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간혹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하며 인생을 지배하는 대부분은 운이 좋아서 된 것이란 말을 한다. 이는 그 노오력만을 강조하는 산업화 시대 선현들의 가르침의 대척점에서 나오게 된 측면이 있는데, 이는 세상 어느 사안이나 그렇듯이 꼭 그렇게 한쪽으로만 재단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사실 그 운이라 하는 것은 노력을 바탕으로 한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다가오지 않는다. 강원도 원주의 평범한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손열음 씨가 운이 좋아 한예종에 입학하고, 차이코프스키의 국제 콩쿠르에 2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 의자에 앉아 꾸준히 연습을 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요즘 우리 집 아홉 살 인생을 사시는 분을 보면, 그 구구단을 외우고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임을 체감한다. 삼십칠 년의 인생을 산 나에게는 더없이 쉬워 보이는 그 계산문제 및 영어단어도 처음 접하는 아이에겐 매우 높은 성벽과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부모 된 입장에서 이 아이에게 너는 운이 좋을 것이니 놀고 싶은 대로 놀아라. 그런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 힘들고 어려워도 붙잡고 각종 당근과 채찍을 교묘히 섞어가며 아이가 조금이나마 공부하는 습관을 잡게 만드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자기는 지나 보면 잘 깨닫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모의 노력이 있었기에 어느 한 사람도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부모가 없었는데 알아서 잘 컸다고 항변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케이스는 정말 능력이 뛰어나 표준 정규분포의 외곽부에 있는 탑티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간혹 인 서울 대학에 다니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서울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서,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 근로를 하면서, 이건 그저 운이 좋아서 생긴 결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확률 상 그런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운과 노력과 끈기 등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된 것이지, 절대로 그것이 저절로 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땅에 태어난 것 만으로 인류 80%가 누리지 못할 운을 타고난 것이다. 하지만 조금 미시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그 지금 살만하다는 사람들, 중학교 한 반에 50명씩 세 번 150명, 고등학교 한 반에 50명씩 세 번 150명, 이 300명의 사람들이 다 지금 본인 같은 삶을 누리고 있는가. 그 300명 중 어떤 이는 변호사 의사를 하고 살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앞서 언급한 어느 정도 살만한 레벨, 그리고 어떤 이는 여전히 2년마다 고용이 종료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이미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그저 운의 변수로 판단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내가 이효리 씨나 서장훈 씨가 좋은 이유는 그들은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가 된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제주도에서 남편이랑 넉넉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지금 강남에서 빌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젊은 시절 아이돌 그룹 혹은 농구선수 활동을 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기에 얻게 된 보상이라고. 하지만 작금의 본인들은 평범한 한국의 동년배들과 다른 경제적 위치에 있다고. 현재 이런 인생을 살아서 감사하기는 한데, 여기까지 오게 된 그 경로도 같이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논리.
사실 나는 지난달 어느 고등학교에 직업 관련 강의를 하러 갈 일이 있었는데, 그 건설 관련해서 어떤 말을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 상당히 많았다. 교감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되, 너무 낙관적이지만은 않고 현실적이게, 마지막으로는 또 긍정적으로 마무리를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사실상 불가능한 요청이다. 각자 능력이 다르고 성적이 다르고 집안 환경도 달라 섣부르게 조언하긴 어려웠다.
국제 건설시장만을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내가 있던 중동의 1조 원짜리 발전소 현장의 하루 출력인원 5,000명은 인도 및 방글라데시에서 온 근로자들이었다. 그리고 500명 정도는 다국적 하도급 회사 관리자, 50명 정도는 한국 대기업 직원, 10명 정도는 영국의 감리자들. 5명 정도는 아랍 발주처 직원들. 여기서 저 500명, 50명, 10명의 각각 사무직 직원들도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뉘게 되고.
물론 여기서 그 Nationality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그 운으로 갈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50명의 한국 직원들, 10명의 영국 직원들, 5명의 아랍 직원들은 정말 그 운만으로 저기까지 간 것일까? 내가 본 그들은 각자 자기 나라에서 정규 교과과정에 노력을 다해 충실히 이행하고, 해당 보수를 받을 수준의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아랍 땅에는 여전히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고 염소를 몰고 다니는 베두인족들도 많이 있고, 학교에 가라고 해도 안 가는 아이들도 꽤나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에 나온 후 자격을 갖춘 사람이 저 5명의 발주처 직원으로 올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5천 명의 제3세계 근로자들도 인생을 걸고 전재산을 담보 잡고 돈을 발기 위해 본 분들이 많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분들이 본국에 돌아가서는 훨씬 더 풍족한 생활을 살고 계실지 모르겠다. 상대적 관점에서 말이다. 인도아대륙의 약 17억 명에 달하는 인구 중에 중동에 와서 오일달러를 벌어가는 사람들은 상당한 노력과 베팅의 담대함을 가진 사람들이지, 그저 운만 좋은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마치 70년대 파독 광부 및 간호사 가셨던 분들이 당대의 한국에서 나름 배우고 노력한 사람들임을 감안해보면 말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운은 로또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 로또도 꾸준히 구매를 해 온 사람이 당첨되지, 나같이 생전 로또를 구입할 의사가 없는 사람은 당첨될 확률도 0일 것이다.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도 좋지만, 지난날 자신이 얼마나 이 삶을 살아오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되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자신의 오랜 기간의 노력을 무시한다면, 그다음 세대에게 다소 추상적인 그 운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건 조금 와 닿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이는 전적으로 내 생각뿐임을 전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