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Nov 02. 2017

외국어를 또박또박 말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에는 영어는 빨리 말하는 게 잘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같이 살던 호주 친구들을 흉내 내며 빨리 말하는 것을 습관화하였다. 이건 사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정말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긴 하는데, 실제 비즈니스 현장으로 가자면 딱히 또 그렇지는 않다.


십여년 전, 신입사원 시절 우리 사무실에 미국 기술사를 준비하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미국 기술사회에서 이메일이 오지 않아 응답을 기다리며 발만 동동 구르고 계셨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대신 전화를 해주었고. 다음 주에 처리 예정이란 답변을 전해줬을 뿐인데, 이후 나는 영어 잘하는 기술직이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후 중동에서 근무를 하게 되고, 거기서 다행히 한국 회사들과 일을 하지 않고 인도나 영국 회사들과 일을 하게 되고, 영국인 및 필리핀 매니저/엔지니어들과 일하며 자연스레 영어 구사 및 작문능력을 길러왔다. 고맙게도 당시 같이 근무하던 임원 분도 영국에서 계약관리 석사를 한지라 내 이메일을 빨간펜 그어가며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그런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정말 내가 기술직 치고는 영어를 잘하는 것이란 생각을 은연중에 해오긴 했다.  


사람들은 시험이 공부와 상관없는 것이란 말을 종종하는데, 나에게 토익스피킹 시험은 그렇지 않았다. 중동 근무 후, 회사에서 보라고 해서 처음 시험 본 토익스피킹 시험은 나에게 좌절의 시작이었다. 나름 시험장에 가서 쏼라쏼라 빠르게 대답하고 왔는데 점수는 대학생 아무나 가서 받을 수 있는 수준. 이후 좌절의 연속이었던 수개월 동안 토익스피킹 온라인 강의를 한번 들어봤다.


그때 온라인 선생님이 하던 말씀이, 토익스피킹 시험은 또박또박, 얼마나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느냐를 평가하는 시험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다시 나의 스피킹 습관을 되돌아 보고, 다시 그래머 인 유즈를 한번 훑어본 후 시험을 보니, 썩 만족할만한 레벨의 점수를 얻게 되었다.


어제 오래간만에 어느 외국의 사무실과 Video Conference를 실시했는데, face to face meeting이 아닌 VC의 경우는 정말 그 명료하고 적확한 표현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제 아무리 유창하고 빠르게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come again?" or "I'm sorry?" or "One more time please?"과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하면 회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먼 거리에서 이야기하다보면 시간지연(Latency)를 고려해야 하기도 한다. 그러한 것을 고려하지 않고 서로 빠르게 자기 말만 하다보면 공허한 랩배틀이 되곤 한다. 양쪽에 있는 대략 십여 명의 사람들이 스피커를 통해 모두 제대로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는 또박또박 문법에 맞는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토익스피킹 시험과 같이 말이다.


때론 그렇게 객관적 능력을 체크해볼 수 있는 시험도, 인생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Reference의 필요성: 출근길 잡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