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초에 좋기만 한 아빠가 될 생각은 그다지 없다. 자유방임형으로 풀어놓든 헬리콥터로 매 시간을 감시하든 언젠가 자아가 형성될 사춘기 시절 혹은 대학생 정도 되면 반항 한두 번쯤은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런데 이 글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제가 방임형 엄마라지만 중학생 학부모가 되고 보니 마음이 달라집니다. 이제 슬슬 공부 엔진에 시동을 걸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겁니다. 바로 이 시점을 위해 초등학교 내내 숙면하며 체력을 비축해온 거잖아요. 다른 친구들보다 책 읽고 생각할 시간은 많았으니 이제는 창의력을 펼쳐서 자기만의 적성을 드러내 주기를 바라게 되더군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3&aid=0003290559
글의 다음 단락을 보면 딸이 짜증을 폭발하며 자기도 공부를 하고 싶은데 이미 늦었다고, 지금껏 해놓은 게 없어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방임형 부모의 자세를 가졌으면 평생 방임형 자세로 유지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아이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요를 할 것이라면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아이도 부모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따른 시각차가 있다면 서로의 갈등은 시작되는 것이고.
흔히 사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통탄하는 부모들을 보면 공교육에서 알아서 아이들을 다 교육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공교육 교사는 삼십여 명 되는 아이들을 다 같이 공평하게 교육시켜야 하며, 그 아이들 중에는 일등도 존재하고 삼십 등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교육 안에서 방임형으로 키워 내 자식이 삼십 명 중에 삼십 등을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자신이 있다면 그저 공교육에 모든 것을 맡겨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일등은 못되더라도 상위권에라도 있었으면 한다면, 스스로 아이를 가르치던 사교육을 이용하던 어떤 노력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 혹은 시각차에서부터 시작된다. 본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경쟁에서 이기고 싶고, 잘난 체도 하고 싶고, 우울감과 자기비하에 빠지곤 한다. 이는 매우 자연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이다. 물론 자기 자녀가 근자감이 탁월하여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자존감이란 공부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자신의 재능 혹은 노력이 성과로 이어질 때 갖추어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객관적 성과가 없이 자존감만 자란다면, 훗날 고시낭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너무한 말일까. 스스로의 능력을 객관화시킬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성인으로 자신의 시각과 사회의 평가 간의 부조화로 인해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너무 내가 나의 부모에게 불만을 가졌던 것들만 보완하려고 그 부분에만 집중을 하다 보면, 나의 부모가 나에게 잘 코칭해주었던 것들을 간과할 수도 있다. 주입식 교육. 아이는 본디 맞춤법과 띄어쓰기, 구구단 등은 주입이 되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창의라는 것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덧셈을 모르면 곱셈을 모르고, 곱셈을 모르면 방정식도 모른다. 방정식을 모르면 미분도 모르고, 미분도 모르면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서 그 창의적이란 것을 펼칠 기회도 없게 된다.
양육방법이야 뭐 각자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에게 그 공부라는 것을 강요할 심산이라면, 적어도 어려서부터 차근차근 하루에 삼십 분 혹은 한 시간이라도 책상머리에 앉아 엉덩이를 무겁게 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아무리 부모가 아름답게 포장을 해서 보여주고 싶다 하더라도, 언젠가 아이는 그 실제의 세상과 홀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미성년이 지나면 부모의 도움도 받지 못할 수 있다. 스스로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스스로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고, 스스로 또 나와 같은 가족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내가 지나치게 현실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영어학원에서 외고나 국제고에 진학하는 아이들의 인터뷰를 보면 대부분 UN과 같은 곳에서 국제관계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 나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외국을 다니며 각국의 공무원 혹은 외국기업의 임직원들과 협업 혹은 협상을 하곤 하는데, 솔직히 이들을 매번 처음 만날 때는 일말의 막막함을 느끼곤 한다. 내가 과연 저들과의 처음 미팅에서 얼마나 나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건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거의 성공적이었던 프로젝트 경험을 떠올려본다. 그래,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바 있지. 나는 잘할 수 있어.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한 후 처음 미팅에 임하고, 리드를 해 나가는 편이다.
공부를 잘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다. 공부가 아니면 태권도를 잘할 수도, 피아노를 잘 칠수도, 종이접기를 잘할 수도 있다. 아니 하다못해 다른 친구들보다 밥 빨리 먹는 것을 가지고 내기를 하는 것이 아이들의 세계이다. 무언가 하나 그 아이가 잘할 수 있는 걸 만들어줘서 자존감을 키워 나가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자존감은 밑도 끝도 없이 생겨 나지 않는다. 이는 과거의 어떠한 조그마한 성공경험의 누적을 통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완전한 방임보다는,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적절히 아이에게 길을 제시해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본다.
*사진출처: https://static.pexels.com/photos/34014/pexels-photo.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