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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Nov 11. 2019

슈가맨 어서 와줘, 이 풍경은 지겨워

2019.10.11~2019.10.14 하노이 여행기

두 번째 날의 해가 떴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하루의 시작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두 번째 날은 첫날의 어색함과는 다르게 무척 평온했다. 습한 더위에도 적응이 됐고, 오토바이 사이를 빠르게 걷는 것도 나름 이 정도면 잘하는 편이고,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누비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짧은 일정에 몸이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혼자 여행하는 것도 이 정도면 초보티를 벗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뿌듯하다.

맥주거리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의 호텔 테라스. 매일 내가 글을 쓰던 곳이기도 하다. 아 이뽀.



2일차 : Searching for someone

서칭 포 슈가맨(2011) / 말릭  벤젤룰

1970년대 초, 미국의 한 앨범이 우연히 남아공으로 흘러들어 간다. 미국에서 단 6장밖에 판매되지 않은 이 앨범은 수년 동안 남아공에서 사랑받으며 최고의 히트 앨범이 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가수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한 갖가지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두 명의 열성 팬은 그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고 결국 그들은 그의 흔적을 찾게 된다. 남아공에서는 '엘비스'보다 유명한 이 가수는 도대체 누구일까?


아름답다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경이로운 영화.

'무대 위에서 권총 자살을 했다.' '마지막 콘서트를 하며 무대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등 소문만 무성했던, 남아공에서 전설적인 가수 슈가맨으로 불리던 그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히스패닉 가정에서 태어난 식스토 로드리게즈였다. 1집 Cold Fact(1970), 2집 Coming from Reality(1971)를 마지막으로 그는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단순 노동자였던 지난날로 돌아간다. 그렇게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남아공의 인기를 알게 되고 이 다큐멘터리가 오스카에서 수상을 한 뒤 그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오르게 된다. 그 후 크고 작은 콘서트로 어마어마한 공연비를 벌었다고 하니, 모든 사람은 그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 다큐멘터리가 히트를 하고 난 후에도, 남아공을 포함에서 유럽투어 콘서트를 돌고 난 후에도 여전히 디트로이트 시내의 빈민가에 있는 허름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수입을 신세를 졌던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돌리며 본인은 변함없이 단순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삶으로 살고 있다. 로드리게즈와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는 이 영화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많은 것들이 변했죠. 하지만 딱 한 명 로드리게즈만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요. 지금 그의 삶은 예전 것과 똑같아요. 그가 보여주는 건 선택할 수 있다는 거죠. 그 많던 고통과 고뇌, 혼란과 아픔을 그는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켰어요. 마치 누에처럼 원료를 변환시켜 새로운 걸 창조해냈죠. 그전에는 없던 걸요. 아름다운 것이자 어쩌면 초자연적으로 영원한 걸 말이죠. 그런 면에 있어서 그는 인간의 영혼을 대표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선택할 수 있어요. 제 선택은 '슈가맨'을 드리는 거죠. 여러분은요?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하노이 두 번째 날 나의 친구가 되어준 영화. 그리고 최고의 영화이다. 실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적인 스토리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조금의 과잉도 없이 노동계층이나 빈곤계층의 일들을 의식처럼 엄숙하게 대한 그의 영혼처럼 사는 것이 요즘 세상에 가능하기나 할까? 내가 가지고 싶은 영혼, 내가 살고 싶은 삶이 그러하지만 나 또한 불가능하다. 손에 꽉 쥐고 있는 것들을 하나둘씩 놓아야 하지만 한 손가락, 손가락을 펼 때마다 느껴지는 마음의 고통 때문인지 그 손을 펴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 때문이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순간들을 경험했지만 순간의 영원은 없다. 그렇다면 그 순간의 지속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겠다.


너는 무슨 선택을 하고 싶니?


Xofa cafe에서 먹었던 코코넛 커피

하노이의 유명한 Xofa cafe이다. 코코넛 커피를 이곳에서 먹어봐야 한다는 강력 추천이 있기도 했다. 코코넛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도 질리지 않게 마실 수 있는 커피이다. 건물이 굉장히 예쁘지만 사진을 남긴 것은 없다. 하노이에 가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카페. 단점은 한국 사람이 많다.


나에게 흔쾌히 합석을 허락했던 베트남의 여학생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대화는 없었다. 내 앞에서 묵묵히 영어 공부를 하던 그녀의 침묵이 감사했다. 나에게도 조용히 글을 쓸 시간이 필요했기에... 하지만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인 단체 손님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적이 깨지는 순간, 이곳을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다시 출발.


P.S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 싸움은 필수이다.


가장 더울 시간을 피하고 나오니 딱 좋은 선선한 날씨였다.
피자 포피스(Pizza 4 P's)

가장 가보고 싶었던 피자 포피스를 가는 날이었다. 하노이에서도 핫 플레이스인 이곳은 화덕피자를 좋아하는 나에게 꼭 가봐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맛은 글쎄... 분위기와 청결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맛은 별로이다. 내가 메뉴 선택을 잘 못 했던 것일까... 하지만 상큼한 맛을 담고 있었던 상그리아만큼은 강력 추천하고 싶다. 그래도 하노이 가면 또 갈랭.



벌써 두 번째 날도 저물고 있다. 3박 4일이 정말 짧은 시간이구나. 하노이의 싼 물가에 한 번 놀라고, 지긋지긋한 오토바이에 또 한 번 놀라는 날이었다. 사실 하노이를 온 것이 잘한 것인가 생각하는 날이기도 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너무 요란스러운 도시기도 했으니깐.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고 싶었던 나의 계획은 이렇게 실패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에게 남은 이틀과 나를 찾는 여행에서 무엇인가 얻기 위해선 뒤를 돌아볼 시간 따윈 없었다. 앞만 보고 그저 계획을 계속 실행하는 수밖에. 누구나 선택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그냥 이렇게 소소한 내일의 일상을 선택하고 싶다. 오늘 읽으려고 계획했던 책은 결국 읽지 못했다. 내일은 계획대로 책을 읽어봐야겠다. 책과 영화와 함께하는 하루. 그냥 이것만으로 너무 만족스럽다.


내일 만나자 하노이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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