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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Sep 11. 2017

공간의 가치, 박성식 지음, 유록출판, 2015

대한민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 부동산에 관심을 두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이라면 월세방, 이제 막 결혼을 했다면 전셋집, 어느 정도 가정을 꾸렸다면 자가 소유 주택에 대한 고민은 늘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막상 구체화되지 않고 막연하고 지엽적인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기사, 예컨대 임대인의 갑질, 20XX 년에 부동산 대폭락의 시기가 온다느니, 반대급부적으로 수십 년간 월급을 쓰지 않고 모아도 집을 사지 못한다는 기사들이 인기를 끈다. 물론 부동산 시장은 어쨌든 시장(Market)이다 보니, 때론 심리적으로, 일부 투자자들에 의해 등락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지난 2007년 이후 주택매매 가격 증가율이 10% 넘은 적이 없으며, 때론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의 비교적 안정적인(Stable) 흐름을 보여왔다. (아래 참조)


출처: 한국감정원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정말 이상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부동산 가격의 등락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이는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아래 자료는 댈러스 연준의 통계를 토대로 작성된 도표인데, 한국의 주택 가격은 지난 십여 년간 비교적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캐나다나 스웨덴과 같이 복지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성숙된 경제시장을 가진 나라에서도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주택 가격은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는 부동산 시장이 어느 정도 수요-공급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일반경기, 금리, 통화량, 에스컬레이션, 부동산 정책 등 외생적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수요-공급의 원칙에서도 조금 더 자세히 분석하고자 한다면, 그 공간의 가치를 알아야 하는데, 이 책은 이러한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책은 부동산/건설시장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음을 언급하고 싶다. 나는 건설회사에서 해외 토목구조물 견적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업계 용어를 주워들은 나 조차도 처음 몇 장을 넘기고 각 잡고 다시 줄을 그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리 건설회사를 다닌다 하더라도 실제 업무가 건축이나 주택업무와 관련 없으면 초보이긴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건축 그 자체보다는 경제학 및 금융업 지식을 바탕으로 한 레버리지와 특수목적 기구 비용, 현금흐름과 투자의사결정 구조 등의 이야기와 수식도 많이 소개되는데, 이쯤 되면 감정평가사 혹은 CFA 수준이 아니라면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수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은 친절하게도 내러티브는 내러티브대로 이어가고, 133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목차를 입체적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목적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주요 관심사항에 대해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서두에 저자는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지만 발행인이기도 하다는 말을 남긴다. 전문 발행인이 아니다 보니 책 구성에 있어 다소 투박한 점도 보이고, 간혹 오타도 눈에 보인다. 하지만 특별히 출판사의 간섭 없이 저자 스스로 책을 구성하다 보니, 정말 필요한 정보들을 니즈에 맞게 잘 구성한 점도 돋보인다.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공간과 신용


저자는 나에게 신선한 주제를 몇 가지 던져 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 공간과 신용을 동시에 논하는 것이었다. 임대차 계약은 본질적으로 사물에 대한 권리가 아닌, 사람에 대한 권리라고. 그리니 임대차 계약은 채권/채무 계약이라고 한다.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보증금의 개념이다. 한국의 경우 보증금이 여타 선진국에 비해 높게 책정되는데, 이는 임대차 계약에서 발생하는 신용위험이 비교적 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임차인은 임대인에 비해 불합리한 경우를 많이 당한다고 인식한다. 물론 따박따박 월세를 잘 납부하고 전세계약을 준수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우리나라에는 다수 존재한다. 예컨대 임차인이 월세를 지불하지 않고 계속 거주하는 경우, 그러니까 채무불이행을 할 경우 미국은 2-3개월에 퇴거조치가 완료 가능한데, 한국은 명도소송의 절차가 길어 최소 6개월에서 수년까지 절차가 걸린다고 한다. 이러한 분들의 리스크가 존재하는 법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러한 리스크로 인해 보증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들어가 보자면, 나는 에스크로우 계좌(escrow)라는 용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서구권 국가들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받아도 이 에스크로우 계좌에 넣어두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제한을 둔다고 한다. 임차인이 임대료를 미납하거나 연체하거나, 부동산을 훼손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임차인의 임대료를 임대인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전세제도라는 기이한 형태의 임대차 계약이 성립되게 된다. 한국에 전세제도가 정착되게 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서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펴 들고 200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왜 이러한 전문적인 책을 읽는가


이 책은 분명 일반 대중을 위한 교양서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전술하였듯이 전문성을 상당히 가진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몇몇 주변 분들이 물어보셨다. 대체 정치를 할 것도 아니고, 주택사업을 할 것도 아니면서 왜 이런 책을 읽느냐고. 정말 그런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만 이러한 책을 읽어야 할까. 다음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의정부 경전철 전경 (출처: 조선일보DB)


의정부 경전철 시행사인 의정부경전철(주)는 올해 초 서울 중앙지법에 파산을 신청했다. 개통한 지 4년 만의 일이라 한다. 이 때문에 의정부시는 해지 시 지급금으로 2200억 원가량을 물어주어야 할 판국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혹자는 건설업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수요예측을 뻥튀기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건설업체들로 구성된 저 의정부경전철(주)가 파산하게 됨으로, 해당 건설업체들은 자본금 자체를 손해 보게 된다. 물론 특수목적법인(SPC)이라 법적으로 위험이 절연되기는 하지만 투자금 자체는 순손실로 기록되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순수하게 건설회사만의 잘못으로 보기도 어렵다.


사실 사업자가 수요예측을 주관해서 하기는 하지만, 프로젝트 시작 전 건설교통부 산하 교통개발연구원도 해당 수요예측을 실시했고, 이를 의정부시 측에서도 검토를 실시했다. 당 프로젝트는 2009년 이전 민간사업 공사라 최소운임 수입보장(MRG)도 체결하였지만, 이용객 수가 50%에 미치지 못하면 수입보장을 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조항을 넣어 파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과연 당시 사업을 추진하던 의정부시장 및 관련 공무원, 시민들은 이러한 경전철 프로젝트를 실시함으로 얻게 될 이득과 리스크를 적절히 고려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렇게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한순간 누군가가 친절히 설명을 해줘도, 선순위/후순위 채권, 자기자본 수익률이나 순현재가치, 확실성 등가 수익률 등의 개념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물론 이러한 단어들은 이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현대사회는 그렇게 갈수록 복잡다단해져서, 이렇게 중소도시의 인프라 시설 하나를 놓는 데도 다양한 지식이 필요로 한다. 그렇게 나이브한 현실인식 가운데 발생하게 된 사건이 용인 경전철 (국제중재판정에서 패소함에 따라 7,786억 원 배상 판결), 그리고 이 의정부 경전철이라 할 수 있다. 김해경전철도 현재 그다지 원활히 운영되고 있지는 않다.




나는 가급적 책에 존재하는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실 저자가 오랜 기간 공부하고 현업에서 얻은 지식을 전파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이 책의 내용을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좀 실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책의 내용을 적지 않으면서 책의 매력적인 부분을 언급하려다 보니 경전철 사례와 같이 다소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부분도 많이 쓰인 것 같다. 나의 전공이 토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인프라와 관련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한국에서 공부하기는 했지만, 뉴욕시립대 경영대학원에서 방문학자로도 강의를 했고, 다국적 부동산 종합서비스 회사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의 부동산 현상을 미국 및 서구권과 비교하며 무엇이 문제인지 잘 짚어낸다. 어떤 것은 정상적이며 어떤 것은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요모조모 비교해가며 잘 정리를 한다. 그래서 한국 상업용/ 주거용 부동산의 구조적인, 그리고 입체적인 이해를 하고 싶은 분들께는 정말 추천하는 책이다. 요 근래 미국 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척박한 한국 출판시장을 탓하곤 했는데,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독창적인 책을 만나게 되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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