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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Feb 02. 2016

갑질 문화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갑질 문화가 나쁘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 인지하는 바입니다. 얼마 전 대한항공, 남양유업 등 다양한 사건들이 우리의 마음을 멍들게 했습니다. 다 같이 문제는 인식하는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논의가 부족한 것 같아 글을 작성해 봅니다.


필자는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저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국내공사할 땐 그러한 갑질 문화가 심했고 해외공사를 할 땐 비교적 수평적 계약관계를 유지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해외공사는 중동에서 했었고, 당시 갑은 영국 회사였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계약서의 차이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서면 지시;written instructions 문화의 유무에 따라 이러한 갑질 문화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비롯된 것으로 조심스레 추측을 해봅니다.


얼마 전 변호사이신 지인께서 가끔 자료가 하나도 없는 사건을 받으면 황당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일을 할 때에는 계약서를 잘 만들고 문서로 이것저것 잘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단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현업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갑을관계에 있어서 동등한 수준의 계약서를 만들기도 어렵고, 선뜻 문서를 주고받는 것도 힘듭니다. 저의 경우에도 6~7년 전인가 갑에게 소송할 건이 있어 서류를 들고 갔다가 접수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한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대로 당할 수는 없어서 바로 내용증명으로 보냈다가 더 큰 욕바가지를 듣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잘 해결되어 웃고 지나가는 에피소드이지만, 갑에게 불리한 문서를 보낸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건설공사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기본으로 쓰는 계약서는 행정자치부에서 예규로 나오는 ‘공사계약 일반조건’ 일 것입니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대부분 FIDIC*이라는 국제단체에서 작성한 계약서를 주로 기본으로 사용합니다. 두 계약서를 이리저리 살펴보다 우리나라에 서면 문화가 부족한 이유는 이러한 기본 계약서에도 어느 정도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FIDIC : The Federation Internationale des Ingenieurs Conseils, 영문명 : International Federation of Consulting Engineers


먼저 FIDIC Redbook을 한번  살펴봅시다. 3.3항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3.3 Instructions of Engineer “Whenever practicable, their instructions shall be given in writing”. 

한글로 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3.3 감리자의 지시 “가능한 한 지시는 서면으로 하여야 한다.” 


아울러 FIDIC에서는 피치 못하게  갑으로부터 구두로 지시받아 일을 했더라도 을이 갑에게 2일 내에 서면확인서를 들이 밀 수 있고, 갑이 이에 대한 회신이 없을 시, 서면 지시인 것으로 인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 ‘공사계약 일반조건’에는 이러한 항목이 있을까요? 나름 꼼꼼히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는데, 공사계약 일반조건에는 그러한 서면 지시에 대한 조항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FIDIC 3.3항에 해당하는 조항이  제16조(공사감독관)인데, 이 조항에도 서면 지시 같은 문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공사감독관이 그냥 말로 지시해도 됨을 어느 정도 허용해 준다고 해석됩니다.


자기가 지시한 사항이 서면으로 남고 안 남고의 차이는 안드로메다와 우리 은하의 차이만큼이나 어마어마합니다. 문서로 남는다는 것은 결국 언젠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젠가 읽은 조우성 변호사님의 브런치 글을 보면, 갑이 을에게 구두로 알루미늄 판재 계약을 할 것으로 얘기해서 을이 프레젠테이션에 시제품까지 생산했는데 갑자기 취소해서 억울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미 을은 회사에 계약이 된다고 다 보고를 해 두었는데, 갑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만약 이메일로라도 서로 교신을 했더라면, 을은 조금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서면 지시가 있었더라면 섣불리 갑도 자신의 지시를 번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해외 관련 업무를 하다 보면 이메일이 하루에 백통 이상씩도 쏟아집니다. 흔히 국내에서 업무 하던 사람들이 처음 와서 기겁을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쓸데없이 너무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 문제겠지만, 이러한 문서 문화는 갑질 하는 사람들에겐 조금 특효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갑이 어떤 지시를 내렸을 때, 문서로, 이메일로 지시해달라고 하는 말이 경우 없지 않은 그런 사회가 되면 이러한 갑질 문화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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