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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재의 냉면예찬

by 퀘벤하운

감자가 많이 재배되는 개마고원 근처가 기원인 함흥지방 냉면은 면발이 질기고 잘 끊어지지 않는다. 치아상태가 고르지 않은 나에겐 그걸 먹는 것도 때론 곤욕이다. 하지만 본디 평안도 메밀을 주 재료로 삼는 평양냉면은 약간의 텁텁한 식감과 더불어 잘 끊기는 맛이 있다. 육수는 투명하여 맹물인지 고기를 우려내긴 한 건지 분간이 안 가나, 반찬으로 한 개 주는 그 얇고 불긋한 무채를 한 점 얹어 먹으면 말끔한 맛이 일품이다. 차디찬 제육과 수육이 한 점씩 얹어져 있는데, 초중반에 같이 먹을지 중후반에 얹어 먹을지 상념에 빠지는 것도 희망찬 고민이다. 정말 파와 고춧가루를 제외하면 물과 면밖에 없는 이 냉면이 왜 맛있는지, 왜 이리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일단 그 맛에 빠져들면 십 미터든 이십 미터든 그 긴 줄을 기다리면서도 침샘이 자극된다.


젓가락으로 휘이 말아 한 점을 올려먹으면 간간히 느껴지는 파의 시원함과 청양고추의 알싸함. 맹맹한 국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소량의 고춧가루는 혀의 미각을 자극하여 숟가락이 아닌 대접으로 국물을 들이키게 만든다. 쉴 새 없이 먹다 보면 대접의 밑바닥이 보이고, 아주머니의 눈초리와 창문 넘어 보이는 대열의 등쌀에 못 이겨 자리를 일어서게 된다. 계산하며 둘러보면 선주후면을 하고 계신 비즈니스맨들이 보이는데, 어떠한 사연이 있길래 대낮부터 양복을 차려입고 선주를 하시는지 궁금 키도 하다. 영수증을 받아 들고, 오늘같이 햇살이 좋은 날이라면 점심시간 청계천을 거니는 것도 꽤나 괜찮은 산책이다. 직장에 다니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이렇게 소소한 재미를 찾는다면, 꽤나 할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이 좋아지는 부분이 있다 하면, 이런 마음에 쏙 드는 맛집을 찾아다닐 때가 아니런가. 다음엔 제육을 먹으러 와야지.


을지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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