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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l 06. 2017

6~25등 이야기에 대해

대학에 입학한 후 아버지 직장동료의 고3인 딸아이를 처음으로 과외란 것을 시작했다. 대학에 가면 의례히 과외를 해서 용돈을 벌어야겠다 생각을 하여, 무심결에 시작을 했지만, 그 친구는 나랑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심지어 나보다 공부도 더 잘하던 아이였다. 뭐 내가 반에서 한 3-4등 했다면 그 친구는 한 1-2등 하는 수준. 다만 그 친구는 인문계였고, 과외는 수학에만 국한되었으니 그럭저럭 일 년을 별 무리 없이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졸업을 하기 전까지 과외를 한 번도 쉬지 않고 했는데, 대부분 반에서 1-2등, 가장 오래 같이 한 아이는 중학교 전교 3-4등을 하던 아이이기도 했다. 사실 이 정도 되는 아이들은 과외를 해도 그다지 힘들게 없는 게, 그냥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만 잡아주고 동기부여만 하면 알아서 잘들 한다. 뭐 문제 하나를 더 알려주기보다는 그냥 대학생활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막 몇 개 던져주고 하면 "아, 선생님, 저는 꼭 대학 가서 선생님같이 재미있게 놀면서 공부하고 싶어요. 그럼 지금 공부 더 열심히 해야지" 모 이런 식이다. 그렇게 난 과외선생의 도리란, 그 지식을 전수하는 것도 있지만 동기부여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1-3학년을 과외를 하며 잘 지내오다가, 마지막 4학년 2학기 때, 엄마 친구 아들을 과외하기로 했는데, 이 친구. 반에서 25등인가 하는 친구더라. 그러니까 여태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아이였던 것이지.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생각하여 이런저런 썰을 풀며, 열심히 하면 된다. 너도 어서 성적을 올려서 선생님같이 대학교 와서 재미있게 놀고 그래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엄마 친구는 무지 좋아라 하셨다. 애가 안 하던 공부를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고. 이번에 중간고사는 정말 기대가 된다고. 선생님이 바뀌니까 애가 이렇게 변했다고. 나도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 노력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 좋은 성적이 나올 거예요. 그런 식으로 적당히 말씀을 드렸는데, 정작 그 중간고사 성적이 나온 날 과외를 하러 갔더니. 엄마도 울고 아이도 울고 있더라. 당초 25등 정도 하던 아이가 30등으로 오히려 성적이 떨어졌다고.


공부라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기대라도 하지 않았다면, 아이도 학부모도 그저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과외선생이란 놈이 새로 와서 애가 스스로 공부를 하게 만들더니, 장밋빛 미래를 막 얘기하니 기대도 되었을 듯. 그런데 막상 성적이 오히려 더 떨어지니 자괴감도 더 컸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그 학생 과외를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취직을 하며 나의 과외 인생도 거기서 끝이 났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음을 내가 지나치게 무시했던 것일까. 오랜 기간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1년간은 그러한 도움닫기 기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과연 내가 계속 과외를 하며 동기부여를 했다면, 성적이 나아지긴 했을까. 이게 혹여 희망고문은 아니었을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2&aid=0002799618


늘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시는 문화연구자이신 양승훈 님의 칼럼을 읽으며, 불현듯 잊고 있던 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며 요즘 조금은 그 교육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과하다 싶은 편인데, 나도 그 어떻게 둬도 알아서 열심히 하고 동기부여 만들어 잘 하는 상위 1-5등 아이들의 문제에만 너무 매몰된 사고를 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정작 공부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성적은커녕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 자체를 몰라 헤매는 대다수의 아이들에 대한 고민은 덮어놓고 제쳐두고 있지 않았는지.


그 교육이라 함은 수천 명의 전교생 중에 스카이 몇 명 보냈다고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 터인데. 작금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논의 중에 그야말로 뭣이 중한디! 라는 일침을 가하는 송곳 같은 칼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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