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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Oct 02. 2017

택시 운전사, 장훈 감독, 2017

아픈 과거와 마주한다는 것은 늘 어렵고 힘든 일이다. 상업영화이다 보니 오락적인 요소와 극적인 요소를 가미했음에도 불구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를 통해 다시 복기한다는 것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젊은 시절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극 중 사복 조장(최귀화)이 택시기사(송강호)를 구타하다 독일 기자(토마스 크레치만)가 구해주는 것과 같은 뻔한 클리셰에서는 그다지 긴장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사실 극장에서 볼 여력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본가에 와서 애들과 IPTV로 봐서 그런지 가상적 음향효과와 같은 청각적 미장센도 계속해서 눈에 띄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평론가들에게 이 영화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대체로 영화적 장치들이 다소 티 나게 분포되었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무거운 주제를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게 만들었고, 한 가장의 힘겨운 일상과 외신기자의 기자의식을 바탕으로 한 취재를 두 축의 내러티브로 지루하지 않게 영화를 잘 이끌어간 것 같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었으며, 그만한 재미도 있었다. 확실히 역사는 문자로 접하는 것의 장점도 존재하지만, 영상으로 체감하는 수준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IPTV의 결재금액은 1만 원이었다. 이 영화는 아직 극장에서 상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배급사인 쇼박스는 추석 연휴를 틈타 지난주 수요일(9/27)부터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그 1만 원이란 가격을 보고 너무 비싸단 생각을 했지만, 옆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지금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다섯 명인데, 이쯤 되면 극장에선 4만 원이 넘는 것 아니냐며 그냥 보자셨다. 사실 이러한 VOD 서비스는 틈새시장을 잘 공략한 서비스로 보이며, 추석 연휴 기간 꽤나 많은 집에서 이렇게 결재를 하며 보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시점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느 평범한 택시기사, 그리고 외신기자에서부터 비롯된다. 외신기자의 중요성은 미리 알고 있기는 했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또 그 중요성을 체감하게 되었다. 나는 인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를 꼽으라면 상호 '견제'기능이라 생각한다. 이 외신기자는 그러한 견제 기능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한다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국내 기자 같은 경우는 아무리 취재를 잘 하더라도, 이러한 정권과 대치해야 되는 상황에서는 그 기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잘못 보도했다가는 신군부 정권에 의해 신문사 자체가 문을 닫을 확률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5.18 민주화 항쟁이나 천안문 6.4 항쟁과 같이 사망자가 수백 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의 경우에는 대외적으로 전파되어 해당 정부의 실상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당시 한국의 경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지 1년이 채 안된 시점이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비윤리적인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진다면 국제적으로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당시만 해도 동북아에서는 소련과 중공이 굳건히 공산주의 진영을 지키던 때이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동쪽은 자유주의 진영이 경제성장의 피크를 찍고 있을 시점이었다. 당시에도 한반도 전작권을 가지고 있던 미국이 이 시점에서 5.18에 대해 암묵적으로 승인을 했는지 묵인을 했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대외적으로 그토록 잔인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미일 정부가 동의할리 만무하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외신기자의 보도는 전 세계적으로 신군부의 입지를 흔들게 하였고, 항쟁은 수일 내에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정권은 전두환에게 가긴 했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는 내부감사 및 외부 회계감사 등을 통해 견제를 받는다. 아울러 회사 간 경쟁에 있어서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견제를 받고,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경쟁사간 소송을 통해 어느 정도 긴장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슈퍼갑이라 하는 공공기관 및 공무원도 감사원의 감사를 받게 되며, 정기적으로 지방의원 및 국회의원의 국정감사도 받게 된다. 국회의원도 그 권력이 상당하다고는 하지만 언론에 의해 지속적으로 견제되기도 하며, 주기적으로 국민들의 신임을 받게 된다. 대통령이나 지자체장들도 정해진 임기가 지나면 새로운 사람이 부임하게 되므로 자체적인 견제기능이 이루어진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 견제를 한다는 사고만 있어도 사람들은 비리나 부패, 부정행위 등의 무리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이 사회에 있어 이 견제의 기능이 부족한 유일한 부분이 있다면 종교계라 생각하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회계감사도 받지 않고 소득세 따위에 연연하며 자신들만의 성막에서 살고 있을는지 궁금하다. 나는 누군가의 견제가 제한되며 부의 집중이 계속되는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이 착하고 나쁘고의 차원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인간의 행동이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비교적 가볍게 호흡을 이어간다. 주연배우인 송강호와 조연배우 유해진의 관록 넘치는 연기력과 요즘 대세인 류준열의 열연이 돋보인다. 나는 과거의 시점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그 미장센에 상당히 관심이 가는 편인데, 과거의 서울과 광주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집 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나에겐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광주에 가면 518번 버스가 있다고 하던데. 언젠가 시간을 내어 꼭 광주에서 그 버스를 타고 금남로와 구 전남도청, 5.18 공원묘역까지 둘러보고 싶다. 그렇게 선배들이 지켜온 민주주의, 군사독재를 막기 위해 목숨 걸고 지켜온 민주주의. 그분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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