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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n 06. 2016

기본소득제에 대해

스위스 국민투표를 통해 바라본 기본소득제에 대한 생각

어제(2016.05.05) 스위스에서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기본소득(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70%가 넘는 국민들이 반대함에 따라 당분간 수면 밑으로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스위스에서만 존재하는 논의는 아니고, 현재 핀란드, 네덜란드 등에서 일부 시행 중이다. 이 제도는 미래 자본주의 사회에선 아마도 지속적으로 논의/도입될 것으로 생각되어, 나의 의견을 조금 정리해 보고자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며 사람마다 각기 다를 수 있다.




아래 그래프는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의 도표이다. 

미국과 유럽의 불평등(소득 최상위 10분위의 총소득 비중)을 보여주는데, 유럽만 놓고 보자면 1910년대에 한차례 하락이 있었고, 1930년대에 두번 째 하락이 있었다.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1914년 1차세계대전과 1939년 2차세계대전, 그 사이 존재한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은 다소 평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전쟁의 기억이 조금씩 잊히는 1970-80년대부터 다시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참고로 한국은 벌써 안타깝게도 저기 유럽보단 미국 쪽에 더 가깝다고 한다.

알파고로 시작된 인공지능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논의는 아니다. 벤츠나 현대차는 물론, 구글과 애플 같은 IT기업들도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고, 2020년 경에는 실제로 출시될 예정이라 한다. 전에 노르웨이에 가서 경험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미 북유럽 공항에는 티켓팅 해주는 사람도 없고 짐도 혼자 실어야 한다. 아울러 고속도로엔 RFID가 상용화되어 톨게이트가 없고, 숙박시설도 전화를 통해 상담하고 카드번호로 결제, 그리고 비밀번호만 누르고 들어가는 시스템이 완벽히 구현되고 있었다. 결국 진입장벽이 낮은 직업은 벌써 해체되고 있고, 알파고같이 인공지능의 발달이 계속된다면, 의사나 회계사 등 진입장벽이 높은 직업도 변화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상기 언급한 두 가지 관점이 현재 기본소득제가 논의되는 주된 문제의식으로 보인다. 계속해서 불평등이 지속된다면 전쟁이나 대공황의 공포는 계속될 것이며, 자본주의는 역사의 종말을 맞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울러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인류가 할 수 있는 직업선택의 제약이 따르고,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면, 일을 통해 소득을 발생한다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기본소득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결국 언젠가 맞딱뜨려야 하는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밀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은’ 아니다. The economist는 현재 각국의 복지예산을 가지고 기본소득제를 실시한다면 얼마만큼의 추가 세액을 부담해야 하는지 계산해주는 Calculator를 제시했다. (그림 2 : 홈페이지 링크 www.economist.com/blogs/graphicdetail/2016/06/daily-chart-1) 본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에 한 달에 100만 원가량 지급한다는 가정을 해보면, 28%의 세금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참고로 현재 스위스가 약 월 300만 원의 기본소득제 투표를 실시했지만, 구매력을 비교한다면 스위스의 GDP는 59,700불로 우리나라의 173% 수준이니 거칠게 추정해 보자면, 한국에선 대략 170만 원 정도 수준일 것이다. 핀란드가 시범운영 중인 기본소득제는 약 10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는데, 구매력 고려 GDP로 따진다면 이는 한국에서 약 83만 원 수준일 것이다.

상기 표를 통해 이야기하자면, 월 100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 스위스 정부가 필요한 추가 세액 예산은 7%이고, 핀란드 정부는 4%에 불과하다. 헌데 한국은 28%가 더 필요하고, 이게 멕시코로 가면 61%까지 올라간다. 현재 기본소득제가 현실로 다가온 국가는 핀란드이다. 핀란드는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해 2015년 기업인 출신 유하 시필래가 총리로 취임하였으며, 약간 우파적인 성향이 있는 이 정부에서 월 800유로(약 100만 원)를 지급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스위스도 월 300만 원 수준이 아니라 월 100만 원 수준으로 기본소득제를 추진했다면 아마 투표가 박빙이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월 100만 원은 GDP at PPP를 고려하면, 한국에서 대략 57만 원 수준이며 이는 딱히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만한 수준의 기본소득은 아닐 것이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ETH zurich)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인당 월 생활비 예시가 나와 있는데, Single person 기준 집 월세가 약 95만 원, 건강보험이 35만 원, 통신/교통비만 26만 원이다. 이에 식료품 및 의복까지 하면 77만 원, 등 일반적으로 총 270만 원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스위스는 땅덩이가 작아서 뭐 도심-시골 물가 차이도 그다지 없을 듯. (참조 : www.ethz.ch/…/we…/services-and-downloads/cost-of-living.html)

기본소득제가 실현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할까? 일단 현재 운영 중이 복지예산은 모두 이쪽으로 가야 하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는 거의 모두 사라질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분야에 종사 중인 공무원 및 관련 업체 분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일자리를 잃어도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싶긴 하지만)

참고로 상기 도표를 참조하면 2016년 기준 한국의 국가예산은 386.7조 원 수준이며, 이 중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면 급격히 예산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보건, 복지, 노동+일반, 지방행정+교육의 부분만 보면 대략 237조 원으로 61%에 차지한다. 사실 이 부분이 핀란드 정부가 바라는 바 일 것이다. 지나치게 거대한 복지재원 및 조직을 없애고 간단히 기본소득으로 대체해 버리겠다는 것. 누가 가난한지, 누가 학교를 다닐 여력이 없는지 등을 고려할 필요 없이 그냥 ‘보편적’ 복지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기존 국민연금 및 공무원 연금 등에도 대대적인 수술이 들어갈 것이다. 기존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아마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퇴직 후 월 2-300씩 연금을 받으시는 군인, 소방공무원, 교사 등의 직종에 계신 분들께 기본소득으로 갈아타시라고 해야 하는데, 쉽게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근로의욕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건 과연 그럴까 싶다. 지금도 솔직히 월 100만 원 소득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동네 학원 강사를 하루 한 서너 시간만 해도 되고, 밤에 대리운전만 해도 되고,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를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적으로 넉넉한 인생을 살지 않고 굳이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는 이유는 적어도 부양가족을 먹여 살리고 노후를 윤택하게 할 요량으로 선택한 바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매일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띵까띵까 기본소득만 받으며 놀면서 이것저것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답답해지긴 할 것이다. 아마도 심리적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도.

궁극적으로 나의 세금으로 타인의 삶을 책임질 필요가 있느냐 하는 문제까지 가게 되는데, 세금으로 타인의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데엔 상반된 의견이 존재한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노직(Robert Nozick)은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는 강제노동과 마찬가지라 한다. 국가가 수입의 30%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7시간만 일하고 집에 갈 수 있는 사람을 10시간을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과 같다는 논리다. 그 3시간 동안 나는 영화도 볼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는데, 그 시간에 놀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왜 나의 3시간을 강제노동당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대되는 견해로선 법철학자인 머피(Liam Murphy)의 주장이다. 그는 ‘세금이 없을 때의 소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얻는 소득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제 사회 체계에 의해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세금이 없다면 정부도 없고, 법체계도 없다. 그러면 은행도, 기업도, 각종 경제적 계약도, 증권/자본/노동 시장도 없다. 소득과 재산을 형성하는 모든 제도가 없으니, ‘세금이 없다면’ 나의 ‘소득과 재산’도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김태일 저, 73p 참조



마무리를 해보자. 세계 각국 경제는 불평등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인공지능 및 기계의 발달은 인류의 일자리 문제를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GDP 대비 세액 비율이 높은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실제적으로 기본소득제가 논의 중이나, 한국은 아직 그걸 논의할만한 세액 부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울러 기본소득제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기존 업계 종사자들 및 공공기관 인력의 감축이 불가피하며, 일하는 사람만 일한다는 심리적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 있다. 세금에 대한 시각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어느 쪽이 정답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그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점진적으로 기본소득제에 대한 도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나, 그 방법 및 과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토론을 거치고 진행되었으면 한다. 다행히도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먼저 시행을 하고 있으니, 그 제도로 인해 파생되는 이점과 단점을 잘 연구하면 조금 더 실질적인 수행방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모든 재화에 10%씩 부과하고 있는 부가가치세;Value Added Tax도 전 세계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이는 1954년 프랑스 재무부 관리인 모리스 로레가 고안한 간접세의 한 종류이며, 1971년 벨기에, 1973년 영구, 우리나라는 1977년에 10%로 고정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부가세 기준으로만 본다면 일본을 제외하고 대부분 국가에서 10-20%를 부과하고, 덴마크나 스웨덴은 심지어 25%까지 부과하기도 한다. 처음엔 얼또당또 않은 주장이나 제도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보편적인 제도로 정착될 수도 있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현실적으로’ 그 길을 잘 모색해 봤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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