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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Apr 07. 2016

인간관계 숫자론

숫자를 통해 본 케이스별 인간관계-조직 관리론

1
혼자 심심해하지 않을 줄 알아야 자주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 혼자서 책을 보든, 게임을 하든, 용산 가서 하루 종일 신상 아이템을 구경하든, 백화점 가서 혼자 쇼핑을 하든, 하다못해 혼자 흔들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보며 멍을 때리든 혼자 무엇이든 시간을 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피곤하지 않다.


2
인간은 궁극적으로 소유욕이 강한데, 이게 사회제도와 맞물려 거의 본능처럼 찾게 되는 게 피앙세 같은 존재다. 타자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본다면 사실 이 하나밖에 없는 친구나 연인과 갈등이 발생할 때 나의 밑바닥이 드러나곤 한다. 대중, 혹은 집단 속에선 가면을 쓰고 그저 착한 사람 행세를 할 수 있지만, 둘만이 속한 이 가까운 공간에서는 어떠한 마스크도 없이 오롯이 있는 그대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갈등 해결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신뢰감 형성은 사회 속에 살아갈 때 모두가 나를 배신하여도 이 사람만은 나의 손을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형성되고, 이는 곧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3
은근히 짜증 나는 사람의 조합인 이 셋은, 이 사회의 모듈과 그다지 맞지 않는다. 예컨대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을 가도 세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버스 좌석은 없고, 교실에 둘씩 짝을 이루어 앉게 하지 셋이 짝(?)을 이루게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셋은 어느 정도 무게중심이 맞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롱런하는 죽마고우는 대개 셋이다. 셋 중 둘이 논쟁이 붙으면 나머지 한 명은 어느 한쪽에 무게를 실어줄 수 있다. 논쟁을 하는 둘은 서로 자기가 맞다고 우기지만, 결국 나머지 한 명이 손을 들어주면 게임은 싱겁게 끝나 버리고 만다. 이 싱거움이 때로는 극단의 논쟁을 종식시켜줌으로써 평화로운 관계를 이루게 해 준다.


4
모임의 가장 이상적인 숫자인 이 넷은,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선호하는 조합이다. 밥을 먹어도 테이블당 네 명이 앉을 수 있고, 산업화 시대 전통적 핵가족 구성원의 숫자도 4인 가족이다. 비행기를 타도, 버스를 타도, 누군가가 혼자 따로 앉는 희생을 할 필요도 없다.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으며, 적당히 내 의견을 펼쳐도 경청할 수 있는 조합이다. 나는 어느 모임이든 이 4의 조합을 만드려고 노력한다.


5
이제부턴 슬슬 조직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조직 관리론의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 회사로 따지면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 이 다섯 명이 조화롭게 한 팀을 만든다면 다섯이다. 이 다섯 명으로 구성된 팀은 서로의 목표도 일치할 수 있고, 성과를 적절히 배분할 수도 있다.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도 굳이 함양시키려 들지 않아도 알아서 하나가 되는 조직이다. 물론 이 다섯 명 조직의 장에게 인사권과 예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집행권이 있을 때 얘기다. 그러한 권한도 없고, 팀원들과 성과를 공유하기도 애매한 이름뿐인 팀장이라면 여기서 그다지 의미가 없다. 책임을 지라고 할 때엔 그만한 권한도 주어야 하는 것이다.


10
군대에서 소대로 편성하는 인원이 대개 이 열명이다. 두 오;column로 앞서 언급한 다섯 명씩 줄을 서서 행군하면 나오는 숫자가 이 열명이다. 여기까진 아직 나이스 하다. 부장 1 차장 1 과장 2 대리 4 사원 2, 요정도 되면 다섯 명보단 조금 큰 조직이지만, 팀 내에 두개의 조직을 운용 가능하며 필요 시 경쟁과 단합을 적절히 조합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20
서로 의사소통되는 조직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학교에서도 적용되는데, 이 숫자를 넘어서게 되면 일 년 내내 하루 종일 같은 반에 있어도 서로 한마디도 안 하고 지낼 수 있다. 담임선생님도 이 숫자를 넘어가게 되면 반 인원 전체의 이름을 외우기도 어려워지며, 각자의 신상에 대해 파악하기 힘들다.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사고를 겁나게 치고 다니는 애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냥 부속품의 하나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회사서도 마찬가지다. 일대일로 대화를 하루에 한 명씩 한다 쳐도 working day로 오롯이 한 달이 걸린다. 결재서류 하나를 보고할라 쳐도 줄을 서야 하고, 줄을 안 선다 하더라도 때를 놓치기 쉽다. 이러한 숫자가 모여서 회식이라도 한다? 그건 그냥 공연을 바라보는 청중의 입장이 되어 입에 자크를 채우고 앞에 있는 음식만 깨작깨작 먹는 것이다. 단합은 저 멀리 검푸른 동해바다 심연 속으로 아득히 멀어져 간다.


50
이쯤 돼서 단합을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요, 사치이다. 표준 정규분포 그래프에서 표준편차를 1배를 놓아 상대 도수를 70%로 만들든 2배로 놓아 95%를 만들든 양 끝단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을 50명 갖다 놓는다 하더라도 그중에 15명이든 2.5명이든 단합과는 관계없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을 놓고 왜 단합이 되지 않는다느니, 열정이 없다느니 욕해봐야 나오는 것은 없다. 어차피 그런 말하는 사람 자체도 연말에 평가를 하게 되면 그 표준 정규분포를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70억 명이 살아가는 지구에서 수천 명, 수만 명이 속해있는 조직은 무지하게 많이 있다. 공무원이 그렇고 대기업이 그렇고, 하다못해 저기 저 반월공단의 어느 작은 중소기업도 50명은 넘는 조직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비효율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정답은 권한의 위임;Delegation of power일 것이다. 적정 수준의 조직 인원, 그러니까 내 생각엔 10명 수준의 팀을 구성하고 그 팀장에게 인사와 예산에 대한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며 여러 팀 간의 경쟁을 유발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그 가족 같은 뭐 시 긴가 하는 요상스러운 개념보다는 적절히 쪼개어 내부 간 경쟁을 유도시키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인 조직운영이 되지 않을까 하고 이 아침에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문득 어제 생각난 아담 스미스의 말로 글을 마쳐본다.


식탁을 준비할 때 우리는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인정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육점, 양조장, 빵집 주인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본성이 그러하다. 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그것을 이용하여 조직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무시하고 인정에 호소하는 조직관리를 하게 되면 곤란한 것이다.


배경 사진 출처 : unsplash.com/photos/96DW4Pow3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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