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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n 21. 2016

산체스를 위한 변명

리더십 관점에서 바라본 쇼미더머니

일을 할 때, 그래 프리젠테이션을 만든다고 치자. 이럴 경우 당연히 초안을 만든 주니어와 그것을 검토하는 시니어 사이엔 어느 정도 시각차가 존재한다. 괜찮은 리더라면 처음부터 주니어에게 일정 부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중간에 주니어가 어떻게 PT초안을 준비하는지 간단하게 점검을 한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 날짜 하루 이틀 전에 리허설을 하는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무얼 고치라고 지시할 것이다. 어차피 프리젠터가 주니어이고 문제가 아주 크리티컬 한 게 아니라면 시간 제약 상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나는 지난 주 쇼미더머니를 보며 비교적 젊은 도끼와 나이 든 길의 리더십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상기 언급한 처음부터 길을 잘 잡아주고, 중간 점검하고, 마지막에 프리젠터에게 힘들 실어주는 것이 도끼라고 하면, 그 반대는 길이다. 도끼는 쇼미더머니에서 문제아라고 소문난 슈퍼비가 자기 순서를 바꿔달라는 의견에 리더로서 이 조합이 가장 나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의견을 접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완성도 있는 무대를 실현시켰고, 슈퍼비는 살아남았다.  


반면 길은 처음부터 본인이 아마 이십 년 전부터 만들어오던 허니패밀리, 혹은 리쌍의 RUSH다운 노래를 작곡하고 래퍼들에게 들려줬다. 그리고 공연 이틀 전 피처링을 하는 거미까지 난데없이 데려와 래퍼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거기까진 뭐 그렇다 치는데, 이틀을 앞두고 래퍼들의 가사를 지적질하기 시작하는데, 거 참 지적들이 추상적이고 답답한 게 고냥 맘에 안 든다는 말이었다. 지적질에 지친 래퍼들이 그럴 거면 그냥 RUSH스러운 비트 말고 빠른 비트로 가자고 하니 맘이 상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연습실을 스스로 떠버렸다. (늬들이 힙합을 뭘 안다고 의견질이야. 딱 이런 분위기)


결국 길과 전혀 상관없는 노래가 탄생했고, 결국 무대는 제일 별 볼 일 없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한 산체스라는 래퍼에 대한 길의 자세에 있다. 물론 산체스가 가사를 조금 절은 것 같긴 했지만, 뭐 마디를 통째로 날려먹은 것도 아니고 래퍼가 아니라면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박자 수준이었다. 거기에 대고 "산체스 씨, 오늘 무대에서 실수하셨나요?"라고 물으면 어느 누가 "네, 실수했습니다"라고 대답하겠는가.(위딩은 기억에 의존하는 바라 다소 상이할 수 있음) 정말 그렇다고 대답했다면 산체스를 붙였을 것인가. 결국 그렇다고 대답하나 아니다라고 대답하나 떨어뜨릴 생각은 진즉부터 갖고 있던 게 아니겠는가. 비겁한 질문이었다.


프로그램을 보며 이건 산체스가 욕을 먹겠단 생각을 하긴 했는데, 정말 현재 인터넷에 그러한 일이 벌어지더라. 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악마의 편집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나는 여기서 산체스보단 길을 더 탓하고 싶다. 공연 이틀 전 가사가 맘에 안 들걸 예상했다면 미리미리 만나서 조율을 했어야 했다. 아울러 공연 이틀 전 가사가 맘에 안 들면 빨간펜이라도 들고 직접 서로 가사를 바꿔가야 했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고 본인이 프로듀서면 끝까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끌고 가야지, 이건 내 공연 아니고 쟤들이 망친 공연이다. 이러면 그게 무슨 리더고 프로듀서인가.


길은 쇼미더머니를 무슨 슈퍼스타 K같이 심사만 하면 끝인 줄 아는 것 같다. 누차 얘기하지만 쇼미더머니의 묘미는 중간에 갑을이 바뀌고 막판엔 실력 없으면 누구라도 결과 앞에 바이 바이 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작년에 타블로나 지누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여하튼 이번 쇼미더머니에서 길의 그 꼰대스러움에 실망을 금치 못하겠다.


주) 길을 보니 내가 꼰대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주) 산체스의 건승을 기원한다. 그 긍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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