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한라산을 등반할 기대에 알람 소리가 울리지도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국민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이런 일은 소풍 가는 날에나 있던 일인데, 오늘은 일말의 걱정이 커서 그랬던 것 같다. 어두컴컴한 다섯 시에, 이온음료와 초코바 두 개, 그리고 어머니가 챙겨주신 주먹밥을 챙겨 들고 우리는 성판악 탐방안내소로 길을 나섰다. 본디 한라산 등반로는 동서남북으로 뻗어져 있는데, 현재 백록담까지 갈 수 있는 코스는 두 개, 성판악 탐방로와 관음사 탐방로뿐이다. (2017.09.30 기준) 내가 예전 제주도에 거주하던 25년 전에는 영실 탐방로나 어리목 탐방 등을 통해 윗세오름에서 남벽을 거쳐 백록담까지 갈 수 있었는데, 알아보니 이는 심하게 훼손되어 1993년 폐쇄되었다고 한다. 내가 제주에서 인천으로 넘어온 해가 1993년이었는데, 나는 윗세오름-백록담 코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온 셈이다.
여하튼 성판악 탐방로는 제주 동쪽부터 시작하는 길이고, 관음사 탐방로는 북쪽부터 시작하는 길이다. 두 코스를 한 번에 즐길 요량으로, 우리는 성판악 코스로 오르고 관음사 코스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 같은 경우, 매년 초 태백산도 오르고, 주말엔 5km, 10km씩 조깅도 틈틈이 하는 까닭에 체력적으로 힘들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후술 하겠지만, 이는 지나친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등산용 지팡이가 없었다면 아마 오늘 내 연골은 다 나갔을 수도 있었다. 오르는 것까지는 문제없었지만, 이제 나도 나이가 삼십 대 후반이 되어 그런지 연골이 그 많은 내리막을 감내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뭐 나이 탓을 하기도 좀 뭐한 게, 같이 산을 탄 환갑이 넘은 아버지가 정정하신 것을 보면 평소 운동부족인 것이 원인인 것 같다.
성판악 탐방안내소는 해발 750m에 위치하는데, 한라산 백록담의 고도가 1,950m이니 꼬박 1,200m를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어둠이 걷히기도 전인 5시 30분, 우리는 성판악 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잘 보이지 않는 탐방로 입구에 보니 입산시간제한 표지판이 보여 긴장했는데, 다행히 오전 5시 30분부터 입산이 허가된다고 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라산 등반을 시작했다. 아직 여름을 지나온 지 얼마 안 되어 5시 반 정도면 그래도 가시거리가 확보될 줄 알았는데, 이는 도시에 거주하던 자의 오판이었다. 산은 도시와 다르게 상당히 어두컴컴하였고, 딱히 랜턴을 챙겨 오지 않은 우리는 휴대폰 라이트 기능을 통해 길을 밝혔다. 이놈의 스마트 폰은 페이스북이나 아웃룩, 그리고 게임은 물론, 이렇게 랜턴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니, 현대사회의 그 스마트함에 감사한 마음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성판악 안내소에서부터 속밭대피소까지는 완만한 기울기로 초보 등산객들도 무난히 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사라오름 입구를 지나며 여덟 시 정도에 도착한 진달래밭 대피소. 이 곳을 아기다리고 고기다린 이유가 있었으니, 이 곳은 코스 전체에 걸쳐 유일하게 컵라면을 파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새벽부터 부산스레 준비하고 길을 떠난 후, 두 시간 반 정도의 가벼운 산행을 마친 후 맞이하는 육개장 사발면은 역시 세상 어느 음식보다 값진 것이었다. 헌데 진달래밭 대피소도 8시 30분부터 연다고 하여 우리는 20분간을 기다린 후 육개장 사발면을 먹었다. 가을의 초입이지만, 해발 1,500m에서의 쌀쌀한 날씨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사발면은 25년 전 1,100 고지에서 먹었던 그 맛을 떠올리게 하였다.
이제 본격적인 정상을 향한 코스가 남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었다. 한편 한라산의 줄기를 따라 오르다 보니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그 높이에 따른 식생의 변화와 현무암을 비롯한 지질의 모습이었다. 한라산은 지질학적으로 신생대 4기(Quaternary), 그중에서도 플라이토세(Pleistocene) 전기부터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한라산의 지질을 최초로 연구한 학자는 일본인 지질학자 하라구치(1930)라고 하는데, 이후 농업진흥공사를 주축으로 많은 연구가 된 것으로 보인다. 헌데 생각보다 노두(암석이 지표에 노출하고 있는 부분)의 분포가 드물어 지질을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 한라산은 약 180만 년 전인 플라이토세 전기에 형성되고, 30-10만 년 전 제 3분출기를 거쳐 1,700m에 이르는 한라산 순상화산체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게 제3분출기 말기인 16만 년 전에 한번 더 용암을 분출하고, 가장 최근인 2만 5천 년 전 다시 분화 활동이 일어나 현재의 백록담이 완성되었다고. (원종관 1975, 이문원 1994)
앞서 노두가 부족하단 말은 2005년 지질학회지에 실린 '제주도 한라산의 지질'이라는 논문에서 나온 말인데, 토목을 전공한 나는 왜 노두에 집착할까? 그냥 땅을 시추하면 되는데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이미 제주도 세계유산 본부 한라산 연구부는 지난해 9월부터 백록담 분화구 속 6개 지점에서 시추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올해 11월 말 최종 보고회를 열 예정이라고. 헌데 이것은 깊이 10m, 20m 수준인데, 이 정도면 그저 퇴적층 정도만 파악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여하튼 이 정도만 하더라도, 인류의 손길이 닫지 않은 그 한라산 백록담의 표층을 토대로 선사시대 이전의 한국 생태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고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60156.html)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정상까지는 2.3km에 불과한데 난이도가 조금 있는 편이었다. 오르는 길에는 현재 나무데크 등산로를 조성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등산객들에게는 오르기 쉽게 만들어주고, 한라산은 보존하고자 이러한 데크 등산로를 만들고 있는 것 같더라. 상당한 규모의 인력과 장비를 가지고 해발 1,700m 부근에서 공사하고 있는 분들을 보고 있노라니, 예전 부천지역 지하 30m에서 지하철 공사를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헬기로 자재를 나르고 하면 은근 공사비도 꽤 될 터인데.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한라산 국립공원 입장료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제주도는 한라산 국립공원의 입장료를 국제 세계 자연유산지역의 수준에 맞게 2만 원대로 책정한다고 하던데,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나는 이러한 방향이 올바르다 생각한다. 생전 한라산은 한 번도 오르지 않을 수많은 제주도민들의 세금을 바탕으로 한 예산으로 그러한 나무데크 등산로도 만들고, 유지보수를 하는 것보다는, 정말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유지 보수하는 편이 합리적이란 판단이다.
정상에서 보이는 백록담의 호수는 물이 상당 부분 말라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물의 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은데, 어쩌면 후세에는 보지 못할 백록담의 물을 마지막으로 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상에서의 감동을 느끼자마자, 우리는 관음사 탐방로로 하산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가 나의 지옥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하산길 역시 조금 가파른 편이었고, 스텝을 한 걸음 할 걸음 내려갈 때마다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이 점점 견디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등산을 시작할 때 아버지가 등산스틱을 가져오셨는데, 의도치 않게 이때부터 그 등산스틱은 내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평소 올레길 등을 다니시며 등산에 익숙하신 제주도민인 아버지는 쌩쌩하신데, 나이 사십도 안된 아들이 흐느적거리며 거의 네 발로 내려가니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우리 몸은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고, 불용성 위축의 정도가 너무 심해지지 않게 동네 뒷산이라도 자주 다녀야겠단 생각도 들고. 그래서 가능한 평소 운동으로 준비되지 않은 분들께는 한라산과 같이 높은 산 등반은 추천하지 않고 싶다.
왕관릉과 용진각 샘을 지나는 관음사 탐방로의 경치는 성판악 탐방로에 비해 훨씬 탁월했다. 높은 산새와 중간중간 보이는 울창한 숲,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침식되어 형성된 기묘한 바위의 품세는 눈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그 피톤치드 가득한 공기를 한껏 마시면 기분 또한 상쾌해진다. 무릎이 아파 잠시 헬기장 근처 그늘에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동네 뒷산이라면 그저 그 자리에서 낮잠이라도 한숨 자고 싶었다. 차 소리, 사람 소리 들리지 않고 고요한 한라산 한가운데, 그러한 환경 때문에 등산인들은 그리도 산에 많이 다니나 보다. 본디 자연 그대로의 모습보다 도시의 인위적인 모습을 예찬하는 나조차도 자연이 주는 편안함에 한껏 취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어느덧 개미등과 탐라계곡을 따라 다행히 관음사 탐방안내소까지 잘 도착할 수 있었는데, 하산하는데만 대략 4시간가량이 걸렸다. 이제 집엘 가야 하는데. 택시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같이 등산을 한 아버지와 이번에 새로 가족이 된 제수씨는 카카오 택시를 이용해 보지 않았다고 하여, 나는 카카오 택시를 소개하며 택시를 호출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택시가 갑자기 우리 눈 앞에 나타나서, 위치도 물어보지 않고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니 아버지는 연신 세상 참 좋아졌다며, 어서 빨리 카카오 택시를 깔아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렇듯 인적이 드문 등산로와 같은 곳에서, 제주와 같이 타지인이 많은 곳에서는 카카오 택시가 또 그 빛을 발하지 않나 싶더라. 아무래도 카카오 택시 덕에 굳이 택시를 잡으러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최단거리를 이미 카카오 네비가 알려주니 등쳐먹을 수도 없는 것이고 말이다.
카카오 택시를 타고 우리는 한라산도 식후경이라고, 요즘 핫하다는 맛집인 '도두 해녀의 집'에 물회를 먹으러 갔다. 전복과 성게의 싱싱함과 한치의 식감이 어우러진 절묘한 조합이었다. 알아보니 성게는 백종원 씨가 따로 덜어놓고 맛을 보라고 조언했다고 하던데, 괜히 섞어버려서 나도 성게의 맛은 잘 느끼지 못하긴 했다. 밑반찬도 4가지인데, 다 맛있었다. 개인적으론 물회를 그다지 즐기지 않아 물회가 아주 맛있진 않았지만, 한라산을 등반하고 난 후 한라산(?)과 곁들여 먹기에는 적절한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우리의 한라산 등반은 끝이 났고, 나는 집에 와서 한숨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손주들을 친히 잘 봐주신 우리 어머니의 배려 속에, 오래간만에 즐거운 산행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애들을 잘 보아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리며, 다음엔 좀 더 단련하여 애들을 데리고 리드할 수 있을, 그런 한라산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