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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r 10. 2016

행복의 기원을 찾아서

행복의 기원, 서은국, 21세기 북스

저의 삶의 목표는 행복이었습니다. 행복해지자고 공부를 열심히 했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수능시험 볼 땐 교실에서 도망가고 싶었고, 취직 준비를 할 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한밤 중에 장염으로 세브란스에 실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인간관계에 어려워했고, 번듯한 가장이 되기 위해 직장에서도 가끔 관두고 싶어도 억지로 출근한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행복이라는 것을 손에 얻고자 저는 계속해서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행복이라는 게 말이지요. 애초에 어떤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영어로 표현한다면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라 합니다.


저자는 현재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입니다. UC어바인에서 4년 만에 테뉴어를 받을 만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행복에 관한 심리학자입니다. 이 책은 행복에 대한 희망이 난무한 책이 아닌, 냉정한 분석을 기반으로 한 '차가운' 책입니다. 대부분 논문 및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실험 결과로 행복에 관해 논합니다. 그렇지만 이 서은국 교수님이 정말 고수인 게, 책이 전혀 딱딱하지 않고 잘 쓰인 SNS 포스팅같이 글이 술술 읽힙니다. 책에도 언급된 오컴의 면도날처럼 불필요한 부분은 면도날로 슥삭 도려내고 꼭 전달해야 하는 주제만 언급합니다. 그리고 종종 아재 개그를 곁들여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게도 합니다. ^^ 200페이지 밖에 되지 않고 쉬운 문체로 써서 휘리릭 읽을 수도 있었지만, 저는 천천히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만큼 한 장 한 장에 귀중한 연구결과나 내용이 많았던 탓이지요.


""행복에 대한 지침들은 대부분 그렇다. "불행하다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p.190""


저자는 행복을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뇌에서 발생하는 생물학적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어느 정도 유전적인 요인도 상당히 지배한다는 게 현재 학계에서 받아들여지는 통념이라 합니다. 같은 환경, 같은 관계에서도 어떤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행복한데 너는 왜 그러니. 이런 말은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책이 행복에 대한 새롭고 과학적인 해석만 내놓았다면 굳이 추천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가치는 그러면 그 행복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에 있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은 시간을 소비하는 패턴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동일한데, 행복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에 비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통계상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라 아주 일반화시키기는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회사 동료, 친구도 될 수 있지만 가족도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항상 양날의 검과 같아 누구에게나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과의 관계가 행복에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서구권과 동아시아의 가장 큰 문화적 차이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일 것입니다. 통계적으로 서구권이 느끼는 행복이 동아시아보다 훨씬 높은데,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은 관계여야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과 집단의 뜻이 충돌할 때 개인의 손을 들어주는 사회, 집단의 손을 들어주는 사회. 이 가벼운 차이가 그 사회의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사실 GDP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어엿한 선진국입니다. 우리가 어려서 생각했던 선진국, 예컨대 뉴질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CIA world factbook에 따르면 우리나라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습니다. 그 잘 산다던 영국, 일본, 핀란드도 우리보다 인당 국민소득;GDP per CAPITA 순위에서 몇 계단 높을 뿐이지요. 이렇게나 잘 살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다지 행복감을 크게 못 느끼고 살아갑니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싱가포르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경제력의 차이가 아니라 문화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지요.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심리적 자유 감이 저하하고, 만성적인 긴장과 피로가 존재합니다. 선배 앞에선, 부장님 앞에선, 선생님 앞에선 항상 긴장해야 예의 바른 놈일 테니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 즐거운 소풍에 가서도 이런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내일 소풍 가서 즐겁게 놀도록. 단, 개인행동은 하지 말 것. p.165"

개인적으로 제가 군대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병 때인가 혼자 뒷동산에 올라갔다가 기가 막히게 혼난 경험이 있습니다. 군대는 개인행동을 경멸하는 곳입니다. ㅠ
이러한 집단주의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선배의 평가, 부장님의 평가, 선생님의 평가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어느 정도 '획일화'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곤 하지요. 예컨대 좋은 학교/학생의 기준, 결혼을 해야 되는 시기, 아이를 낳아야 하는 시점, 뭐 이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획일화된 무언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해지게 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단 하나의 비 획일화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괴로워하곤 하지요. 예컨대 대학에 졸업했는데 왜 취직을 하지 않느냐, 나이가 찼는데 왜 결혼할 생각을 안 하느냐,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데 애를 왜 안 낳느냐, 이런 걸 물어보는 게 비일비재한 사회.
결국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획일성은 조금 내려놓고 각자 개성에 맞게 살아가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저는 본디 서평을 쓸 때 감상을 주로 쓰지 요약은 별로 하지 않는데, 이번엔 감상보단 요약에 조금 치우친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행복의 기원'이란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책을 보면 앞서 언급한 내용들보다 훨씬 깊고 재미있는 분석들이 많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 말합니다. 저도 오늘은 야근도 회식도 없이 집에 빨리 들어가서 우리 어여쁘신 아내님과 치맥이라도 해야겠습니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21세기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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