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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Nov 22. 2019

빛과 어둠의 조화

그림을 통해 부활을 꿈꾼 두 남자

이미 죽고 없는 사람,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내가 자주 하는 시간 여행 방법은 그 사람이 존재했던 장소에 같이 머물러 보는 것이다. 그들이 서있었던 곳에 나도 함께 서있어 보고 그들이 앉아있던 곳에 나도 잠시 머물러 보면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방법이 그들과 동시대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잠시 동일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가능하다. 마치 내가 이곳에서 오래 머문 고흐의 숨결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고흐를 따라다니다 보면 많은 것을 만나게 된다. 예술과 자연은 물론이고 때로는 좋은 문학과 인물까지 만날 수 있다. 그를 통해 만나게 됐던 많은 것들 중, 그래도 그림의 이야기를 가장 처음 소개하고 싶었다. 고흐를 만나기 위해 떠났던 첫 네덜란드 여행에서 만났던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 화가 '렘브란트'. 약 350여 년 전에 활동했던 그에게 고흐의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 '렘브란트'. 그리고 부유와 가난이 낳은 그림들.

사실 네덜란드를 대표할 수 있는 화가는 반 고흐가 아니라 렘브란트이다. 어린 시절 네덜란드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해 프랑스에서 삶을 마감한 반 고흐와는 다르게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명성을 떨치고 생을 마감한 렘브란트야 말로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길고 긴 미술사에서는 반 고흐 보다 더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화가이기도 하다. 19세기의 천재 반 고흐가 17세기의 천재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그를 존경하고 본받으려 했다는 것만 봐도 이미 오래전부터 최고로 평가받았던 화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렘브란트의 어떤 작품에서 고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Self-Portrait at the Age of 34 ,  Rembrandt van Rijn, (1640) / National Gallery(런던) 소장

(1640년, 렘브란트의 나이 34살 때 그린 초상화이다. 호화로운 옷을 걸치고 베레모를 쓰고 앉아있는 모습은, 성공을 거둔 화가의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면 표정은 무척 온화하고 겸손해 보이는데 이 모습이 렘브란트의 실제 모습과 닮아있다고 한다.)

극적인 효과란 '자연의 한 구석'과 '그 자연에 더해진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해주는 요소다. 렘브란트의 초상화에서도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지. 그것은 자연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니 흔히 과장되었다느니 매너리즘에 빠졌다느니 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듣지 말고, 그런 그림에 존경심을 갖고 묵묵히 있는 것이 낫다.

1883년 7월 11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신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방식.

렘브란트는 성서를 주제로 한 연작과 대작, 역사화들로 큰 명성을 얻었다. 성서는 늘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 하지만 성서를 교회 전통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했고 그것은 곧 그의 그림에서도 나타났다. 그의 성서화는 어딘지 모르게 밝고도 어둡다. 즉 빛과 어둠이 함께 하는 그림인 것이다. 그것이 그의 성서가 다른 그림들과 다른 특별한 점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늘 그의 그림을 사랑했다.

(좌) 야곱과 씨름하는 천사 / (우) 천사의 두상

(좌)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Rembrandt van Rijn, (1659/60)/Museum Berggruen 소장

(우) Head of an Angel, after Rembrandt, 1889, 개인 소장품


고흐는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나 작가의 그림을 자주 모작하곤 했다. 외젠 들라크루우, 밀레, 고갱, 구스타브 도레 등 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모작 혹은 차용했는데, 난 그중에서도 렘브란트의 그림을 통해 영감을 받았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한다. 왼쪽 그림은 렘브란트의 '야곱과 씨름하는 천사' 그림이고 오른쪽 그림은 고흐가 그린 '천사의 두상'이다. 많은 미술 평론가들은 '천사의 두상'이 렘브란트의 '야곱과 씨름하는 천사'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평가한다. '천사의 두상'은 개인 소장 작품으로 알려진 바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이 그림의 천사의 얼굴은 '야곱과 씨름하는 천사'의 천사의 얼굴과 굉장히 닮아있다. 이 그림은 파란색을 디테일하게 잘 사용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리고 '카페테라스'와 함께 가장 매혹적인 파란색을 사용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으니 거의 최고의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붓의 터치나 색감으로 보면 누가 봐도 반 고흐의 작품이지만 분명 렘브란트의 '야곱과 씨름하는 천사'와 유사점이 보인다.

렘브란트나 로이스달의 작품은 그때나 지금이나 숭고하지만, 현대 작품에는 더 개인적이고 친밀해 보이는 어떤 것이 있다. 스웨인의 목판화와 옛 독일 거장들의 작품을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옛것을 모방하는 유행을 따라가서는 안 되겠지.

1882년 7월 21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라자로의 부활

(좌) The Raising of Lazarus, Rembrandt van Rijn, (1630-32) /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소장(미국)

(우) The Raising of Lazarus (after Rembrandt), Vincent van Gogh, May 1890 / Van Gogh Museum 소장(네덜란드)


고흐가 영향을 받은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라자로의 부활'이다. 두 작품의 제목 또한 같다. 라자로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한다는 상징을 전하는 그림이다. 렘브란트의 '라자로의 부활'은 그의 특유의 명암법이 도드라지는 그림이다. 그는 빛과 어둠을 통해 삶과 죽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두 그림에 공통된 점은 라자로의 부활을 보고 놀라워하는 그의 누이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비슷한 점이 없어 보이는 작품이다. 렘브란트의 작품은 인물이 더 작게 표현되고 전체 분위기가 어두운 반면, 반 고흐의 작품은 인물을 더 타이트하게 그렸고 어두운 무덤이 아닌 태양이 비추는 밀밭으로 장소를 이동했다. 이는 사건이 중심이 아닌 사건을 통해 나타나는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또 자신의 그림에는 예수를 그리지 않고 배경을 밀밭으로 수정했는데 이는 종교적인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함으로 보인다. 또한 반 고흐의 '라자로의 부활'을 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라자로'의 얼굴이다. 자세히 보면 그의 얼굴이 누구와 닮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바로 붉은 수염을 가지고 있는 반 고흐 본인의 모습이다. 반 고흐의 '라자로의 부활'은 그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에 그려졌다. 렘브란트의 판화를 참고하여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의 반 고흐는 정신병으로 늘 고통을 느낄 시기였다. 그래서 인간의 고통을 주제로 했던 '라자로의 부활'에 깊이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죽음에서 다시 태어난 라자로. 그리고 그 라자로와 같이 치유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싶은 고흐. 종교적인 의미와 정서적 위안의 상징은 그의 색을 통해 이 그림에서 새로 탄생했다. 하지만 정신병에서 회복되고 싶었던 반 고흐는 이 작품을 그리고 2달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반 고흐는 이 작품에 대해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남긴다.

내가 그린 그림을 이 편지 여백에 스케치해 넣었다. 라자로를 소재로 한 동판화 배경에 등장하는 세 인물인데, 즉 죽은 남자와 그의 두 여동생이다. 동굴과 시신은 보라와 노랑, 흰색이야. 다시 살아난 남자의 얼굴에 수건을 벗겨내는 여자는 녹색 옷을 입었고 머리는 오렌지색이지. 또 한 명의 여자는 검은 머리에 녹색과 분홍색 줄무늬가 들어간 긴 옷차림이야. 그들 뒤로 푸른 언덕이 펼쳐진 전원과 노란 일출이 보인단다.

이와 같은 색채들의 배합이 동판화의 명암 대조 기법과 같은 효과를 자아낼 것이다.

1890년 5월 3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고흐는 사실 렘브란트를 그림을 그리기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화가가 아닌 남자와 기독교인으로, 그리고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을 한 후부터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존경했다. 그림을 그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렘브란트의 예술적 천재성을 본 것이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렘브란트에 대한 본인의 연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다는 이야기를 편지를 통해서 말한다. 고흐의 여러 작품을 살펴보면 렘브란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렘브란트의 대한 관심은 평생 동안 남아있었다는 것을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고흐는 늘 렘브란트를 모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림은 설령 전혀 다르게 보일지라도 그들의 생각과 의도는 일치한다. 반 고흐는 렘브란트가 초상화를 그릴 때 의도했던 방식으로 영혼을 표현한 초상화를 그리려고 노력했다. 또한 종교적 주제에 대해 고도의 양식화된 묘사를 그리면서도 성서 그대로의 해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흐가 남긴 그림이 아닌 그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을 봐야 할까?



황금빛 그림. 그리고 고흐가 사랑했던 작품.

Isaac and Rebecca, Known as ‘The Jewish Bride’, Rembrandt van Rijn, (1665 - 1669) / Rijksmuseum 소장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네덜란드 국립미술관(Rijksmuseum)에 소장되어 있는 바로 이 작품 '유대인 신부'이다. 고흐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이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이곳을 방문하면 이 '유대인 신부' 앞에서 오래 머무르며 그림을 감상했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옷에 보이는 금빛을 표현하기 전에 몇 겹으로 칠을 덧칠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느낌이 고흐의 붓칠과도 굉장히 흡사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을 이 주일 동안 계속 볼 수 있게 해 준다면 내 목숨에서 10년이라도 떼어줄 텐데...."라는 말을 '유대인 신부'를 보며 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이 작품을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다. 이곳에 잠시 머물러 보면 많은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에서 찍어온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사진으로 담아오지 않는 편이다. 검색하면 고화질의 그림들이 모두 나오는 요즘, 나까지 그것을 담아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그림만큼은 사진을 찍어왔다. 이 그림을 남기기 위함이 아닌 내가 고흐와 같은 자리에 있는 순간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고흐도 이 그림을 이렇게 보았겠지. 그리고 고흐도 나처럼 이 그림을 감탄하며 보았겠지. 이곳에 있으니 고흐와 함께 이 공간을 머무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유대인 신부는 여전히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에서 인기인 작품이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 앞에 몰려들고 또 사람들도 그의 작품을 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고 떠나는 동안 잠시 이곳에 머무르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17세기의 렘브란트, 그리고 19세기의 고흐, 21세기의 내가 모두 이 그림 앞에서 머물면서 그들이 내뱉었던 숨결을 느낀다. 우리가 함께 존재하는 것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곳에 머물지 않고 이렇게 작품 앞이란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 누군가는 이 앞에서 붓을 들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 그림을 통해 또 다른 붓을 들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를 통해 이렇게 글을 쓴다. 우리는 이렇게 한 작품을 통해 함께 존재하고 같은 것을 떠올린다. 우린 그렇게 영감을 공유한다. 그들의 숨결을 느낀 다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렘브란트는 마술가 중의 마술가다.
-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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