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어버린 경제와 관련된 책
경제 관련 책을 사서 단숨에 읽은 적이 얼마만인지요. 그러니까 정확히 어제 퇴근길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사고 지하철에서 내내 읽다가 마지막 한 챕터가 남았길래 우리 동네 지하철 역에서 다 읽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흡입력 짱입니다. 고백건대 해외 관련 업무를 5년째 하고 있지만 환율에 대해 상당히 무지한 편입니다. 직관적 판단이 아직까지 부재합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신문기사를 읽으면 아직까지 직관적으로 이게 어떠한 결과를 발생할지 잘 와 닿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제지표 개선에도 어제 비둘기파적인 FOMC 영향으로 주식시장 등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심리가 확대되며 달러화 약세, 신흥국 통화 강세 분위기로 돌아섰다
그나마 저놈의 비둘기파 매파는 티모시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은 덕에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만, 달러화 강세/약세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선 매번 손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이해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 박사님, 채훈우진아빠라는 필명을 가진 이 분의 신작, "환율의 미래"는 참말로 값진 출현이었습니다. 금년 2월 5일에 초판이 나왔는데, 2월 17일에 5쇄까지 찍어냈습니다. 인기가 어마어마 한가 봅니다. 뭐 저도 ㅍㅍㅅㅅ를 휙휙 돌려 보다 어느 부엉이 소굴의 값진 평을 보고 샀으니, 입소문은 꽤나 타고 있나 봅니다.
책으로 잠시 들어가 보면 인상 깊은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책이나 언론에서는 '원/달러 환율'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왜 이 책에서는 '달러/원 환율'이라는 표기법을 쓰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중략) 달러/원 환율은 1달러에 대한 원화의 교환비율이다. 이제 환율이 1,100원에서 1,200원이 되었다면? 그렇다. 달러가 '기준'이니 환율이 상승하면 '달러 강세'인 것이다. P.25
환율 표를 보다 보면 가장 큰 의구심이 드는 것이 다른 나라는 다 USD/KRW같이 달러가 앞에 오는데 유로화나 파운드화 같은 놈들은 EUR/USD, GBP/USD같이 달러가 뒤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에선 파운드화가 달러화보다 먼저 세상에 출현하고, 기축통화였던 이유라고 합니다. 달러든 파운드든 어느 통화를 먼저 언급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기준이 되는 통화가 '앞자리'에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턴 꽤나 클리어합니다. 언놈이건 앞자리에 오는 놈 기준으로 숫자가 오르면 강세, 내려가면 약세인 것입니다.
저자는 또 싱가포르의 고정환율 제도를 예로 유로화의 위기에 대해 논합니다. 달러화에 대한 고정환율을 소규모 경제국가에 있어서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경제규모가 큰 국가에 있어서는 금리 조절이 불가하여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양적완화로 위기를 탈출하고자 하는 유로화의 미래에 대해서는 1920년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이 결국엔 보수적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줍니다.
사실 경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돈을 많이 벌거나 회사에서 업무를 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게 또 정치의 영역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1920년, 독일, 뭐 하나 떠오르는 인물 있지 않은습니까? 히틀러, 나치의 출현입니다. 1차 대전의 패망으로 빚을 산더미같이 진 독일은 당시 3년 만에 물가가 1조 배 올랐다고 합니다. 알베르트 슈페어라는 분이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이곳의 물가는 정말 싸다! 하루 숙박에 40만 마르크, 저녁 한 끼에 180만 마르크, 우유 한 통에 25만 마르크.
결국 경제가 망하면 요상스러운 선동가들이 출현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그러니까 나치당 같은 놈들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진 다는 것입니다. 이런데 경제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지요.
책은 환율에 대한 기본지식, 그리고 각종 통계자료를 찾고 활용하는 방식을 알려줍니다.(캡처된 화면을 보면 홍 박사님 엑셀 2003 쓰시나 봅니다. ㅋ 뛰어난 이코노미스트도 우리 회사 부장님이랑 비슷한 수준의 컴퓨터 활용능력이랄까. 디스는 아닙니다만... :D) 나아가 이 책은 유로화의 미래, 경상수지와 환율과의 상관관계, 그리고 채찍 효과와 아시아 주요 통화의 미래에 대해 논합니다. 또박또박 읽어가다 보면 정말 환율의 세계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 주관적 수준에서 말입니다. 저보다 훨씬 경제지식이 해박한 분들이나, 경제활동을 하고 계시지 않은 분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이상의 분석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세상은 매우 복잡한 곳이라는 점'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이 금융시장이나 실물 세계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으며, 특히 한국처럼 공급사슬의 끝부분에 위치하는 나라는 여러 면에서 고려할 게 많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P.147
참으로 훌륭한 말씀 아닙니까. 주변에 보면 정말 공부라고는 한톨도 안 하며 경제 및 국제정세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왈가왈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참 세상의 복잡성만 깨닫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울러 저자는 이런저런 통화의 미래를 예측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깁니다.
진정한 전문가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P.179
저 또한 저의 전문분야인 건설, 해외건설의 견적에 있어서 조금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맞다고, 의심 없이 생각하는 순간, 전문가에서 점쟁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저자는 안전하게 수익을 극대화하는 투자법에 대해 논합니다. 결론은 음의 상관관계를 가진 미국 채권과 한국 주식을 적절히 분배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따분하지만 잃지 않고 또박또박 벌어나가는 것. 그래서 투자에서 꾸준하게 노후 먹거리를 벌어들이는 것. P.243
고수의 진심 어린 조언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큰 돈을 벌려는 사람은 크게 망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비록 큰 돈은 바라지 않아도, 내 수준에서 적당한 규모의 저축이나 투자를 통해 행복한 노후를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목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모든 독자의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기도한다고 하는데... 홍 박사님의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저도 기도합니다.
환율의 미래, 홍춘욱, 에이지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