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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Nov 07. 2019

생각이 글이 되는 순간

2019.10.11~2019.10.14 하노이 여행기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상이었다. 그런 일상에서 갑자기 나의 내일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오늘이란 시간. 최근에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의문들이 떠올랐다.


'나의 오늘은 정말 내일을 위한 시간일까?'


내일을 위해 바쁘게 보내던 오늘의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내일을 위해 살고, 내일을 위해 일하고, 내일을 위해 생각하던 오늘이 그냥 오늘로만 존재할 때, 나는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갖게 된 나만의 시간. 나를, 그리고 나의 시간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시각이 필요했다. 나를 타인처럼 바라보고 나의 일상을 타인처럼 판단해줄 시간.

그래! 해답은 역시 여행이다.


나를 찾기 위한 여행으로 선택했던 곳은 베트남이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바쁠 내일을 침범하지 않을 곳. 여전히 바쁠 내일, 그리고 그런 내일을 위해 몸을 사리고 싶은 오늘을 위한 여행지가 필요했다. 오늘을 찾는 여정을 떠나는 사람의 이유로는 참 비겁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곳은 베트남 '하노이'. 사실 첫 베트남은 아니다. 작년 10월, 나의 여행 메이트와 함께 떠났던 곳 또한 베트남이었다. 다른 분위기의 '호찌민'과 '무이네'. 나에게 큰 의미를 주지 않았던 곳, 꼭 다시 가보리라 다짐하지 않았던 곳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한 번쯤은 사랑해보고 싶은 곳이 바로 베트남이었다.


과연 동남아의 감성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곳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1일 차 : 4일동안 하노이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 (2018) / 플로리안 데이비드 핏츠

영화 속 '폴'과 '토니'는 소위 부랄친구다. 어느 날 술에 취해 두 친구가 신경전을 벌이다 황당한 내기를 하게 된다. 모든 물건을 버리고 하루에 한 개씩 물건을 찾아오면서 100일을 버텨야 하는 내기. 맥시멈 리스트가 한순간에 미니멀리스트가 돼야 하는 참신한 이야기의 영화이다. 하노이로 향하면서 비행기에서 봤던 영화. 결국은 무소유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의 결말처럼 나도 무소유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화면이 너무 이뻤던, 쉽게 만나지 못 하는 독일 영화. 사실 영화는 평타.


나 또한 이들처럼 사라진 행복을 찾아야만 했다. 나의 행복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행복이 사라진 그 시점으로 돌아가 본다면 2019년 1월로 가야 한다. 그때부터 약 1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다양한 핑계로 많은 것을 놓은 채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책과 늘 나의 친구였던 영화, 일상이었던 글을 멀리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필요한 시간이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필요한 일이기에 그렇게 해야만 했다. 물건을 소유하고 지식을 축적하고 그것을 뽐내면서 나의 존재를 알아달라고 외치는 시대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살아있고 진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소유하지 않아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음을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소유가 아닌 무소유로 행복을 찾는 연습을 시작한 지 1년. 여전히 나는 방황 중이다.


드디어 하노이 도착이다. 그 순간, 최근에 다녔던 유럽 여행지에 빠져서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혼자 고독을 씹으며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시끄럽게 들려오는 소리. 이곳에선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소리. 내가 싫어하는 소리. 베트남의 소리.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난 왜 이곳에서 고독을 씹으려 했을까...'


이것을 어찌 잊을 수 있었을까? 호찌민에서 치를 떨던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나의 여유는 모두 달아나버렸다. 잊고 있었던 소음과 함께 오는 베트남 특유의 향. 그리고 습한 공기와 함께 푸릇푸릇한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베트남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선선해진 한국과는 다르게 아직은 더운 날씨. 습함과 함께 찾아오는 더위가 이제 막 도착한 나를 벌써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 나를 겁나게 하는 것은 없었다. 한 번 경험해본 베트남이라 그런가? 이곳이 낯설지 않다. 그래도 아직 이것저것 모르는 것이 많으니 조심해야지.


하노이의 명소 '성요셉 성당'

하노이에서 만나는 유럽식 성당이다. 작고 소박하지만 하노이의 다른 건물에 비해 웅장한 성당. 여행 전부터 하노이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다. 낮에 봐도 이쁘고, 밤에 봐도 이쁜 곳. 그래서 이곳은 늘 혼잡스럽다.



생각이 아닌 글의 시간

여행 첫날 나는 오랜만에 글을 썼다. 누구를 위한 글이 아닌 나를 위한 글. 최근, 어떤 글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당연히 시작이 없었으니 결과도 없었다. 생각을 글로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나에게 결과의 부재는 큰 의미가 있다. 생각을 단지 생각이 아닌 글로 만들고 싶었던 나의 의지가 사라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소유가 아닌 무소유를 실천한다곤 했지만, 어쩌면 난 이 시기에 소유에 대한 집착이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그리고 이제는 거기에 더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생각에 대한 집착이었다.


'소유'의 흔한 착각은 그것이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어떤 것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 그래서 사람들은 내 속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한다. 나의 욕심으로 때로는 나를 과시하려는 수단으로 말이다. 나 또한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생각을 온전히 나 혼자 소유하려는 욕심은 그것이 마치 권력이 되어줄 것이라는 집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온전한 나의 소유였을까? 과연 1년간 내 속으로만 삼켰던 생각들은 그래서 완전한 나의 것이 되었을까? 1년이 되어가니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 것이 있다. 소유는 어쩌면 누구의 것도 아닐지 모른다. 완전 한 소유. 그런 것은 없었다.      


아휴. 1년만에 이렇게 쓰고나니 속 시원하네. 글을 쓴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


그럼 내일은 책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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