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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Oct 07. 2017

제주올레 16코스 (광령-고내 올레)

산과 바다가 만나는 그곳

올레길은 제주에서 시작한 트레킹(Trekking) 코스이다. 사실 십여 년 전 호주에서 어학연수할 때만 하더라도, 그곳에는 Gold Creek Reservoir나 Summit Track, Mt Coot-tha 등과 같은 국립공원 트레킹 코스가 꽤 많은 편이었는데, 한국에는 그러한 코스가 만들어지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사실 등산은 평소 준비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난이도가 조금 있을 수 있어 부담스럽지만, 트레킹은 천천히 걸으면 도시인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걷다 보면 숲의 향기도 느낄 수 있고, 내가 어제 걸은 제주올레 16코스의 경우는, 바다의 향내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번에 내가 걸었던 제주올레 16코스 (광령-고내)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좁은 골목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렇게 올레길은 산속의 길도, 바닷가 길도 걷게 되지만, 이렇게 시골 어르신들이 도란도란 모여사는 동네의 좁은 골목길도 갈 수 있게 된다. 언론인 서명숙 씨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고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훨씬 더 많은 방문자들이 오고 간다고 한다. 제주를 비롯한 다양한 지자체에서 산기슭에 올레길과 같은 트레킹 코스를 만들어 놨는데, 이는 꽤나 바람직한 사회적 변화가 아닌가 싶다.


현무암 돌맹이로 쌓아 올린 제주 시골동네의 담벼락


다행히 제주도는 현재 재정이 튼튼한 편이라 이 올레길 관리도 잘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한라산 등반코스도 강박스와 나무데크로 등산로를 만들고 있었는데, 자연의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자연을 이용하는 가장 최적화된 방법이 아닌가 싶다. 


등반로는 이와 같이 나무데크로 만들어 졌다. 데크 밑의 프레임은 스틸로 되어있기도 하다.


헌데 이번 16코스에서는 만들고 난 후 하자가 나서 폐쇄한 나무데크 자전거길이 보였는데, 단차가 있는 곳에 그러한 구조물을 시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협소한 면적에 구조물을 올리는 건물과 같이 지반보강을 일일이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워낙 범위가 광범위하다 보니, 자칫 어설프게 시공했다가 하자가 발생하여 인명피해라도 발생하면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라산 국립공원은 유료화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지만, 제주올레길은 아무래도 그렇게 되기는 다소 어렵지 않나 싶다. 공공재에 대한 유지보수 문제는 꽤나 풀기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경기가 상승하고 해당 지역의 예산이 넉넉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 반대의 시점에서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올레길을 안내해주는 표시, 길을 따라가다보면 계속해서 이 리본을 볼 수 있다.


사실 올레길은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혼자 여행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산속에서는 통신두절이 될 수도 있고, 이방인들이 많은 곳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픈 사건이지만 2012년에는 올레길 1코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잠정 폐쇄한 적도 있다. 즐거운 여행에 앞서 안전은 늘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


올레코스를 가리키는 화살표. 제주도를 중심으로 파란색은 시계방향, 노란색은 반시계방향을 가리킨다.


여하튼 그렇게 시작한 올레 16코스, 우리는 광령리에서부터 시작했다. 16코스는 제주시 애월읍 기준으로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가는 코스인데, 초입부에는 유명한 유적지인 항몽유적지가 존재한다. 이는 대부분 알다시피 13세기 초, 한반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진행된 전쟁이라 알려진 여몽전쟁과 관련된 유적이다. 당대 최강대국인 몽고의 침략을 받아 삼별초는 진도를 거쳐 이 곳 제주에 까지 와서 끝까지 항전을 하는데, 이 곳 제주 항파두리에 약 6km의 토성을 쌓고 여몽연합군에 항전했다 한다. 


현재도 발굴 중인 항몽유적지 일대


제주 올레길의 최대 장점은 그 울창한 숲과 고사리들 사이로 거닐면, 마치 태고의 자연을 걷는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고사리(Pteridium)는 고생대 때 세계에 널리 퍼진 다년생 식물이라 알려져 있기는 한데, 현재 우리가 접하는 고사리는 신생대 초에 나타났다고 한다. 한데 그것만으로도 수천만 년 전이니 짧은 인류 역사에 비하면 기나긴 시간의 연속이다. 


매우 오래된 식물, 고사리


올레 16코스는 제주 국제공항의 항로를 통과하는 지점에 있어서 그런지, 오르고 내리는 비행기도 참 많이 보인다. 언론에 따르면 제주공항은 현재 100초마다 항공기가 뜨거나 내린다고 하는데, 하루 평균 대략 500대가 오간다고. 다행히 제2공항 건설계획이 발표되었으니, 십 년 정도 후에는 조금 완화될 수 있을는지 기대된다. 당장은 제주공항의 그 인산인해 혹은 기상악화 시 상공서 대기하는 것을 감안하면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제주시정 관점에서는 좋은 현상이지만, 교통 등 인프라 관점에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이 있다.


감귤나무 위로 보이는 비행기


서울과 같은 도심에서 근무하다 보면 녹음을 접하기 어려운데, 올레길을 걷다 보면 이처럼 푸르른 작물들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오고 가는 발걸음이 10km 정도 지나면 무거워지기 마련인데, 이처럼 농사하시는 분들의 땀과 정성이 엿보이는 농작물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무명 농부의 땀과 정성
당장 당랑권이라도 펼칠듯한 어느 사마귀의 기세 ㅋ
Y자 형태가 선명히 보이는 편백나무의 잎


광령에서 고내리로 간다는 코스 기준으로 보자면, 그 긴 산길을 따라가다 수산 저수지와 수산봉을 지나면 이와 같이 갑자기 바다가 등장하게 된다. 정말 시골 산속 길을 걷다 갑자기 상업시설 및 엣지있는 음식점들과 편의점들이 즐비한데, 이처럼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기도 전에 현무암과 바다가 맞닿아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주상절리도 볼 수 있는데, 이는 화산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절리(Joint)의 형태이다.



사실 16코스 최대의 장점은 이렇게 해안가 길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인데, 바다의 해풍을 맞으며 높고 낮은 올레길을 걷다 보면 그간 쌓였던 고민도 하나둘씩 정리를 할 수 있게 된다. 멀리 보이는 고내포구 및 애월 방파제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제주도와 해양수산부는 제3차 전국항만기본계획 수정계획(2016년~2020년)에 제주신항 4단계 사업 중 1단계 사업을 포함시켰는데, 이로 인해 제주도는 항만물류난 해결과 크루즈항 등 국제적인 관광지로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 애월에는 LNG부두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제주에도 도시가스로 난방을 할 수 있고 천연가스 복합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방파제 끝에는 4만 5천 kl급 LNG 저장탱크 2기가 건설될 예정인데, 그와 더불어 건설될 LNG 파이프를 생각하면, 건설회사 직원 관점에서 보자면, 산적한 민원해결이 적지 않게 어려울 듯하다.



16코스의 시작점은 고내포구인데, 우리는 내친김에 애월항까지 와서 저녁식사를 했다. 생각보다 맛집을 찾기는 쉽지 않았는데, 제주의 많은 식당들이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도 어느 정도 수요가 확실히 갖추어지고 적정 수준의 임대료가 형성되어 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러한 이상적인 조화가 제주에는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그렇게 엄격히 영업 원칙을 세워놓은 가게들이 맛집인 편이 많다고 생각한다. 충분한 휴식을 통해 가게 주인의 삶도 윤택하고, 그러한 음식을 접하는 식객들의 미각에도 즐거움을 주고, 윈윈관계가 아닌가 싶다.



16코스를 돌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날씨가 좋지 않아 더 멋진 풍경을 보지 못했던 것인데, 그래도 어두운 날씨 덕에 자외선 걱정을 덜하며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제주의 날씨는 하루에도 시시각각 변하여, 그다음 날 아침에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맑고 푸른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었다고. 가끔 제주 시골의 벤치에 앉아 에일을 한잔 하다 보면, 그 멀고 깨끗한 가시거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여유를 계속해서 간간히 즐길 수 있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토란 잎에 올려진 새벽이슬의 흔적. 아이폰의 아웃포커싱 기능도 꽤 쓸만한듯~ 


2017년 10월 6일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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