요 있겠는가. 그저 원하면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만들면 되고, 본인이 싫다면 그저 가입하지 않으면 되지. 나는 그저. 적어도 내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것이, 다른 어느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는, 그런 사회만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본문에 언급된 Paul Krugman의 칼럼 참조: https://krugman.blogs.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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