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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Nov 25. 2019

오 우울한 나무여 소리를 내주오!

죽음을 애도하는 늘 살아있는 나무, 사이프러스

고흐는 그림을 그렸던 9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약 2000점 정도의 작품을 남겼는데 대략 900점의 유화와 1,200점의 데생을 그렸다고 알려진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었고 정신적으로 힘들었음에도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비슷한 장소에서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한 작품을 똑같이 여러 번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반 고흐의 사망 전 9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림에는 특히 고흐의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해바라기, 나무, 별과 같이 자신이 유난히 사랑하는 것들은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하게 그림에 표현했는데 나는 반 고흐가 그린 '나무', 그중에서도 '사이프러스 나무'를 사랑한다. 이 사이프러스 나무는 반 고흐가 프랑스 생 레미 요양원에 입원한 이후 많이 그려진다. 아마 요양병원 근처에 우뚝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우연히 보고 한눈에 반했는지도 모른다.


서양에서 사이프러스 나무는 죽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관과 사원을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하고, 시신이 타는 냄새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같이 태우기도 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무덤가에 심기도 한다. 그렇게 늘 죽음 곁에 있기 때문인 걸까. 사이프러스 나무는 때로는 '불행'을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이 나무 이름의 어원은 'cupressus sempervirens(쿠프레수스 셈페르비렌)' 즉 '항상 살아 있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죽음과 삶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나무. 어쩌면 고뇌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사이프러스 나무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나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고흐에게 이 나무는 과제이자 목표였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일하든, 다른 곳에 있든 나에게는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이곳에 있는 게 가장 간단한 일이기에 그냥 여기에 있다. 너에게 쓸 이야기가 부족하다. 매일매일이 그냥 같은 일상이다. 나에게는 밀밭과 사이프러스 나무를 더 자세히 바라보는 것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다.

1889년 6월 5일 테오에게 쓰는 편지 중...




봄의 사이프러스

사이프러스 나무는 1889년 5월, 생 레미 요양원에 입원한 뒤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난 이 시기에 그려졌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한다. 깊은 우울감이 이 시기에 그려졌던 많은 작품들 속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울함은 이 사이프러스 나무 덕분에 더 극대화된다. 생명을 강하게 품고 있는 이 나무가 뿜어내는 죽음의 그림자는 왜 이리 강렬한 것일까. 사이프러스 나무를 통해서 그의 심리를 엿봐야겠다.


사실 생 레미 요양원에서 그려졌던 그림이 초반부터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그의 심리 변화에 따라 그 속의 나무들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반 고흐는 1889년 6월 25일 동생 테오에게 쓰는 편지 아래에 다음과 같이 사이프러스 나무 스케치를 작게 그려 넣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Vincent van Gogh, Letter Sketches, Saint-Rémy: 25-Jun, 1889 / Van Gogh Museum 소장
사이프러스 나무를 다룬 두 점 중에서 지금 스케치를 그려 보내는 쪽이 더 훌륭한 그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안의 나무는 키가 아주 크고 육중하다. 전경은 가시나무와 관목 덤불들이 낮게 자리 잡고 있다. 그 뒤로 보랏빛이 도는 언덕 너머, 초록색과 분홍색을 띤 하늘, 초승달이 있다. 무엇보다 전경의 가시덤불은 노란색과 보라색, 초록색으로 강조했고 아주 두껍게 칠했다. 내가 그린 두 개의 다른 스케치를 편지와 함께 보낸다.


그리고 아래의 두 그림을 편지와 함께 보냈다. 이때 그려졌던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생명이 가득하다. 끝이 보이지 않게 하늘로 솟구친 나무들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사실 이때의 그림에서는 우울함이 담겨있는 죽음 따윈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삶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진다. 요양원에서의 삶이 단조로와서였을까 그는 오히려 평온해 보인다. 색으로 감춰지지 않은 직설적인 펜의 터치는 이렇듯 노골적이다.


(좌) The Brooklyn Museum 소장 / (우) The Art Institute of Chiago 소장


이후 고흐는 이 스케치에 색을 넣어 감정을 불어넣었는데, 색으로 표현하는 그의 감정 또한 여전히 어둡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이프러스 나무 역시 어두운 초록색보다는 연두색을 섞어 밝은 초록색으로 표현했는데 이 덕분에 사이프러스 나무 또한 죽음보다는 생명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거기에 초록색과 분홍색을 띤 맑은 하늘, 휘몰아치는 구름과 봄에 응답하는 듯 하얀 꽃이 피어있는 가시덤불은 나무의 생명력에 반응하여 진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명의 죽음을 나타내는 '겨울'을 지나 다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본 테오는 어쩌면 고흐에게도 새로운 삶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고흐에게 찾아온 봄. 하지만 원래 계절이 그러하듯 겨울은 언제나 다시 찾아온다.


Cypresses, Vincent van Gogh, 1889 /  The Metropolitan Museum 소장


가을의 사이프러스

1890년 5월 고흐는 생 레미 요양원에서 나와 프랑스 파리 인근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이동해 죽기 전 3개월을 이곳에서 머무른다. 그리고 그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이동하기 직전 생 레미 요양원에서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려진 마지막 작품을 남긴다. 바로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반 고흐는 1890년 6월 17일, 친구 폴 고갱에게 이 스케치를 보내며 이런 편지를 보낸다.


Vincent van Gogh, Letter Sketches, Saint-Rémy: 17-Jun, 1890 / Van Gogh Museum 소장
저 아래쪽에 별이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도 있다. 밝지 않은 달이 있는 밤하늘, 가느다란 초승달이 불투명하게 투사된 지구의 그림자로부터 간신히 모습을 드러낸다. 분홍색과 초록색이 함께 있는 부드러운 밝기의 군청색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고, 과장된 밝기의 별이 있다. 아래에는 키 큰 노란 갈대들이 서있는 길이 있고, 그 뒤에는 낮은 파란색 산이 있다. 오렌지색 불이 창문을 통해 새어 나오는 낡은 여관이 있고, 아주 높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다. 무척 곧고, 무척 어두운. 길에는 노란색 마차에 묶여 있는 하얀 말이 보이고, 늦은 밤의 두 명의 나그네가 있다. 아주 낭만적이고 프로방스 같은 풍경이다.

1890년 6월 17일 폴 고갱에게 보내는 편지 중...


그리고 이 스케치는 색을 더해 새로 탄생한다. 1889년에 그린 '사이프러스'와는 다르게 이 그림은 어두운 밤이 배경이다. 1889년에 그린 사이프러스 또한 하늘에 초승달이 존재하지만 밝은 낮이었던 것과는 반대로 이 그림은 완벽한 밤을 표현하고 있다. 역시 파란색을 아름답게 다루는 고흐이기에 이 그림 또한 우울한 느낌을 주진 않지만 달라진 여러 가지가 있다. 두 그림 사이에는 1년이라는 시간적 텀이 있지만 계절은 비슷한데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은 봄을 상징하는 '꽃'이 아닌 가을을 상징하고 있는 '갈대'가 그려졌다. 또 등장하는 인물들의 차림새만 보더라도 더운 여름이 아닌 쌀쌀한 가을이 배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는 생 레미 요양원을 떠나기 직전 가을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린 것일까.


Road with Cypress and Star, Vincent van Gogh, 1890 / Kröller-Müller Museum 소장

고흐는 결국 생 레미 요양원에서 치료를 완벽히 하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나게 된다. 요양원을 떠나기 직전, 작품을 그리는데 몰두하고 마침내 여러 작품을 완성한 후에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서 몇 개월을 채 살지 못한 채 결국 삶을 마감한다. 많이 어두웠을 고흐의 마음을 난 이 그림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면 느낄 수 있다. 1889년에 그려진 사이프러스와는 상반되게 나무가 매우 어두워졌다. 밝은 빛이라곤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거의 검다시피 표현된 이 그림은 실제로 보면 그 처참함이 더 두드러진다. 사이프러스 나무를 강조하고 싶었던 듯 그 부분을 붓으로 여러 번 터치해서 그렸는데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보면 사진과는 다르게 나무가 훨씬 더 웅장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전히 하늘에 밝게 빛나는 달과 별. 그는 이 그림을 그리는 중에도 꿈을 놓지 않았던 것일까? 우울한 그림 속에 밝게 빛나는 달이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려진 그림은 스케치를 포함해 유화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 많은 그림 중 두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고흐가 사이프러스에 본인의 영혼을 담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프러스를 통해 내가 느끼는 고흐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작품들에는 모두 사이프러스 나무가 함께 있다. 사이프러스가 있기에 그 그림을 좋아하게 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 사이프러스가 있어서 사이프러스를 좋아하게 된 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결과적으로 난 사이프러스 나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고흐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난 고흐가 좋아하는 많은 것을 계속 쫓을 예정이지만 어떤 것도 사이프러스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이기진 못할 것이다. 여전히 고흐의 영혼은 사이프러스를 통해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기에...


The cypresses are always occupying my thoughts.
사이프러스는 늘 내 생각을 사로잡는다.
-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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