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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Nov 28. 2019

삼시세끼 <반 고흐편>

요즘은 혼밥이 유행이다. 이전처럼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어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고, 그걸 스스로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도 없다. 나 또한 혼자 밥을 먹는 것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아졌다. 밥을 입에 물고 말하지 않아도 되고, 밥을 먹을 때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혼자 밥 먹는 시간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 조차도 때로는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무척 즐겁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더라도 가족과 밥 먹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주로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래서 때론 그 시간이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는 순간이기도 하다.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매번 음식 메뉴를 정할 때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고심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함께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디에서 음식을 먹는지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 고흐는 어디서 무엇을 먹었을까? 나는 오늘 반 고흐의 안부를 묻기 위해 그의 식사시간으로 가보려고 한다. 과연 반 고흐의 식사 자리는 어떨까. 오늘은 그의 식탁을 살펴봐야겠다.



* 이 글은 반 고흐의 편지를 기반으로 각색한 글이다.

* 하루의 이야기처럼 썼지만 참고했던 편지의 시기는 모두 다르다.

* 이 글의 반 고흐는 30대로 지정했고 아를(Arles)의 어느 날로 상상했다.



적막이 흐르는 아침

오늘 아침은 동생 테오를 생각하며 코코아 한 잔으로 시작했다. 어제는 사람들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았고, 또 생각보다 그림이 잘 나오지 않았다. 유독 힘든 하루를 보내서 일까?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눈을 떠보니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새벽이다. 이런 날은 유난히 동생 테오가 그립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 그리고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나에겐 지금 그런 사람이 절실하다. 테오와 내 방에서 아침을 먹거나 한 잔의 코코아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럼 이 어두운 기분도 조금은 나아질 텐데... 하지만 이 기분 속으로 계속 빠질 순 없겠지. 난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하니깐. 달콤한 초코를 먹었으니, 기분도 곧 좋아질 것이다.


우리가 함께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고 내 방에서 코코아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875년 9월 29일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 고흐가 보낸 편지를 보면 초콜릿에 대한 언급이 많다. 동생 테오에게 초콜릿을 보내기도 하고, 또 편지를 받을 때 동생 테오가 초콜릿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또한 그의 마지막 생일(1890년 3월 30일)에 반 고흐의 엄마는 생일선물로 담배 파우치를 만들었는데, 그 담배 파우치와 함께 책과 초콜릿 한 통을 선물로 보낸다. 생일에도 역시 빠지지 않고 책을 보냈는데, 그 책과 함께 초콜릿을 보낸 것을 보니 책을 좋아한 만큼 초콜릿 또한 좋아했던 것 같다.


해가 뜰 동안 잠시 책을 읽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매진하고 있지만 책을 읽는 것 또한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늘 갇혀있는 삶을 사는 나에게 책은 시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요즘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Contes de Noël)'를 읽고 있다. 심오한 내용이 많아서 자주 다시 읽어봐야 한다. 이제 슬슬 아침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계속됐던 위장병이 파리에서 이곳으로 온 뒤로 많이 좋아졌다. 오늘은 그림을 그리러 나가기 전에 배를 조금 채우고 나가야겠다. 집에 있는 달걀 2개를 먹고 나가는 것이 좋겠다. 테오가 보내준 돈도 거의 바닥이 났는데 집에 음식도 거의 떨어져 간다. 당분간은 마른 빵으로 버텨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아침을 먹는 것이 너에게 좋을 것이다. 난 아침에 계란 두 개를 먹으면서 여기서도 똑같은 일을 했다. 위가 매우 약하지만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거야. 사실 나는 파리보다 이미 훨씬 낫다.

1888년 4월 20일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세상에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점심

아침을 먹고 나온 이후부터 나는 밀밭 스케치를 하는 것에 열중했다. 요즘은 계속 이 밀밭을 연구 중이다. 이 곳에 색을 더하면 아주 아름다운 초원과 도랑, 꽃을 배경으로 한 마을, 버드나무 몇 그루가 가득 찬 그림이 될 것이다. 만약 이들이 이 초원을 깎지 않는다면, 이곳의 연구를 다시 하고 싶다. 이곳은 정말 아름답지만 내가 구도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밀밭 연구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한 번 야외로 나오게 되면 화구 가방에 담아 나온 음식들을 간단하게 먹게 된다. 집에 가서 음식을 먹고 오는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진 않다. 가끔은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그림을 그려서 그나마도 챙겨 나온 음식을 먹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오늘은 약간의 빵과 우유 배를 채웠다. 조금 좋아진 위장병을 또다시 악화시킬 순 없지.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해가 질 때조차 너무 아름다운 밀밭이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하루 종일 문밖에서 약간의 빵과 우유를 먹으며 지냈는데, 늘 마을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다.

1888년 7월 13일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Farmhouse in a Wheatfield, Van Gogh, April 1888 / Van Gogh Museum 소장
Farmhouse in a Wheatfield,  Van Gogh,  May 1888 /  Van Gogh Museum 소장

* 점심에 고흐가 그림을 그리러 나간 곳은 1888년에 아를 근처에 있는 들판에서 그린 이 그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흐는 아를에 도착하자마자 근처의 많은 곳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리고 위의 스케치에 색을 더해 아래의 그림이 탄생했다. 약간의 구도가 달라진 것을 봐서, 고흐는 이 밀밭의 연구를 오랫동안 했음을 알 수 있다. 날이 좋은 남프랑스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고흐를 상상했고, 늘 화구 가방에 들고 다녀서 말라버린 빵을 먹었던 반 고흐의 점심을 표현했다.



별이 유난히 많은 아름다운 밤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해가 져 깜깜한 밤이 되었다. 하늘의 별이 유난히 많은 밤이다. 별이 비치는 아를의 거리는 더 아름답다. 오늘은 저녁을 레스토랑에서 해결할 계획이다. 이미 집에 음식이 거의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에 1프랑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좋은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이곳의 이름은 'Restaurant Vénissac'이다. 내가 사는 곳과도 무척 가까워서 요즘 내가 거의 매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 오래 그림을 그렸기에 따뜻한 수프를 먹으려고 한다. 이곳의 인테리어는 약간 특이하다. 가게의 모든 곳이 온통 회색인데 바닥조차 포장도로처럼 회색이다. 그리고 창문의 녹색 블라인드는 언제나 닫혀있고 늘 열려 있는 문 앞에는 커다란 녹색 커튼이 쳐있는데 이것이 먼지를 막아준다. 물론 테이블은 하얀 천이 덮여있다. 요즘에는 두 명의 여자가 일을 하고 있는데 한 명은 이곳의 주인인 Vénissac-Canin이라는 70살 된 노파이고, 서빙하는 또 다른 젊은 여자가 있다. 하지만 이곳이 이렇게 특이한 곳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는 당분간 이곳을 계속 찾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1프랑이란 싼 값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1프랑에 먹을 수 있는 더 좋은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1888년 5월 12일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The Yellow House (The Street), Van Gogh, September 1888 / Van Gogh Museum 소장

* 저녁에 나온 'Restaurant Vénissac'은 위 그림, 'The Yellow House'에 그려져 있다. 제일 왼쪽 나무 밑에 보이는 분홍색 벽의 건물이다. 반 고흐의 다른 그림인 유명한 '밤의 카페(The night café)'는 이 그림에서는 볼 수 없지만 레스토랑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더없이 쓸쓸한 새벽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는 늘 불면증이 두렵다. 하지만 여전히 잘 싸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가끔 이럴 때 의사 'François Vincent Raspail'가 쓴 'Manuel annuaire de la santé'책을 참고한다.(* 이 책은 영양과 위생을 위한 가정의학 서적이다.) 이곳에 나와있는 방법이 나에게 꽤 효과적이다. 나의 위장병은 파리에서 가지고 온 문제인데 아마 주로 나쁜 와인 때문이었을 것이고, 또 내가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의 와인도 마찬가지로 좋진 않지만 요즘은 아주 조금만 마시고 있다. 사실은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위장은 약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잠이 들지 않는 날은 약간의 와인이 필요하다. 오늘 와인을 조금 마셔야겠다. 내일은 오늘 연구했던 밀밭을 다시 가볼 계획이다. 내일도 해가 오늘과 같이 좋았으면 좋겠다. 늦었으니 자러 가야겠다. 오늘 하루도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에게 꿈을 보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파리에 있는 것보다 낫고, 만약 내 배가 몹시 약해진다면, 그것은 내가 거기서 주워온 문제이다. 아마도 주로 나쁜 포도주 때문이고 내가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와인도 마찬가지로 나쁘지만 나는 아주 조금만 마신다. 그래서 사실은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에 나는 매우 약하지만, 나의 피는 망가지지 않고 나아지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필요한 것은 인내와 또 인내이다.

1888년 5월 1일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Still Life with Onions and Annuaire de la Santé, Van Gogh, January 1889 /  Kröller-Müller Museum 소장

* 건강 지침서와 그 책에서 불면증에 대해서 좋다고 권해준 양파, 커피포트, 그가 좋아하던 파이프와 담배통, 테오가 보낸 편지 한 통과 친구와의 밀접한 결합을 상징하는 봉랍, 삶의 불꽃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불타고 있는 촛대, 금주의 상징인 빈 포도주 병 등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보면 평소에도 반 고흐가 불면증 치료를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점은 위의 이야기보다 조금 이후이다. 이때는 금주를 결심한 이유에서인지 비워져 있는 술병을 그렸지만, 오늘의 고흐만큼은 와인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하고 싶었다.




사실 반 고흐는 과다한 알코올 섭취와 영양 부족으로 늘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물론 유전도 있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며칠 동안 반 고흐의 편지를 모두 뒤져보아도 잘 먹었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음식에 대한 직접적인 편지가 많이 없는 것으로 보아 먹는다는 행위가 그에게는 큰 의미를 주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고흐가 가족의 품을 떠난 후에는 이날처럼 잘 먹었던 날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 동안 모든 끼니를 먹는 고흐를 쓴 이유는 내 글 속에서만이라도 배부르고 행복하게 잘 먹는 고흐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요일부터 너무 바빠서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두 끼밖에 못 먹었다. 그 외에는 빵과 커피만 있었다. 그것도 외상으로 마셔야 했고, 오늘 지불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 만약 가능하다면, 입금을 지체하지 말아 줘.

1888년 10월 8일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이번에 그의 편지를 찾아보면서 새로 발견한 점은 간혹 등장하는 고갱의 요리 이야기다. 그는 고갱의 요리 실력을 칭찬하기도 하고, 또 그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어 하기도 한다. 아마 둘 중 요리를 더 많이 하는 것은 아마 고갱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아를에서 공동생활을 할 때는 특히 음식을 사 가지고 집에서 함께 먹는다는 표현이 때때로 등장한다. 어쩌면 모두가 힘든 시기에 혼자만 배부르게 먹을 수만은 없었던 따뜻한 고흐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또 한 번 그의 삶을 열어보니 시간을 떠나, 그와 일상을 공유하는 느낌이 든다. 사실은 자주 혼자 식사를 했을 고흐를 위해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넣고 싶었지만,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고뇌하는 고흐를 만나고 싶기도 했다. 내 글에서 조차 혼자인 고흐지만 이 순간이 사람들에게 그의 고독을 느끼는, 그리고 또 다른 그의 일상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모두 함께 한다면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이만 늦었으니 자러 가야겠다. 잘 자고 행운을 빌게. 당신에게 사랑을 보내며.


내가 이렇게 당신의 하루 식사와 함께 했으니 오늘만큼은 외롭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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