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Mar 15. 2016

우리가 남이가? 그래, 우리는 본디 남이다.

평화로운 직장생활을 위한 소소한 회사원의 생각

어제 아침 어느 직장 설문조사에서 이런 걸 봤습니다.
Q : 동료로서 이런 모습 부탁해요~
가장 많은 퍼센트를 기록한 답안을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A : 네 일, 내 일 나누지 않고 협업하기
오우~ 저는 식겁했습니다. 니일 내일 나누지 않고 협업하기라니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처음 해야 하는 일이 업역을 나누는 일입니다. 이를 영어로 하자면 SOW; Scope of works, 혹은 DOR; Division of Responsibility(이하 DOR) 이러한 것인데, 이는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해야 할 일 목록을 엑셀이나 워드에 차분히 정리한 후, 각 주제;Activity별로 담당자를 지정한 후, 제한 기간;Due date까지 수립해야 이 DOR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그 DOR을 바탕으로 간단한 공정표;Programme을 작성하여 관리하면 금상첨화일 것이고요.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PM:Project Manager이라면 응당 이 DOR과 공정표를 기준으로 업무 진도를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직원이 3명 있다고 치면 각 직원별로 DOR은 어떻게 배분되었는지, 각자 어떻게 자신의 공정관리를 하고 있는지 체크를 하고, 공정이 느려져 필요하다면 따라잡을 방안;Mitigation plan 등을 계획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은 말입니다. 이 DOR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냥 가는 PM들이 보입니다. 이러한 분들이 보통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남이가”… 그렇습니다. 네 일, 내 일 나누지 않고 협업하기를 사랑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설령 DOR상에 내가 할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PM은 그냥 팀원 모두를 까기 시작합니다. 이게 뭐냐고. 뭐가 하나도 관리가 안되고 뒤쳐지기만 하느냐고. 그러한 공포 분위기에서

“이건 DOR상 제 일이 아닌데요…”

라고 말했다간 아마도 저기 저 안드로메다까지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질 것이 자명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돌아가는 팀이라면, 그러면 안 됩니다. PM은 처음 만들었던 DOR을 기준으로 업무성과를 따져야 하고, 필요하다면 수정;Revision을 통해서 DOR을 다시 작성해야 합니다. 담당하는 업무도 아닌데, 니 일 내 일이 어디냐는 식으로 혼내기 시작하면 담당자의 입장에선 업무를 열심히, 그리고 계획적으로 할 요인이 상실되기 마련입니다.

‘어차피 열심히 해봐야 다른 직원 뒤치다꺼리 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뭘~’

요러한 생각이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간혹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중에 오로지 갑이 되어야겠다는 일념 하에 공무원을 준비하는 분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공무원 응시인원은 뭐 이제 거의 수능시험 응시인원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무원이 정말 갑일까요? 공무원의 갑은 시의원, 국회의원 같은 양반들입니다. 그리고 이 국회의원의 갑은 시민일 것입니다. 시민은 돈벌이를 해야 하니 어느 회사에 취직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 중소기업은 시민의 갑입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납품해야 하는 대기업이 갑이고. 이 대기업에게는 다시 각종 규제와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갑입니다. 결국 갑과 을은 돌고 돌게 되어 있어서 영원한 갑이나 을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만 끝나면 이 녀석 겁나 나이브한 놈이네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그게 그렇게 쉽진 않습니다. 엄연히 계약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남이가 (a.k.a 니 일 내 일 나누지 않고 협업하기) 정신이 사회에도 만연하여 상기 언급한 갑을관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공무원이, 혹은 납품처 대기업 직원이 계약서에 언급된 사항과 다른 것을 요구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컨대 국정감사자료 혹은 내부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걸 하도급 회사나 용역회사에 공양식을 보내 작성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걸 왜 내가 하냐고, 이건 국정감사 자료니 혹은 너네 사장님 보고 자료니 갑님이 알아서 하세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 당신 하는 일이고, 당신 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나오면 딱히 할 말이 없는 정신이 이러한 “니 일 내 일 나누지 않고 협업하기”정신입니다.


집단주의, 얼마 전 읽은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에서 우리나라 불행의 근원으로 꼬집은 것이 이 집단주의입니다. DOR을 나누고 그에 따라 일을 진행하는 것이 상당히 개인주의적으로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그리고 각자가 갑을관계를 떠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개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주의라 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하는 그런 말뜻은 아닐 것입니다. 애초에 계약서든 DOR이든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이대로 각자 열심히 일하는 것, 이것이 개인주의라면 개인주의인 것이지요.
축구를 하는데, 우리 팀이 밀리고 있습니다. 감독이 최전방 공격수에게

“야, 우리가 밀리고 있는데 너 자꾸 거기 중앙선 근처에서만 어물쩡 거리고 공만 기다리고 있을래? 우리 골대 앞으로 와서 공을 막아야지…”

이런다면 그 팀의 승패는 보나 마나 뻔할 것입니다. 공격수가 공격수 위치에 있지 않으면 반격의 기회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축구든 업무든 각자 맡은 일, 업역은 정해져 있습니다. 각자가 맡은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 수행해 갈 때 프로젝트는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물론 뭐 D-day가 며칠 안 남았는데

“그건 제 일 아닌데요. 제가 할 건 다 끝냈으니, 저는 집에 가겠습니다.”

이런 걸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설령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처리하지 못한 일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서로 협업해 가야지, 막판까지 끌다가 누군가에게 떠넘기며

“네 일, 내 일 나누지 않고 협업하기”하자는 식으로 나온다면 답 없다는, 뭐 그런 말입니다.

결론은 그렇습니다. 초딩때부터 들었던 학습지 CF 문구였는데,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이거 스스로 펜이라도 전해드려야 하나... (출처 : 재능교육)


배경 사진 출처 : unsplash.com/photos/el2EBT7E0HQ

매거진의 이전글 메모 습관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